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작뮤지컬 '보옥' 장면
해소문화
중국어 원어 공연이라는 점은 한국 관객에게 분명히 높은 장벽이다. 특히 원작의 인물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초반에는 이름과 관계, 상징을 따라가느라 조금 늦게 작품 안으로 들어갈 지 모른다. 드레스리허설에서도 그 지점은 분명히 보였다. 서사는 친절하려 애쓰지만, 원작이 워낙 방대하므로 인물의 감정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는 인상도 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철저하게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시선의 문제였다. 〈보옥〉은 화려한 무대와 의상,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오롯이 바라보는 즐거움이 큰 작품이다. 그런데 공연이 중국어 원어로 진행되고, 자막이 무대 좌우 작은 스크린에 배치되다 보니 관객은 자연스럽게 두 방향 사이에서 시선을 나눠야 한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자막에 집중하면 배우의 표정과 몸짓, 물 위에 번지는 빛의 결을 놓치기 쉽다. 반대로 무대에 시선을 두면 대사의 의미를 따라가는 데 늦어진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것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하루는 원어 공연이 지닌 원론적 한계이기도 하지만, 〈보옥〉처럼 시각적 미장센이 강한 작품에서는 더 크게 느껴지는 아쉬움이다.
특히 이 작품의 매력은 말보다 장면에 많이 기대고 있다. 붉은 혼례의 온도, 물 위로 번지는 파문, 푸른빛으로 사라지는 임대옥의 얼굴, 보옥의 몸짓에 실리는 망설임은 모두 눈으로 붙잡아야 하는 순간들이다. 그런데 자막을 따라가는 동안 그 순간들이 조금씩 미끄러져 지나간다. 그래서 공연을 보는 내내 관객은 선택해야 한다. 지금은 의미를 읽을 것인가, 장면을 볼 것인가. 그 선택의 반복은 작품의 몰입을 돕기도 하지만, 동시에 온전한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얼굴은 그 빈틈을 메운다. 보옥 역의 장저는 소년성과 운명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는 철없는 도련님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이 이미 끝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선다. 임대옥은 병약한 슬픔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섬세하지만 단단하고,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자기 감정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설보채는 조용하지만 결코 희미하지 않다. 화려하게 밀고 나가는 왕희봉은 무대에 다른 온도를 만든다.
결국 이 공연에서 가장 많이 보아야 할 것은 배우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가장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좌우의 자막이었다. 이 아이러니가 아쉽다. 〈보옥〉은 눈으로 따라가야 할 장면이 많은 작품이다. 그 얼굴들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면, 이 작품의 매혹은 훨씬 더 온전히 전달됐을 것이다.
대구를 거쳐 서울로, 중국 창작뮤지컬의 현재
▲중국 창작뮤지컬 '보옥' 서울공연 공식 포스터아르코
〈보옥〉은 지난 7월 3일~4일까지 대구수성아트피아 대극장에서 제20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공동 폐막작으로 관객을 만났다. 여기에 대상 수상으로 그 존재감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이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공동기획 공연으로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7월 10일과 11일까지 단 이틀간만 주어진다. 대구에서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 서울로 옮겨오며, 한국 관객은 중국 창작뮤지컬의 현재를 가까이에서 확인하게 됐다.
이 작품은 완벽한 공연이라기보다 흥미로운 공연이다. 우리가 또 언제 중국의 오리지널 뮤지컬을 경험할 수 있을까. 『홍루몽』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낯설 수 있고, 원작을 깊이 아는 관객에게는 생략과 변형이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음악 역시 모든 넘버가 일관되게 귀에 남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곡은 장면의 정서를 밀어 올리지만, 어떤 곡은 이미지의 힘에 비해 다소 설명적으로 다가온다.
다만 〈보옥〉은 분명 볼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이다. 중국 창작뮤지컬이 고전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무대화하고 있는지, 전통미학과 현대 뮤지컬 문법을 어떻게 접합하고 있는지 증명한다. 특히 무대미술, 의상, 조명, 수무대의 활용은 한국 관객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운 관극 경험이 될 만하다.
드레스리허설이 끝나고 객석의 불이 켜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줄거리가 아니다. 물 위에 번진 빛, 붉은 혼례복의 싸늘한 아름다움, 푸른빛으로 사라지던 임대옥의 얼굴, 그리고 끝을 알면서도 앞으로 걸어가던 보옥의 뒷모습이다.〈보옥〉은 완벽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한 가지 장면을 오래 남긴다. 허무를 알고도 사랑 쪽으로 걸어가는 한 사람의 뒷모습. 그 뒷모습이 이 낯선 중국 뮤지컬을 한국 관객에게도 꽤 오래 남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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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