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야시타'는 8살 딸 '에미'를 끔찍한 범죄로 잃었다. 그는 범인을 찾아내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모든 건 오리무중이라 막막할 따름. 길을 잃고 방황하던 그 앞에 문득 '니지마'란 남자가 나타나 돕겠다고 한다. 니지마의 정보로 둘은 용의자 '오츠키'를 납치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게 아니라며 '히야마'를 지목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 역시 붙잡지만, 둘 다 자신이 한 게 아니라 부정한다. 사건은 점점 안개 속에 잠기지만 포기할 순 없다.
수라의 길에 제 발로 들어선 두 사람
▲<뱀의 길> 스틸
㈜디오시네마
'복수'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 중 하나다. 미야시타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딸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납치한 용의자 앞에서 딸의 생전 모습을 비디오로 재생하며 그가 주문처럼 읊조리는 내용은 차마 듣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이 내용만으로도 그가 복수귀가 되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다. 가족을 그렇게 잃었다면 누구라도 그처럼 비합법적인 수단을 감행하는 데 망설이지 않을 테다. 그는 용의자를 구타하고 학대하며 자백을 독촉한다.
하지만 수수께끼는 그를 조력하는 니지마다. 복수를 위해 모든 걸 그만두고 범인을 추적하는 미야시타와 달리 그는 성실하게 돕다가도 매일 일정 시간이 되면 본업인 학원 강사로 돌아가 수업을 진행한다. 선글라스를 낀 니지마의 얼굴엔 감정이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왜 위험천만한 복수극을 돕는 걸까? 그들이 상대할 용의자는 평범한 민간인이 아니라 암흑가에 몸담은 이들이란 게 점점 드러나는데도 말이다. 목숨을 걸어도 이익이랄 게 없는 데 말이다.
미야시타는 복수에 집착하지만, 정작 용의자를 납치할 때 실행은 니지마의 몫이다. 미야시타는 막상 위험한 상황에선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이다. 용의자를 특정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주역은 항상 니지마가 담당하고 구금장소를 마련하는 등 잡무도 대개 그가 용의주도하게 준비한다. 이쯤 되면 관객의 궁금증은 두 가지, 대체 범인의 정체는 누군가와 더불어 불가사의한 조력자의 의도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그가 비상한 과거를 숨긴 건 확실해 보인다.
용의자를 수중에 넣고 고문을 통해 단서를 확보하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딱히 범인도 아니거니와 입에서 나온 진술도 신빙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게다가 미야시타가 그들과 원래부터 알던 사이라는 게 드러난다. 심지어 범죄집단의 표적을 넘어 그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었음도 추정된다. 이쯤 되면 딸의 끔찍한 죽음과 미야시타의 과거 행적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또 다른 의문이 추가된다. 아이에 일어난 비극과 별개로 대체 그는 무엇에 연루된 걸까?
기이한 버디무비
▲<뱀의 길> 스틸
㈜디오시네마
미야시타의 시점에서 보는 이야기는 딸을 잃은 아빠가 원수를 찾는 복수 서사다. 물론 그 길의 끝에서 딸을 되찾을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이 과업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그에겐 어차피 삶이란 게 별 의미가 없다. 자신의 모든 걸 잃더라도 그는 이 손해만 남을 뿐인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그런 상황 때문인지 미야시타는 극한의 흥분과 체념 사이를 오가며 불안정한 모습을 거듭 노출한다. 그 혼자선 도저히 복수를 수행할 수 없어 보일 만큼 허술한 모습.
반면에 능숙한 해결사처럼 니지마는 그를 아무 대가 없이 조력한다. 미야시타가 용의자를 윽박지르고 폭행해도 정작 필요한 답은 제대로 얻지 못하는데, 니지마는 능숙하게 진술을 확보하거나 적어도 효과적으로 겁을 주는 데 성공한다. 상대가 야쿠자 무리라는 걸 고려하면 학원 강사에 불과한 그가 비상한 능력을 펼친다고 봐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째 그가 획득한 정보가 미심쩍다. 그는 파트너가 모르는 사이 그들과 비밀 이야기를 나누거나 입을 맞추는 듯하다.
용의자들은 원래 미야시타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인증한다. 겉으론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이는 그가 무슨 일을 했길래 범죄조직이 그를 노렸던 걸까? 하지만 양쪽 다 원인을 굳이 드러내진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가해자가 침묵해도 피해자가 울분에 차 폭로하거나, 관객이 모르던 진실을 가해자가 끄집어내 정당성을 주장할 법한데 둘 다 서로는 알지만, 3자인 니지마 앞에선 서로 짜 맞춘 듯 침묵을 고수한다. 기이하게도 니지마는 의문을 딱히 드러내지 않는다.
미야시타는 점점 니지마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행태를 보인다. 분명히 상대가 협력자에 불과한데 말이다. 주객이 뒤바뀐 채 미야시타는 니지마에게 자신이 제대로 처신했는지 묻고 동의를 듣길 기대한다. 딸의 원수를 갚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아빠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음을 인정받길 원하는 눈치다. 그때마다 상대는 어린아이 달래듯 그가 잘하고 있다며 격려하지만, 적당히 추어올리는 데 가깝다. 미야시타는 대개 조수에 가까우며 실수도 연발한다.
경계를 횡단하기
▲<뱀의 길> 스틸
㈜디오시네마
암흑가의 용의자를 납치해 가두고 진술을 종용하는 과정은 보통 범죄영화에서 훈련된 주인공이 임무를 수행하는 그것과는 퍽 다르다. 용케 과업 자체는 완수하지만, 미야시타는 벌벌 떨면서 대기하는 게 고작이다. 거의 니지마 혼자 활약하기 일쑤다. 그들이 용의자를 감금하는 폐공장은 (딱히 장치가 잘 된 걸로 보이지 않지만) 방음 처리가 되어 있고 용접한 족쇄로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곳에 묶인 채 짐승처럼 먹고 자야 한다. 화장실도 제공되지 않는다(!).
고문은 투박하지만 효율적이다. 밥은 주지만 바닥에 흩뿌리기에 개처럼 입을 대고 먹어야 한다. 물은 주지 않는다. 용변은 자리에서 해결해야 한다. 사육과 다를 바 없다. 니지마는 미야시타가 복수귀라는 걸 상기시키며 용의자를 겁박하고 이간질도 서슴지 않는다. 처음엔 당당하던 야쿠자라도 기약 없는 감금 탓인지 금새 나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교묘하게 거짓말을 유도하며 이용하는 모습에 그들이 과연 끔찍한 아동 살해자인지 관객은 점차 의문에 잠긴다.
점점 사건의 진상이 모호해지는 과정은 허무감을 증폭한다. 복수라는 건 본래 허망한 거라지만, <뱀의 길>이란 제목처럼 후진은 불가능한 미로로 구불구불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 길의 끝에는 과연 뭐가 기다릴까? 은근히 섬뜩해지는 가운데 이제 관객은 그들의 운명을 초조함과 불안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다. 이미 개운한 결말은 없을 것이란 심증과 더불어 말이다. 어느새 상황을 주도하는 니지마가 과연 궁극적으로 무얼 바라는지 물음표는 덤.
마치 연극 무대처럼 변한 폐공장 실내에서 몇 안 되는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속고 속이며 동상이몽에 빠진다. 미야시타는 복수가 완성에 가까이 향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미궁을 헤맬 따름이다. 용의자들은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말을 지어내고 부풀리며 '불신지옥'을 조성한다. 속을 알 수 없는 니지마는 그들을 부추기며 혼돈으로 몰아간다. 그 과정이 당사자에겐 비극일 테지만, 보는 이에겐 은근히 코믹한 풍경이다. 죽고 죽이는 총격 장면도 묘하게 비현실적이다.
'자경단'의 사적 구제가 비장한 표정으로 누구도 막아서지 말라는 엄포로 기우는 데 반해, <뱀의 길> 속 풍경은 같은 맥락을 다른 결로 변주한다. 숨 막히게 몰입해야 할 용의자 집단과 전투는 장난감 총으로 서바이벌 게임 수준으로 묘사되고, 목숨 건 추격전도 슬랩스틱 코미디 보듯 어설프기 그지없다. 그렇게 막판까지 기이한 감각의 복수극이 흐르다 결정적인 진실이 밝혀지며 무더위에 갑자기 냉기가 돌 듯 분위기는 뒤집힌다. 모든 개연성이 한 번에 수립된다.
세기말 기이한 감각의 영화
▲<뱀의 길> 스틸㈜디오시네마
영화는 부조리극에서 정통 복수물로 급선회한다. 당시 버블 붕괴 이후 불안과 허무주의에 빠진 일본 사회의 단면, 과잉 팽창한 성 산업의 추악한 이면이 일으킨 범죄에 착안한 영화의 숨은 배경이 주요하게 작동하는 지점이다. <테이큰>이나 <존 윅>처럼, 사실은 강력한 능력자의 가족을 건드린 범죄집단이 철퇴를 맞는 할리우드 스토리의 정확히 대척점에 서는 작업으로 볼 수 있겠다. 밝혀진 진상을 보면 정말 그렇다.
어설프게 반전을 넣었다간 이도 저도 아니게 끝날 위험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냉철한 연출로 제목의 감각을 온전히 살리는 데 성공했다. '악의 평범성'이란 오래된 난제처럼, 잔혹 범죄가 일부 미치광이나 악마적 존재의 소행이라는 맹신에 철퇴를 날린다. 자신이 행하는 게 그저 돈벌이에 불과하다는 변명이 일으킨 끔찍한 결과가 드러날 때 '무간지옥'이란 게 딴 게 아님을 체감하고 만다. 관객은 한 길 사람 속을 의심하지 않고 못 배기게 된다.
<뱀의 길>은 공개된 지 30년이 가까워지는 데도 꾸준히 소환되며 리메이크도 만들어질 정도로 지지층이 탄탄한 작업으로 남았다. 오리지널 비디오 영화라는 소규모 저예산 제작환경 속에서도 오로지 아이디어로 구현한 성과다. 물적 조건 탓하지 않고 창의와 노력으로 승부하는 독립영화 창작자의 자세가 뚜렷하게 각인되는 대목이다. 영화 속 현대사회의 어두운 실체가 세월이 어지간히 흘렀음에도 별달리 해결되지 않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영화는 2024년 같은 감독에 의해 배경을 프랑스로 옮겨 리메이크된다. 남-남 듀오에서 조력자를 여성으로 바꾸고 세부적 변경을 줬지만, 이야기와 기본 설정은 그대로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거장 반열에 올라서며 작품 규모도 제법 커지고 프랑스 명배우도 적잖게 출연하지만 말이다. 복수란 원초적 감정이 갖는 파멸적 결말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진입하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제대로 풀어내는 영화의 생명력은 유효기간 제한이 딱히 없어 보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걸 잃은 자의 마음속엔 무엇이 남아 있을까? 극단적 감정은 사람을 어떻게 변모시킬까? 복수의 범위와 대상, 수위는 어디까지 합당할까? 관객이 판단할 몫이지만, 적어도 남의 일이라 대충 넘어가게 하진 않겠다는 감독의 결기가 서늘하게 다가오는 <뱀의 길>은 후련한 뒷맛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근래 흉악범죄에 대해 sns에 일희일비하며 분위기에 휩쓸려 댓글 반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민이 될 것은 분명하다.
<작품정보>
뱀의 길
蛇の道
Serpent's Path
1998 일본 스릴러/미스터리
2026.07.22. 개봉 85분 15세 관람가
감독/각본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카가와 테루유키, 아이카와 쇼
수입/배급 ㈜디오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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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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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잃은 아빠 이야기가 30년째 소환... 뭐가 다르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