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영화사를 이야기함에 있어 반드시 보아야 하는 작품이 무엇일까. '씨네만세'를 통해 한국 독립영화 약사를 돌이켜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누군가는 써야 마땅한 그 이야기가 얼마 회자되지 않는 때문이며, 그나마 있더라도 이해관계 있는 내부자들의 무조건적인 옹호며 의미부여에 그치고 있는 까닭이다. 한국 독립영화의 출발부터 오늘에 이르는 결코 짧지 않은 흐름 속에서 잠시잠깐이나마 멈추어 서서 들여다 볼 작품을 논하기로 한다.
다행히 거의 모든 작품이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돼 오늘의 관객 누구나가 찾아볼 수 있도록 공개돼 있다. 또한 오늘 다룰 작품을 포함해 상당수 영화는 유튜브 등지에 원본 그대로 올라와 있다. 독립영화의 지난 발자국이 오늘의 관객에게, 또 이 시대에 전할 유효함이 남아 있을까. 분명히 그렇다고 믿는다.
한국 독립영화가 일반적인 독립영화(Independent film)와 완전한 동의어일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렇다고 답할 테고, 또 누구는 달리 보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 모두가 마땅한 이야기지만 후자에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은 알면 달리 보이는 것이 있어서다. 한국 독립영화는 출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밟아온 길이 다른 나라의 독립영화와 분명한 차별점을 갖는다. 그중 상당부분은 우리의 지난 역사가 가진 특수성에 기인한다.
▲노동자 뉴스 1호스틸컷
노동자뉴스제작단
한국 독립영화 초창기엔 이런 영화가
약 30년 간 모든 저항을 억누르는 군부독재를 경험한 한국이다. 학생사회를 중심으로 노동과 농민 등 민중에게 다가서 민주화의 열망을 실현하려는 운동이자 저항의 수단으로 영화가 쓰였단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1990년대 들어 서구의 인디펜던트 필름, 즉 독립영화란 말로 대체되기까지 한국에서 민중영화며 민족영화 등의 표현이 널리 쓰인 것도 그래서다. 즉, 한국 독립영화는 단순히 자본으로부터의 작가주의적 독립만을 뜻하지 않는다. 저항이며 연대, 계몽 등의 지향 또한 담겨져 있는 것이다.
<노동자 뉴스 1호>는 한국 독립영화사를 개괄할 때 반드시 지나치게 되는 작품이다. 오늘의 기준에서 보자면 영화라기보다는 특정 단체며 집단의 홍보영상이자 뉴스영상에 가깝게 보이지만, 공중파 TV매체와 달리 유통되는 저장매체 영상이 곧 영화라 불리던 1980년대 말의 상황을 고려하여 독립영화로 분류하고 평가한다. <노동자 뉴스 1호>는 1989년 1월 결성된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첫 작품이다. 들끓던 당시 노동계 제 현안을 두루 다루는 한 편, 노동계의 염원이던 전국구 노동조직 결성을 위한 전초로 그 목적을 분명히 한다.
1989년이 어떤 해인가. 1987년 민주화운동, 즉 4·13 호헌조치로부터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월항쟁과 서울역 회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운동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대선에선 야권 분열로 신군부의 후신인 노태우가 집권하는 사태가 빚어졌으나, 시민사회 전반에선 더 큰 폭의 민주화 실현과 군부독재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열망이 들끓었다.
▲노동자 뉴스 1호스틸컷
노동자뉴스제작단
이뤄낸 정치 민주화, 단절된 사회 민주화
그로부터 한국 노동사에 획을 그은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6월 항쟁 직후인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간 전국 일터에서 순차적 파업을 이어가며 정치적 민주화를 전 사회적 민주화로 확장하려 한 것이다. 3달 간 전국 사업장 파업만 3300여 건에 이르렀다. 그간 산업화란 명목 아래 억눌러 왔던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성취를 본 때였다. 노동조합 결성부터 임금인상, 노동시간 현실화 등 그간 독재정권이 산업화란 명목 아래 억눌러 왔던 노동자의 권리가 곳곳에서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열악했다.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꼬박 성실히 일하고도 가족을 건사하기 어려운 일터가 곳곳에 산재했다. 휴일과 퇴근시간을 보장받으면서도 최저생계비를 가져갈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한 노동환경이 지켜질 수 있게끔 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를 위해서는 전국적 노동조직이 필요했다. 회사가, 또 법이 알아서 노동자를 위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주길 기대할 수는 없는 때문이다. 특히 노동법 개정 등의 현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전국적 조직이 있어야만 했다. 1989년 임금투쟁을 앞두고 제작된 <노동자 뉴스 1호>가 가장 집중해 다루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몇 개 장으로 나뉜 영화는 마치 서로 다른 단편을 묶어 놓은 옴니버스 영화처럼 보인다. 앞부분은 제목이 표방하듯 여러 꼭지의 뉴스로 채웠고, 유쾌한 애니메이션과 요즈음 유튜브 채널을 연상케 하는 스튜디오 녹화 등으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대체로 뉴스와 조직의 목표 등 정보전달에 치중한단 점에서 이전 시대의 계몽성 짙은 노동영화나 민중영화와 궤를 같이 한다.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의 성과와 위기, 각 기업 노동자가 처한 위태로운 환경, 노동자를 단결한 주체로 묶어내고 고립되거나 와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지가 엿보인다.
노동자를 단일한 계급주체로 바라보고 묘사한다는 점에서 자연인인 동시에 정치적 시민이자 노동현장의 노동자라는 복합적 주체성이 강한 오늘의 인식과는 거리감이 상당하다. 마르크스적 계급투쟁과 혁명에의 가능성을 아직은 품고 있던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노동자 뉴스 1호스틸컷
노동자뉴스제작단
언론이 언론답지 못해서
영화는 현대, LG(럭키금성) 등 오늘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대기업부터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중소규모 업체의 열악한 사업장에 이르기까지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돌아본다. 용역깡패를 고용해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행태,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 가득한 발언들, 노조설립을 막기 위해 위장폐업을 거듭하는 등의 위법행위, 정부가 군부대를 투입해 노조투쟁을 와해한 사건 등 다양한 사례가 언급된다. 무엇보다 영화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은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뉴스'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직접 뉴스를 제작하기로 한 건 기성 언론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관제언론'이라 표현하는 방송과 신문은 현실 가운데 존재하는 노사 갈등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사측의 불법과 폭력을 다루지 않고, 노조의 문제를 침소봉대하기 일쑤다. 언론이 노동에 반하는 정권의 입맛에 맞춰 현실을 왜곡하기에 그에 대응하는 언론을 직접 갖겠다는 의지가 <노동자 뉴스 1호>의 출발점이 된다.
오늘에 이르러 <노동자 뉴스 1호>는 1989년 한국 노동계의 현실을 파악하도록 돕는 기록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이듬해 민주노총의 전신이 되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출범하기까지 자리한 문제와 요구, 또 노동계의 과제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신군부의 정체성을 가진 정권과 그에 영합하는 주류 언론, 3당 합당으로 대표되는 기성 정치인들의 정치만을 고려한 행보들이 하나하나 노동계를 고립시켰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멈춰 있는 대신 스스로의 뉴스를 제작하고, 영상으로 노동자에게 다가서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은 이들이 있었음을 확인한다. 이것이 바로 민중영화이자 저항영화, 또 노동영화로써 한국 독립영화가 해냈던 초기의 역할이 아닌가. 영화는 그저 작가의 창작욕의 발현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요구와 역할에의 부응, 또 사회변혁을 꿈꾸는 혁명적 수단이기도 하다. 그 모두가 영화라는 매체의 일면이란 것을 고려하면 영화의 세계는 보다 깊고 풍요로워진다.
▲노동자 뉴스 1호스틸컷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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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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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할 일 안 해서 직접 찍은 영화...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