시험에 오른 나홍진표 SF, 156분 내내 도파민 터지다 든 의문

[리뷰] 영화 <호프>

 영화 <호프> 스틸컷
영화 <호프>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길 한복판에 소의 사체가 무언가의 공격받은 듯 가로막고 있다. 비린내가 가득하나 썩은 내는 아니다. 무엇이 농가를 휩쓸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모든 인력은 산불 진화에 나갔고, 마을에는 노인들만 몇몇 남아 있을 뿐이라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비무장지대 마을 호포항의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은 성기(조인성)를 포함한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과 산으로 조를 나눠 순찰을 떠난다. 점차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게 될 때쯤 호랑이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한편, 뒤늦게 출발한 순경 성애(정호연)는 범석과 합류하며 믿기 힘든 현실을 마주한다. 끈질긴 추격 끝에 결국 포획에 성공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후 성애는 야전 병원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해술 할범(임현식)을 치료하게 된다. 하지만 해술 할범은 외계인이 더 있다는 소식을 알려주고, 성애는 아연질색하며 범석을 찾아간다.

한국형 SF 무덤 위에 핀 꽃

 영화 <호프> 스틸컷
영화 <호프>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호프>는 아드레날린을 연료로 시종일관 도파민 자극에 최적화된 영화다. 지구에 불시착한 네 외계인이 호포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과정과 이를 좇는 인간의 끈질긴 사투가 중심이다. 제목은 '호프'이지만 희망을 기대하기는커녕 어두운 미래가 10여 분의 엔딩으로 그려진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다. Si-Fi 장르의 불모지인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문법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할리우드 Si-Fi에 익숙해진 한국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기성 감독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일본 고전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김지운의 <인랑>, 한국형 스페이스오페라를 꿈꾼 조성희의 <승리호>, 달에 고립된 우주인의 사투를 재난 영화로 풀어낸 김용화의 <더 문>, 인공지능 서비스에 감정을 넣은 김태용의 <원더랜드>, 한국형 어벤저스를 꿈꾸었던 최동훈의 <외계+인>의 성적은 처참하다.

점점 '한국형 SF'라는 타이틀은 어느새 독이 든 성배가 되어 갔다. 기라성 같은 감독도 쉽지 않은 치킨 게임이나, 나홍진 감독은 과감히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완벽하게 적응한 듯 보인다. 단순한 서사에 감각적인 미장센과 추격 액션을 통한 도파민 시대의 완벽 적응은 쇼츠와 틱톡에 열광하는 젠지 세대를 위한 기획 영화처럼 느껴지기 까닭이다. 기성세대보다는 앞으로 극장을 찾아 줄 미래 세대를 향해 포커스를 맞춘 전략이다. 새로운 세대에게 기존의 영화 문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파악했다.

연출 방식도 기존과 다르다. 확실히 극장의 특수성을 살린 체험을 유도한다. 범석의 시점에 따라 숨 쉴 틈도 없이 강력한 액션이 휘몰아친다. 넋 놓고 보게 되는 추격 액션, 인물과 인물의 충돌이 곧 서사인 낯선 경험이다. 1시간 동안 외계인의 실체는 완벽히 보이지 않는다. 상대를 모를 때 드는 공포감 크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물의 전사를 굳이 설명하지 않고 유추하게 한다. 캐릭터의 관계성과 사건의 진위로 쌓아가는 서사 전달에 익숙한 관객은 당혹스러운 결말에 아연질색할 가능성이 크다.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미국 여행 중 영화 산업의 위기를 목도하며 오직 극장에서만 몰입되는 경험을 최우선 순위로 두었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호프>는 <추격자>의 운동성과 <황해>의 눅눅한 기분이 집약된 영화다. 다만 <곡성>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스타일은 아니다. 156분 동안의 사투가 마무리되지 않아 속편의 기대감도 커진다. 3부작으로 구성했지만 한편으로도 이미 완결성을 갖춘 독립적인 영화로 읽힌다.

'곡성'과 닮았지만 다른 '호프'

 영화 <호프> 스틸컷
영화 <호프>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곡성>과 공통점은 외지인이 한마을에 찾아온다는 점이다. 초자연적 현상을 넘어선 우주적 관점의 통찰이다. 성경 속 신의 입장으로도 해석하기 좋다. 히브리서 11장 1절 구정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은 것들의 증거다'를 전한 에필로그는 모호함을 더한다.

3년 넘게 디자인에 공들였다는 나홍진 감독의 말이 무색하게 어색한 CG는 여러 크리처가 떠오르는 기시감을 피할 수 없다. <진격의 거인> <콰이어트 플레이스> <기묘한 이야기> <체인소 맨>의 크리처나 <프로메테우스>의 외계인과 닮아 신선함은 부족하다. 대신 오락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추동하는 텅 빈 서사를 관객의 상상력으로 직접 채워 넣는 능동적인 영화다.

감독은 줄 곳 '퍼스펙티브(perspective)'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입장 차이가 빚어낸 비극을 강조했다. 인류의 전쟁이 소통의 부재와 오해로 일어나듯이 지구인과 외계인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보편성을 주제로 한다. <곡성>이 알 수 없는 존재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피해자의 관점이라면, <호프>는 철저히 인간의 관점으로 외계인을 대상화하기 이른다.

외계인이 침입자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생각은 제대로 알 수 없게 설계되었다. 시가지와 산속 추격으로 분산된 상황이 하나로 모아질 때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보통은 인간 시점을 보여 준 후 외계인의 시점으로 이동해 생각 차이를 논하지만 <호프>는 시점을 굳이 이동하지 않는다. 희망을 품고 저마다 다르게 내달리는 인간과 외계인은 어쩌면 '무지'에 의한 광기의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는 80년대는 선택의 개연성을 더한다. 고립된 공간의 고립감과 소통의 부재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결국 <호프>는 낯설지 않다. 꾸준히 같은 이야기를 다른 장르로 표현했을 뿐이다. 흥행과는 상관없이 한국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영화다. 사상 최대의 제작비, 본 적 없는 경이로운 미장센, 추격에 특화된 오락성 등 156분이란 물리적 시간 속에 갇힌 관객은 감독에게 머리채 잡혀 이끌려 가기 바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듀얼>,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추격전을 지나 신정원의 <차우>에서 선보인 심각한 상황 속 개그 요소 모두 오마주와 패러디를 교묘하게 오간다.

영화는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확장성과 함께 나홍진표 SF의 진화를 보여준다. 개봉 전까지 수없이 매달려 수정한 집념의 결과물이 드디어 대중과 만날 날을 맞았다. 과연 어떤 담론을 이끌어낼지 사뭇 궁금해진다.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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