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성냥공장 성냥춤(2024)
김은정
〈군기의 역사〉가 다루는 군기는 누군가를 때리는 직접적인 폭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모욕적인 말,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규칙, 집합과 기합, 시간의 통제, 침묵의 강요도 폭력에 포함된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오랫동안 반복되면 몸 안에 자기검열을 심는다.
"집단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규칙을 지키는 것과는 다른 문제예요. 인사와 언행 같은 행동거지나 옷차림까지 통제하는 거죠. 그것은 성실한 예술가가 가져야 할 규율과는 달라요."
예술은 자유로운 표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자유롭게 움직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이 먼저 몸과 말을 검열하도록 훈련받는다. 이세승은 그것이 무용교육이 품고 있는 아이러니라고 했다. 무용계에서는 종종 '한국의 무용수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만 개성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세승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되묻고 싶었다.
"그게 과연 무용수들의 문제일까요? 그런 무용수와 안무가를 만든 시스템은 무엇인지 반문하고 싶어요. 그것이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이기도 합니다."
틀리지 않는 동작을 요구하고, 지시에 잘 따르는 태도를 칭찬하고, 집단 안에서 튀지 않는 몸을 만들어놓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왜 자기만의 목소리가 없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무용수의 몸에서 개성을 지운 것이 누구인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군기의 역사〉가 겨누는 것은 특정한 스승이나 한 학교가 아니다. 한국의 무용학교와 무용학원, 선배와 후배,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어떤 몸이 만들어져 왔는지 묻는다. 작품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가운데 하나는 2025년, 부산에 소재한 어느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죽음이었다.
"야만의 시절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구나 깨달았어요. 진보적인 관점의 작업과 실천을 지향하는 집단도 있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폭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처음에는 '그곳은 그렇지만 여기는 다르다'며 거리를 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폭력은 과거의 무용담이나 일부 학교의 문제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 전통과 교육, 실력과 성실함이라는 이름 아래 지금도 반복될 수 있다. 더 두려운 건 자신도 그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 자신이 어떤 폭력을 부지불식간에 행사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두려움도 있어요."
자신이 겪은 상처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침묵을 요구하지 않았는지, 익숙한 위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폭력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학습되고, 학습된 사람을 통해 다시 다음 몸으로 전달된다.
〈군기의 역사〉가 과거를 들춰내는 이유는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의 몸 안에 남아 있는 폭력을 확인하고, 더 이상 다음 몸으로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다.
또 다른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이세승 안무가 프로필옥상훈
폭력을 무대에 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과거에 벌어진 일을 그대로 재현하면 출연자가 폭력적인 상황에 다시 노출될 수 있다. 반대로 상징과 은유에만 기대면 실제 고통을 아름다운 장면으로 소비할 위험이 있다.
누군가의 증언을ㅗ 어디까지 사용할 것인지, 익명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무대에 서는 퍼포머의 동의와 안전, 작품 안에 존재하지 않는 피해자를 대신해 말하는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이세승은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정답은 없고 오답은 분명한 문제 같아요. 쉽지 않습니다."
작품의 주제가 정의롭다고 해서 창작 과정까지 저절로 윤리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을 비판하면서 무용수의 몸을 안무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작품은 스스로 던진 질문과 충돌한다.
"움직임을 개발하고 무대에서 선보일 몸짓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작업의 과정이 걸치고 있는 몸과 몸짓의 윤리성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요."
그가 '아르코 댄스 UP:RISE' 제작진과 동료 안무가들에게 묻고 싶은 것도 이 지점이다. 각자는 주제를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무용수들과 어떤 방식으로 협의하는지, 안무가의 권한과 무용수의 동의 사이에서 어떤 방법을 찾고 있는지 나누고 싶다고 했다.
〈군기의 역사〉는 공연으로 끝나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동료 무용가들의 경험과 전문가들의 연구를 모아 개인의 기억을 공동의 역사로 기록하는 책도 구상하고 있다. 그가 쓰려는 역사는 누가 더 힘들었는지를 겨루는 '라떼는 말이야'식 무용담이 아니다. 영광스러운 순간과 성공한 사람만 기록하는 역사도 아니다.
"역사는 영광스러웠던 순간들로 점철되기 쉬워요. 하지만 어두웠던 부분도 존재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말하며 묻어버리기보다는 껴안고 가야 해요."
그가 말하는 '껴안는다'는 것은 잘못을 덮거나 없던 일로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며 그 흔적이 현재의 몸과 관계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확인하자는 말이다. 그 질문은 결국 한 사람의 몸에서 시작한다.
나는 왜 공연장에 가기 싫은가. 누군가를 만나기도 전에 왜 몸부터 긴장하는가. 나는 무엇을 배우며 무용수가 됐고, 그 집단에 남기 위해 무엇을 말하지 못했는가.
개인의 질문은 학교와 학원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선배와 후배의 질서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무용계는 어떤 춤추는 몸을 만들어왔는가라는 질문에 도착한다. 춤은 공연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춤을 만든 제도와 관계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군기의 역사〉가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것은 이미 끝난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인사하는 자세와 낮아지는 목소리, 이유를 묻지 않는 침묵, 공연장으로 향하기를 망설이는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역사다.
이세승 안무가는 그 역사를 다시 몸 위에 올리려 한다. 폭력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같은 몸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 무용계가 답할 차례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몸을 춤추게 할 것인가?"
한편, '아르코 댄스 UP:RISE'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진행한 무용 기획·제작 프로그램으로 중견 무용 창작자의 장작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군기의 역사>를 포함해 선정된 작품들은 오는 11월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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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