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역사상 이런 4강 대진표는 없었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아르헨티나가 나란히 4강에 진출하여 대망의 결승 진출을 놓고 맞붙게 됐다.
잉글랜드는 1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가든스의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린 8강전에서 120분 연장 혈투 끝에 주드 벨링엄의 멀티골을 앞세워 노르웨이에 2-1로 역전승을 거뒀다.아르헨티나도 같은 날 미국 캔자스시티 애로헤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8강전에서 연장접전끝에 3대 1로 꺾고 4강 막차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보다 앞서 11일에는 스페인이 8강전에서 벨기에를 2-1, 프랑스는 모로코를 2-0으로 격파하며 4강에 합류했다. 이로서 준결승 대진은 프랑스 대 스페인, 잉글랜드 대 아르헨티나의 대결로 압축됐다.
묘하게도 올해 월드컵 4강 대진표는 나란히 피파랭킹 1-4위팀이 채웠다. 현재 피파랭킹은 프랑스가 1위, 아르헨티나가 2위, 스페인이 3위, 잉글랜드가 4위다. 월드컵 역사상 피파 랭킹 상위 4개 팀으로 대회 4강 대진이 완성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피파랭킹은 각 국가별 대표팀의 축구 수준을 알아보기 쉽도록 점수를 집계하여 측정한 순위지만, 항상 현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월드컵은 단기 토너먼트이기에 피파랭킹이 낮은 팀이 더 높은 팀을 잡는 이변도 자주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우승후보로 꼽히는 피파랭킹 상위 4팀이 모두 살아남았다. 반면 역대 월드컵마다 "한 팀 이상 '이변의 팀'이 4강에 진출한다"는 공식은 이번에는 깨졌다. 1994년 불가리아, 1998년과 2018년의 크로아티아, 2002년의 한국, 2022년의 모로코 등은 모두 해당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깜짝 돌풍을 일으켰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이러한 언더독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배경에는 달라진 월드컵 규모와 일정을 꼽을 수 있다. 월드컵이 48개국 체제로 확대되면서 전통의 강호들이 월드컵 본선에 올라올 수 있는 기회가 더 넓어졌고, 강팀과 약팀간의 격차는 더 뚜렷해졌다. 대진상 우승후보급 강호들이 대회 초반에 만나는 상황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반면 경기수가 늘어나면서 스쿼드가 강력하고 두터운 강팀들이 토너먼트로 갈수록 더 유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피파랭킹에서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A매치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번 4강팀은 모두 월드컵 우승경험이 있으며, 총 우승 횟수는 합산 7회(아르헨티나 3회, 프랑스 2회, 잉글랜드와 스페인 각 1회)에 이른다. 월드컵 우승국간에 4강전을 펼치는 것은 1970년·1990년 대회에 이어 역대 3번째이자 무려 36년만이다.
프랑스는 2018년 러시아 대회 이후 8년 만, 스페인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이후 16년 만에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결전을 벌인다.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1934, 1938년)와 브라질(1958, 1962년) 이후 무려 64년만에 2연속 월드컵 우승을 노린다. 우승 경험이 가장 오래된 잉글랜드는 1966년 자국 개최 대회 이후 60년 만이자 사상 최초의 원정 월드컵 우승을 꿈꾸고 있다.
4팀 모두 누가 최종 우승을 차지해도 이상하지 않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는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도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아르헨티나는 남미대륙 선수권인 코파아메리카를 2회 연속 우승하는 등, 월드컵 포함 메이저대회 3연패를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는 최근 두 번의 월드컵에서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기록했고 이번 대회까지 3회 연속 4강행에 성공했다.
잉글랜드와 스페인은 불과 2년 전 또다른 메이저대회인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24) 결승에서 맞붙었던 팀들이다. 또한 스페인은 최근 A매치 36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만큼 4팀 모두 최근 국제무대에서 최근 꾸준한 성적을 내온 팀들이다.
'강력한 해결사'의 존재도 4강행의 공통적인 원동력이다. 이번 대회는 이전에 비하여 폭발적인 득점력을 지닌 골게터의 비중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킬리안 음바페(프랑스)는 나란히 이번 월드컵에서만 8골로 득점 공동선두에 올라있다. 음바페가 현재 3개의 도움으로, 2도움의 메시보다 앞서있어서 골수가 동률일 경우 골든부츠(득점왕)을 차지하게 된다. 두 선수는 역대 월드컵 개인 최다득점 경쟁에서도 메시가 21골, 음바페가 20골로 불과 한골차의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7골의 엘링 홀란(노르웨이)이 8강에서 탈락하면서, '잉글랜드 듀오' 해리 케인과 주드 벨링엄(이상 6골)이 나란히 공동 4위에 올라 메시-음바페를 2골차로 추격하고 있다. 우스만 뎀벨레(프랑스)도 5골을 터뜨리며 6위에 올라 있다. 도움 부문에서는 마이클 올리세(프랑스)가 5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이미 탈락한 마르틴 외데고르(노르웨이), 브라임 디아스(모로코, 이상 4도움)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스페인은 4강팀중 유일하게 대형 공격수라고 할 만한 선수는 없다. 미켈 오야르사발이 4골을 터뜨르며 공동 7위에 올라있지만 다른 강팀들보다는 무게가 떨어진다. 하지만 축구천재로 불리는 라민 야말(1골)의 컨디션이 갈수록 올라오고 있다.
통계 전문 기업 옵타는 4강팀 중 프랑스의 우승 확률을 33.8%로 가장 높게 전망했다. 이어 스페인(24.2%)과 잉글랜드(22.0%), 아르헨티나(20.1%) 순이다. 프랑스는 이번 대회에서 상대의 거친 플레이 때문에 고전한 파라과이와의 32강전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상대팀들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과시했다. 스페인은 공격진의 무게가 떨어진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점유율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8강전에서 벨기에에게 유일하게 한 골을 내준 것을 제외하면 실점이 없는 견고한 수비력을 자랑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두 팀의 대결을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전망한다.
반면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는 4강까지 올라오는 동안, 내용면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잉글랜드는 토너먼트에서 콩고민주공화국(2-1)-멕시코(3-2)-노르웨이(2-1) 등 비교적 수월한 대진운에도 불구하고 악전고투하다가 3경기 모두 한 골 차 승리에 역전승 두 번으로 힘겹게 준결승까지 올라왔다.
아르헨티나 역시 월드컵 첫 출전국인 축구변방 카보베르데(3-2)에게 혼쭐이 난 데 이어 이집트전(3-2)에서는 2골을 먼저 내주고 역전승, 스위스전(3-2)에서는 연장접전끝에 신승하는 등 내용면에서는 매경기 실점을 허용하면서 우승후보다운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더구나 두 팀은 잉글랜드가 노르웨이전, 아르헨티나는 이집트, 스위스전에서 연이어 '판정 수혜'를 입었다는 논란에 휘말리며 깔끔하지 못한 뒷맛을 남겼다. 두 팀은 과거 포클랜드 전쟁 등으로 인한 역사적 악연도 있어서 그야말로 불꽃이 튀는 대결이 될 전망이다.
피파랭킹 1위 프랑스-3위 스페인의 대결은 15일 오전 4시, 2위 아르헨티나-4위 잉글랜드의 대결은 16일 오전 4시에 각각 킥오프한다. 두 경기 모두 역대급 명승부를 예고하면서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는 당분간 새벽잠을 설치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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