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심의제 철폐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정태춘(오른쪽), 박은옥(왼쪽)
Universal Music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을 비롯한 10명의 국회의원(김윤·임오경·이성윤·윤준병·조계원·박해철·윤후덕·황정아·이기헌)이 음악산업진흥법 개정안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김현 의원실은 "지난 5월 미성년자 시절부터 혐오 표현을 동반한 곡을 다수 발표해 온 래퍼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표현을 담은 공연을 개최하려다 공연장 측의 대관 거부로 취소된 바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청소년 유해 음원이 온라인 플랫폼과 음원 유통망을 통해 확산되는 실태를 모니터링하고 예방하기 위해 마련됐다"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이 언급한 래퍼는 리치 이기(이민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과 조롱, 그리고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인 묘사 등으로 유명해졌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 23일에 콘서트를 개최하려고 했다가 공연이 최종 취소되기도 했다. 리치 이기 같은 뮤지션의 음악이 유통되는 일 자체를 차단하자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으로 보인다.
유해하면 유통 정지? 시장과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라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에 조치 권한을, 음반유통업체에 심사·조치 의무를 규정하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이에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청소년에게 명백하고 중대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유해 음원의 확산을 인지했을 때,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에 긴급히 유통 정지 및 제한을 요청할 수 있는 내용 역시 있다.
리치 이기의 가사에는 분명히 저급하고 혐오적인 내용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아티스트들의 유해성을 '관'이 나서서 막아서는 안 된다. 설령 유해성이 있다 하더라도 시장과 플랫폼, 음악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하게 둘 일이다. 10개의 단체로 구성된 문화예술노동연대는 "명목상 검사의 주체는 유통업자지만 음반과 음원을 유통하기 전에 반드시 청소년 보호법 기준에 따른 검사를 거치도록 한 것은 사실상 사전검열"이라며 날을 세웠다.
발의된 개정안에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판단한 음반 등을 유통하는 경우 음반 등 유통업자는 음반 등 제작자의 나이 및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그 제작자가 청소년인 경우에는 해당 음반 등의 유통을 금지하여야 한다"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다. 이 조항 역시 문제적이다. 청소년 유해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 정권에 따라 기준이 자의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청소년 유해성이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성인이 만들었을 땐 유통이 가능하고, 청소년이 만들었을 땐 유통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내용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Z세대를 상징하는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가 10대 시절 발표한 <에브리띵 아이 원티드(everything i wanted)>에서는 자살 충동에 대한 고백, 그리고 오빠 피니어스에 대한 유대감을 노래했다. 이번 발의안대로라면, 그녀의 노래 역시 청소년 유해 매체로 분류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오늘날 음악은 음원 사이트 뿐 아니라 유튜브, 사운드클라우드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유통된다. 규제 정책의 실효성 자체에도 의문을 갖게 되는 이유다. 제도를 통해 억누른 혐오가 다른 곳에서 튀어 나올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이 법이 지니고 있는 논리에 따르면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검열이 강력하게 작동했던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에서 차별과 혐오가 사라졌어야 마땅하다"라고 비판했다.
30년 전에도, 30년 후에도 <시대유감>
▲매시브 어택은 최근 유럽 투어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커버하면서 서태지의 모습을 전광판에 띄웠다.매시브어택 인스타그램 갈무리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수록곡 <시대유감>은 발매를 앞두고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수정 권고를 받았다.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라는 가사가 기성 세대를 공격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서태지는 이 결정에 저항하며 가사를 들어내고 연주곡 형태로 노래를 발표했다. 이후 팬들이 사전검열 철폐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서태지를 지지하면서 사전검열 철폐 운동에 목소리를 더했다. 이는 민중 가수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오랫동안 이어온 투쟁과 맞물리면서 큰 파괴력을 얻었다. 그리고 이듬해 1996년, 헌법재판소는 음반과 비디오에 대한 의무적 사전 심의를 위헌으로 판정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2026년 5월,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전설적인 그룹 매시브 어택 (Massive Attack)이 핀란드 헬싱키 공연 중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불렀다. "왜 기다려 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이라는 한국어 가사를 직접 노래했다.
지구 반대편의 음악가는 <시대유감>을 둘러싼 사전심의 철폐라는 맥락에도 주목했다. 매시브 어택은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 "서태지 팬들의 분노와 공적 행동은 정부가 악명 높은 '사전 검열' 제도를 폐지하도록 강력히 압박했다. 이후 해당 곡은 보컬과 가사가 포함된 버전으로 다시 발표되었다"라는 언급을 잊지 않았다.
<시대유감>의 나라에서, 2026년판 사전 심의제를 말하는 이들이 있다. 표현의 자유를 확대한 30년의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다. 이 발의안은 예술 본연의 기치인 자유, 정태춘과 박은옥, 서태지 팬들의 투쟁, 그리고 김대중의 유산과 배치되는 길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던 박근혜 정부, 부마항쟁 기념식날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가 공연되지 못하도록 막았던 윤석열 정부와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1996년도, 그리고 2026년도 <시대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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