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에 서울체임버홀에서 공연한 오름새의 'FIT: 연희의 새물결' 공연 장면
이규승
이날 무대에 오른 작품은 전통연희 창작밴드 오름새의 'FIT: 연희의 새물결'이었다. 오름새는 지난해 국악방송이 주최한 경연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결성됐다. 기타 곽동균, 소금 허준혁, 베이스 이수민, 드럼 김동빈, 보컬 송창현 등 서로 다른 영역의 연주자들이 국악과 밴드 음악을 결합한 무대를 준비했고, 마침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경연이 끝난 뒤에도 이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대회를 위해 만든 음악과 무대를 한 번으로 끝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름새 보컬 송창현씨는 "조금 더 다듬어 우리나라 전통연희를 살린 밴드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름새는 전통 장단과 소리, 상모와 추임새에 기타와 베이스, 드럼 등 밴드 사운드를 결합한다.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물기보다 오늘의 관객이 몸을 움직이고 목소리를 보태며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풀어낸다.
올해 처음 공연봄날에 지원해 선정된 오름새는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에서 세 차례 공연했다. 전날에는 초등학생 단체 관람을 시작으로 가족과 일반 시민을 위한 저녁 공연을 비롯해 당일 중학생 대상 공연까지 서로 다른 관객을 만났다. 이날 무대는 올해 예정된 공연봄날의 마지막 회차였다.
송씨는 "처음에는 국악과 밴드의 조합이 낯설 수 있지만, 공연이 이어질수록 무대와 객석이 함께 하나의 판을 만들어간다"며 "관객과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 음악이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공연에서는 "연예인이 된 것처럼 함성이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과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에서는 궂은 날씨로 일부 관객이 오지 못했지만, 객석을 채운 이들이 집중도 높은 호응을 보냈다. 중학생들은 처음에는 조심스러웠으나 공연이 진행되면서 박수와 추임새로 적극적으로 화답한 점이 달랐다 설명했다.
아이들의 첫 교외 활동
서초중학교 학생들에게 이날은 1학기 들어 처음으로 학교 밖에 나온 날이었다. 이날 공연을 함께한 최창주 교사는 학교 문화체험 활동을 준비하면서 여러 공연을 살펴보다 오름새의 무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무슨 공연인지 궁금해했어요. 그런데 국악과 다른 음악이 섞여 있는 퓨전 공연이라니까 '그러면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반 학생 중에는 자신이 국악을 되게 좋아한다며 그 공연을 보고 싶다고 말한 아이도 있었고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전통음악을 전혀 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음악 교과서에서 국악기를 배우고 수업 시간에 공연 영상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 공연장에 앉아 연주자의 움직임과 표정을 직접 보고, 악기의 진동을 몸으로 느끼는 기회는 많지 않다. 최 교사는 "음악 선생님이 재량으로 영상을 보여주는 경우가 아니면 학교에서 이런 공연을 직접 볼 기회는 많이 않다"며 "특별한 문화체험 활동이 있거나 학생이 개인적으로 찾아가지 않는 이상 공연장에서 국악을 접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영상으로도 음악은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드럼과 베이스의 진동이 좌석과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 연주자의 손끝과 표정, 상모의 긴 끈이 허공에 그려내는 궤적은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객석의 박수가 다시 연주자의 힘이 되고, 무대에서 날아온 선창이 학생들의 목소리로 돌아오는 과정도 화면으로는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첫 장단이 울리자 친구와 이야기하던 학생들의 시선이 무대로 향했다. 밴드의 강한 비트 위로 국악기의 음색이 뻗어나갔다. 전통악기와 현대악기가 번갈아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이 아니었다. 서로의 소리를 밀고 당기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었다.
"얼씨구, 좋다"
▲공연 중에도 박수와 환호를 멈추지 않는 서초중학교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규승
오름새는 학생들을 조용히 앉아 음악을 듣는 관객으로만 두지 않았다. 무대에서 먼저 말을 걸고 박수와 추임새를 이끌었다. 객석의 반응이 적으면 한 번 더 요청했고, 학생들이 크게 화답하면 그 에너지를 연주에 다시 실었다. 공연 초반 객석을 향한 조명이 밝아 앞줄 학생들이 손으로 눈을 가리자 무대 위 연주자가 이를 발견했다.
"학생들이 눈을 가리고 있어요. 객석을 비추는 조명을 조금만 약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어 학생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조명이 조금 어두워지면 저희에게 박수 많이 쳐줄 수 있나요?"
객석에서는 웃음과 함께 큰 박수가 돌아왔다. 정해진 음악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표정과 움직임까지 살피는 장면이다. 자신들의 반응이 무대에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학생들은 조금씩 공연 안으로 들어왔다.
"제가 '얼씨구'라고 하면 여러분은 '좋다'라고 해주세요."
무대에서 선창이 나왔다.
"얼씨구!" "좋다."
첫 대답은 적았다. 일부 학생은 쑥스러운 듯 옆 친구를 바라봤고, 누군가는 입 모양만 따라 했다. 연주자는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목소리는 달랐다. 174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소리를 냈다. 함성 위로 박수가 겹쳤다. 두 손을 입가에 모아 더 크게 외치는 학생도 있었고,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타는 학생도 보였다.
한 학생이 유난히 큰 목소리로 외치자 무대에서는 "저 친구 목소리가 제일 크네요. 지켜보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학생들의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막는 대신 공연 안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전통연희가 가진 '판'의 성격을 보여줬다. 연주자가 소리를 내면 관객이 박수와 추임새로 답하고, 그 소리가 다시 무대의 흥을 높였다.
오름새는 국악의 개념과 역사를 먼저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박수를 치게 하고 후렴구를 따라 부르게 하면서 전통연희의 구조를 몸으로 경험하도록 했다. 교과서에서 '추임새'의 뜻을 읽는 것과 공연장에서 친구들과 "좋다"를 외치는 것은 다르다. 학생들은 국악을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하는 지식이 아니라 함께 소리치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현재의 음악으로 만났다.
상모가 등장하자 공연장의 열기는 한층 높아졌다. 연희자가 고개를 돌리자 상모의 긴 끈이 허공에 하얀 원을 그렸다. 장단이 빨라질수록 원은 커지고 복잡해졌다. 학생들의 고개도 상모 끝을 따라 움직였다. 연희자가 몸을 낮췄다가 일어나며 궤적을 바꾸자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학생들은 별도의 설명을 듣기 전에 눈앞의 움직임으로 전통연희의 역동성과 연희자에게 축적된 훈련의 시간을 확인했다.
무대의 응원
▲공연 장면
이규승
공연이 끝을 향해 가자 연주자는 학생들에게 "오늘 공연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름새가 그리는 동양의 광대를 담은 '광대가'가 이어졌다. 무대 위 광대는 웃음과 흥을 객석에 건넸고 학생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공연 초반 친구들에게 더 관심을 보이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학생들의 시선은 무대 위 몸짓과 음악을 따라갔다. 마지막에는 학생들에게 익숙한 노래 'Butterfly'가 연주됐다. 송창현씨는 노래를 시작하기 전 청소년들을 향한 응원을 건넸다.
"학교생활과 친구들과의 생활, 앞으로 사회에 나아가서까지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 공연을 소중한 추억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으면 합니다."
후렴구를 아는 학생들에게 함께 불러달라는 부탁도 이어졌다. 국악과 밴드 음악으로 낯선 문을 열었던 공연은 학생들의 앞날을 응원하는 익숙한 노래로 마무리됐다.
이날 공연의 의미는 학생들이 재미있는 국악 무대를 봤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학교 밖으로 나와 전문 공연장에 앉고, 예술가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청소년이 공연장을 찾는 일은 개인의 관심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여러 학급이 함께 움직이려면 관람료와 교통비, 수업 일정과 안전관리,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까지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최창주 교사는 학교가 문화체험 활동을 마련할 때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로 비용을 꼽았다.
"학교에서 학생 한 명에게 문화체험 활동비로 쓸 수 있는 금액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관람료 부담 없이 질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했어요. 학교 입장에서는 정말 반가운 일이었죠."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는 가정의 관심이나 경제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쉽다. 가족과 공연장을 자주 찾는 학생이 있지만, 학교가 기회를 마련하지 않으면 전문 공연장에서 공연을 한 번도 보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공연봄날은 학교와 공연장을 연결해 그 간격을 줄인다. 공연장이 낯선 학생에게 첫 관람의 문턱을 낮추고, 개인의 환경과 관계없이 친구들과 국악을 보고 듣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문화예술교육이 반드시 교사가 설명하고 학생이 받아 적는 방식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공연장에서 크게 웃고, 장단에 맞춰 손뼉을 치고, 무대 위 연주자의 땀과 호흡을 바라보는 것도 배움이다.
이날 공연으로 누군가에게는 친구들과 함께한 외출이, 누군가에게는 상모가 그린 커다란 원이, 또 다른 학생에게는 "얼씨구, 좋다"를 외친 순간이 가장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나왔고 실제 공연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국악을 만났다.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보고, 듣고,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공연 전 "무슨 공연이야"라고 묻던 학생은 공연이 끝난 뒤 말했다.
"엄청 신났어요. 텐션도 올랐고요."
그날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에서 열린 것은 한 편의 국악 공연만이 아니었다. 174명의 학생이 낯선 전통을 만나고 자신의 목소리로 무대에 응답하며 경험의 폭을 한 뼘 넓힌 교실 밖 국악 수업이었다.
▲전통연희 창작밴드 오름새가 공연을 마치고 무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규승
▲공연봄날의 공연이 펼쳐진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의 입구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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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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