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욱이 던진 질문, "올스타전은 야구인가, 쇼인가"

[주장] 분장·세리머니 넘쳐나는 KBO 올스타전, 경기력과 쇼맨십 균형 찾아야

'2026 KBO리그 올스타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올해를 끝으로 철거 예정인 잠실구장에서 44년의 역사를 결산하는 마지막 올스타전이 열리면서 그 의미를 더했다. 잠실구장을 누볐던 LG, 두산 레전드들의 뜻깊은 시구·시포 행사부터 올스타로 뽑힌 선수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활약상까지 더해져 야구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볼만한 화두를 남긴 장면도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 간판스타로 올스타에도 선발된 구자욱은 최근 한 방송에서 인터뷰 도중 관련 질문을 받자 "올스타전에서도 전력으로 제대로 된 경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요즘은 분장이라는 게 너무 많아서 (야구가) 장난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든다"라는 소신을 밝혔다. 분장쇼를 하고 올스타 팬투표 독려 동영상을 촬영하여 화제가 된 정수빈(두산)이 언급되자 "그렇게 뽑히셨으니까 그렇게 하시면 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나눔 올스타의 문현빈이 모나리자 코스프레를 하고 입장하고 있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나눔 올스타의 문현빈이 모나리자 코스프레를 하고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구자욱의 해당 발언이 알려지며 야구팬들 일각에는 엇갈린 반응을 자아냈다. 일각에서는 구자욱이 올스타전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선수들의 노력을 폄하한 게 아니냐는 비판에 휩싸였다. 이에 구자욱은 올스타전 경기 당일,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고 정수빈에게도 사과했다. 정수빈 역시 구자욱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이며 해당 논란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구자욱의 발언은 KBO리그 올스타전의 방향성에 대하여 고민해 볼만한 화두도 남겼다는 평가다. 실제로 구자욱의 의견에 공감하는 팬들의 반응도 많았다. 퍼포먼스를 좋아하는 팬들도 있겠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올스타전에서도 선수들이 '야구 자체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수요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능으로 성공한 KBO 올스타전, 그러나 남은 숙제

미국 메이저리그(MLB)와 한국 야구를 비교하면, '올스타전 문화'의 차이는 두드러진다. MLB 올스타전은 별칭으로 '미드서머 클래식(Midsummer Classic, 한여름날의 빅매치)'로도 불리며, 국제대회 최강자를 가리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orld Baseball Classic), MLB 최강팀을 가리는 월드시리즈(챔피언결정전)의 별칭인 '폴 클래식(Fall Classic)' 등과 더불어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경기 중 하나로 불린다.

그만큼 메이저리그에서는 올스타에 선정되는 자체가 큰 영광으로 여겨진다. 올스타에 몇 번이나 선정되었느냐가 선수의 가치에도 반영되고, 커리어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오타니 쇼헤이, 애런 저지, 어니 클레멘트 등 1년에 한두 번 한 경기장에서 만나기 힘든 최고의 선수들이 올스타전에서 경쟁하는 모습 자체가 희소성이 높고 큰 화제가 된다. 쇼맨십도 있지만 올스타전 콘텐츠의 본질은 역시 야구 그 자체다.

반면 한국의 올스타 문화는 선수들의 경기력으로 승부하기보다는 퍼포먼스에 훨씬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불가피한 리그의 환경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한국 야구는 메이저리그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스타플레이어의 숫자도 부족하다.

단일 리그제에서 이미 같은 팀 간에 10여 경기 이상 자주 맞대결을 펼치는 구도 속에서 올스타전이라도 해도 새로운 볼거리가 부족했다. 이 때문에 한때 KBO 올스타전은 '노잼'이라는 혹평에 시달리며, 정규리그보다도 관심도가 떨어지기 일쑤였다.

분장은 재미를 살렸지만, 주객전도는 경계해야 한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드림 올스타의 황성빈이 강아지 퍼포먼스를 하며 입장하고 있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드림 올스타의 황성빈이 강아지 퍼포먼스를 하며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KBO리그가 고심 끝에 찾아낸 대안은 '올스타전의 예능화'였다. 최근 몇 년간 KBO 올스타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을 꼽으라면 누가 올스타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고 MVP가 되었느냐보다는, 누가 튀는 분장과 기발한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느냐가 더 화제가 된다.

SSG의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은 '맥아더 장군'으로 분장하여 높은 싱크로율을 선보였고, 롯데 황성빈은 배달기사 복장으로 등장하여 '배달의 마황'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분장 퍼포먼스에 대하여 비판적인 발언을 했던 구자욱 본인도 과거 여장을 하고 등장한 적도 있다.

본래는 몇몇 자선 야구 대회에서 가벼운 이벤트식으로 시작됐지만, 반응이 좋아서 최근에는 올스타전 무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제는 야구 선수들이 올스타전에서 대부분 분장쇼를 펼치는 게 당연한 메인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물론 평소 보기 힘든 프로야구 선수들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선수들이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다만 최근에는 정도가 지나쳐서 '주객전도'가 되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선수 중에는 이러한 퍼포먼스를 분명히 부담스러워하는 선수들도 있을 수 있고, 구자욱처럼 야구 경기 본연의 매력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지론을 지닌 선수도 있을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과도한 분장쇼가 남발되면서 예전보다 참신한 희소성도 떨어졌고, 분장을 입고 벗느라 경기 시간이 자꾸 지연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무엇보다 KBO리그에서 올스타전 하면 아직도 1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이벤트 경기'라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올스타에 여러 번 선정되었다고 해도 연봉이 올라가거나 선수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휴식기에 올스타에 선정되어 하는 걸 명예롭다기보다는 내심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각 구단과 감독, 선수들은 후반기 페넌트레이스 성적을 대비하여 올스타전에서는 내심 그리 무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굳이 실익이 없는 올스타전에서 무리하게 전력투구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게 되면 개인이나 팀이나 큰 낭패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은근히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다 보니, 경기력보다는 분장쇼와 세리머니 같은 예능적인 이벤트로 부족한 재미를 채울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통적인 야구팬들 입장에서는, 1년에 한 번 정도는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자존심을 걸고 온 힘을 다해 진검승부하는 올스타전을 보고 싶은 바람도 존재한다. 1970년 MLB 올스타전에서 12회 연장 승부와 피트 로즈의 홈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1999년 올스타전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4연속 삼진쇼, 2013년 특급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마지막 등판과 기립박수 등은 지금도 전설로 회자되는 명장면들이다.

최근 KBO리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올스타전을 향한 관심도와 주목도도 높아졌다. 리그 최고의 야구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예능만 하다가 끝내기에는 뭔가 아쉽다. 올스타전에서도 결과에 따라 승리팀에게 보상을 주거나, 승부치기 제도를 활용하여 에이스급 투수와 강타자의 맞대결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등, 경기력을 더 흥미롭게 끌어올릴 아이디어를 연구해 볼 수 있다.

올스타전이라고 해도 쇼맨십과 경기력 사이 균형을 잡아야 할 필요는 존재한다. 전반부까지는 예능으로 웃음을 줄 때는 주더라도, 후반으로 갈수록 야구 본연의 진지한 경기력과 승부 근성이 조화를 이룬 올스타전이라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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