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용수, 개성 약하다고?... "두려움 있었죠"

[인터뷰] '아르코 댄스 UP:RISE' <군기의 역사>의 이세승 안무가

"공연장에 가기 싫을 때가 있어요."

몸짓으로 먹고사는 무용수가 공연장에 가기 싫다니. 작품을 보고 동료를 만나며 새로운 움직임을 발견하는 곳이 아닌가. 게다가 자신이 만든 춤을 관객 앞에 내놓는 곳이다. 그런데 이세승 안무가는 공연을 보러 가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발걸음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누군가와 마주치는 게 불편한 거예요. 그런데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명확하지는 않아요.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곳인데, 그런 마음에 휩싸이면 정말 불편하죠."

누구를 피하고 싶은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오래전에 지나간 일 때문인지, 여전히 이어지는 관계의 문제인지도 선명하지 않다. 다만 머리가 잊었다고 생각한 것을 몸은 기억한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먼저 굳어버리는 몸, 목소리를 낮추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습관, 이유를 묻기보다 침묵을 선택하는 태도 속에 지나온 시간이 남는다.

지난 1일 춘천에서 만난 이세승 안무가가 '아르코 댄스 UP:RISE'를 통해 준비하는 신작 〈군기의 역사〉는 바로 그 몸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작품이 던지는 첫 질문은 단순하다. 한 명의 무용수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무용수의 시간

 이세승 안무가 프로필
이세승 안무가 프로필옥상훈

무용수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고, 틀린 자세를 고치며, 몸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몸에 새겨지는 것은 춤의 기술만이 아니다. 인사하는 방식과 기다리는 자세, 선배와 스승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배운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어떤 말투를 써야 하는지,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도 익힌다. 그렇게 한 명의 무용수는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춤을 가르친 것일까 아니면 침묵하는 법을 가르친 것일까.

"우리가 추는 춤은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이세승은 자신을 안무가나 무용수, 드라마투르그, 교육자 가운데 하나로 한정하지 않는다. 여러 역할 사이를 오가며 활동해 온 그는 자신을 '무용가'라고 소개한다. 무용수로 춤을 추고, 다른 창작자의 작업을 함께 고민하고, 움직임을 가르치며 워크숍을 진행해 왔다. 하나의 역할에 머물지 않았던 시간은 그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춤 바깥으로 향하게 했다.

"여러 역할을 맡으면서 얻게 된 것은 바깥에 대한 관심이에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현상과 사건을 보고 들으면서, 밖으로 향하는 것이 예술에서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동안 그의 에너지는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바깥으로 향했던 에너지를 자신의 안무 안으로 모아보고 싶다고 했다.

"세상이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에 화답하는 것이 균형을 맞추는 일 아닐까요? 밖으로 향했던 에너지를 제 관점으로 모아보고 싶은 열망도 생겼어요. 무엇보다 작업과 안무를 고민할 때 느끼는 설레는 행복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상반된 두 개의 질문을 품었다. '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이 춤이 될 수 있는가.' 이세승은 이처럼 모순적인 존재에 끌린다고 했다. 움직임과 정지, 개인과 집단, 몸과 춤처럼 서로 반대편에 놓인 것들이 한순간에 함께 존재하는 장면에 마음이 간다. 춤도 그렇다. 몸이 춤을 만들지만 춤이 시작되는 순간, 몸은 조금 전과 다른 존재가 된다. 그는 어린 시절 터보의 〈트위스트 킹〉에 맞춰 막춤을 추던 기억을 꺼냈다.

"막춤을 추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무아지경에 빠지기도 했어요. 어떤 선배가 윈드밀을 추면 그 선배의 몸은 기하학적인 타원형 그 자체가 되기도 했고요. 움직임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기적 같았어요."

한 사람의 몸이 움직임을 통해 전혀 다른 형상으로 변하는 순간. 그 기적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의 몸을 넘어 여러 몸과 집단, 공동체와 사회로 확장됐다.

"나 또는 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추는 춤은 또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상상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춤이 공연장 밖으로 나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서울시청 앞에서 시민·활동가들과 흰 천을 들고 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백의 춤〉을 안무하고 직접 참여했다. 그날 그가 중요하게 바라본 것은 화려한 동작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몸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구호나 연설이 언어적인 방식이라면 퍼포먼스의 몸짓은 언어와 다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견고한 언어의 권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다른 힘을 지닌 매체가 도움이 되는데, 저에게는 그것이 몸과 춤입니다."

춤은 무대 위에서 힘을 '발휘'하지만 공연이 끝나면 곧 '휘발'된다. 그러나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장면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본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

"춤과 몸짓이 사라지기 때문에 생명력을 가진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라짐의 숙명에 허무감을 갖기보다는, 그 생명력을 어떻게 더 찬란하게 연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해요."

사라졌기 때문에 끝난 것이 아니라, 사라진 뒤 다른 몸과 시간 속에서 살아남는 것. 그것이 그가 믿는 춤의 힘이다.

뛰어난 기술은 있는데...

 의성성냥공장 성냥춤(2024)
의성성냥공장 성냥춤(2024)김은정

〈군기의 역사〉가 다루는 군기는 누군가를 때리는 직접적인 폭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모욕적인 말,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규칙, 집합과 기합, 시간의 통제, 침묵의 강요도 폭력에 포함된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오랫동안 반복되면 몸 안에 자기검열을 심는다.

"집단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규칙을 지키는 것과는 다른 문제예요. 인사와 언행 같은 행동거지나 옷차림까지 통제하는 거죠. 그것은 성실한 예술가가 가져야 할 규율과는 달라요."

예술은 자유로운 표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자유롭게 움직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이 먼저 몸과 말을 검열하도록 훈련받는다. 이세승은 그것이 무용교육이 품고 있는 아이러니라고 했다. 무용계에서는 종종 '한국의 무용수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만 개성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세승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되묻고 싶었다.

"그게 과연 무용수들의 문제일까요? 그런 무용수와 안무가를 만든 시스템은 무엇인지 반문하고 싶어요. 그것이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이기도 합니다."

틀리지 않는 동작을 요구하고, 지시에 잘 따르는 태도를 칭찬하고, 집단 안에서 튀지 않는 몸을 만들어놓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왜 자기만의 목소리가 없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무용수의 몸에서 개성을 지운 것이 누구인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군기의 역사〉가 겨누는 것은 특정한 스승이나 한 학교가 아니다. 한국의 무용학교와 무용학원, 선배와 후배,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어떤 몸이 만들어져 왔는지 묻는다. 작품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가운데 하나는 2025년, 부산에 소재한 어느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죽음이었다.

"야만의 시절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구나 깨달았어요. 진보적인 관점의 작업과 실천을 지향하는 집단도 있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폭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처음에는 '그곳은 그렇지만 여기는 다르다'며 거리를 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폭력은 과거의 무용담이나 일부 학교의 문제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 전통과 교육, 실력과 성실함이라는 이름 아래 지금도 반복될 수 있다. 더 두려운 건 자신도 그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 자신이 어떤 폭력을 부지불식간에 행사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두려움도 있어요."

자신이 겪은 상처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침묵을 요구하지 않았는지, 익숙한 위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폭력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학습되고, 학습된 사람을 통해 다시 다음 몸으로 전달된다.

〈군기의 역사〉가 과거를 들춰내는 이유는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의 몸 안에 남아 있는 폭력을 확인하고, 더 이상 다음 몸으로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다.

또 다른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이세승 안무가 프로필
이세승 안무가 프로필옥상훈

폭력을 무대에 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과거에 벌어진 일을 그대로 재현하면 출연자가 폭력적인 상황에 다시 노출될 수 있다. 반대로 상징과 은유에만 기대면 실제 고통을 아름다운 장면으로 소비할 위험이 있다.

누군가의 증언을ㅗ 어디까지 사용할 것인지, 익명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무대에 서는 퍼포머의 동의와 안전, 작품 안에 존재하지 않는 피해자를 대신해 말하는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이세승은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정답은 없고 오답은 분명한 문제 같아요. 쉽지 않습니다."

작품의 주제가 정의롭다고 해서 창작 과정까지 저절로 윤리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을 비판하면서 무용수의 몸을 안무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작품은 스스로 던진 질문과 충돌한다.

"움직임을 개발하고 무대에서 선보일 몸짓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작업의 과정이 걸치고 있는 몸과 몸짓의 윤리성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요."

그가 '아르코 댄스 UP:RISE' 제작진과 동료 안무가들에게 묻고 싶은 것도 이 지점이다. 각자는 주제를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무용수들과 어떤 방식으로 협의하는지, 안무가의 권한과 무용수의 동의 사이에서 어떤 방법을 찾고 있는지 나누고 싶다고 했다.

〈군기의 역사〉는 공연으로 끝나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동료 무용가들의 경험과 전문가들의 연구를 모아 개인의 기억을 공동의 역사로 기록하는 책도 구상하고 있다. 그가 쓰려는 역사는 누가 더 힘들었는지를 겨루는 '라떼는 말이야'식 무용담이 아니다. 영광스러운 순간과 성공한 사람만 기록하는 역사도 아니다.

"역사는 영광스러웠던 순간들로 점철되기 쉬워요. 하지만 어두웠던 부분도 존재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말하며 묻어버리기보다는 껴안고 가야 해요."

그가 말하는 '껴안는다'는 것은 잘못을 덮거나 없던 일로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며 그 흔적이 현재의 몸과 관계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확인하자는 말이다. 그 질문은 결국 한 사람의 몸에서 시작한다.

나는 왜 공연장에 가기 싫은가. 누군가를 만나기도 전에 왜 몸부터 긴장하는가. 나는 무엇을 배우며 무용수가 됐고, 그 집단에 남기 위해 무엇을 말하지 못했는가.

개인의 질문은 학교와 학원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선배와 후배의 질서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무용계는 어떤 춤추는 몸을 만들어왔는가라는 질문에 도착한다. 춤은 공연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춤을 만든 제도와 관계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군기의 역사〉가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것은 이미 끝난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인사하는 자세와 낮아지는 목소리, 이유를 묻지 않는 침묵, 공연장으로 향하기를 망설이는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역사다.

이세승 안무가는 그 역사를 다시 몸 위에 올리려 한다. 폭력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같은 몸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 무용계가 답할 차례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몸을 춤추게 할 것인가?"

한편, '아르코 댄스 UP:RISE'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진행한 무용 기획·제작 프로그램으로 중견 무용 창작자의 장작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군기의 역사>를 포함해 선정된 작품들은 오는 11월 무대에 오른다.
덧붙이는 글 “몸”이 지닌 역사를 “춤”으로 질문하는 이세승 안무가의 아르코 댄스 UP:RISE  ‘스테이지1’ <군기의 역사>는 11월 12일 오후 4시와 오후 7시 30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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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