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폴'은 아내 '카미유'와 함께 이탈리아 남부에 도착한다. 미국 영화 제작자 '제리'가 각본 수정을 위해 초빙한 것.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통역을 맡은 '프란체스카'가 맞는다. 그곳에서 이들은 감독 '프리츠 랑'과 인사를 나눈다. 그의 신작 <오디세이>가 바로 폴이 손볼 작품이다. 거장과의 만남에 들뜬 폴과 달리 제작 방향에서 대립을 겪던 제리와 감독 사이는 싸늘하기만 하다.
제작에 난항을 겪는 데다가 원래 주변 사람들에 안하무인인 제리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대작 영화 각본가로서 받을 금액을 포기할 수 없는 폴은 최대한 그에게 맞춰주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모가 출중한 아내를 '선물'처럼 제작자와 시간을 보내게 하는 바람에 부부 사이는 불편해진다. 다툼을 거듭하면서도 부부는 카프리섬 휴가를 함께 하자는 초대에 응한다. 지중해 풍광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둘의 관계는 점점 더 냉랭하다.
체면과 허위의식이 불러온 경멸과 파국
▲<경멸> 스틸
라이트하우스
시작부터 부부의 관능적인 순간이 묘사된다. 꽤 나이 차이 있는 폴과 카미유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서로에게 매력과 신뢰를 지니고 있음을 과시하는 듯하다. 그들은 오랜만에 들어온 큰 건에 기대감을 품고 기꺼이 장거리 여행을 감행한다. 거대한 스튜디오에 도착해 경탄도 잠시, 촬영 과정이 순탄치 않은 상황은 곧 체감된다. 일을 의뢰한 제작자는 감독과 마찰을 빚는 중이라 신경은 곤두서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카미유의 미모를 굳이 언급하는 것도 괴이쩍다.
제리는 의도적으로 부부를 떼어놓고 무례하게 상대의 아내와 자신이 드라이브할 테니 남편은 따로 택시를 타고 오라 통보한다. 카미유는 당연히 폴이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거라 믿었지만, 남편은 어째 순순히 동의한다. 게다가 뒤따르던 폴은 사정이 생겼다며 한참 늦게서야 도착하는 통에 카미유는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친근하던 부부 사이엔 의심이 싹튼다. 아내는 남편이 돈벌이를 위해 고용주에게 잘 보이려 자신을 '선물'로 제공한 기분이다.
한 번 벌어진 간격은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다. 첫 만남 이후 숙소로 돌아간 부부는 냉전을 개시한다. 카미유는 별안간 각방을 쓰겠다 하고, 폴은 아내의 돌변에 혼란스럽다. 자상하게 보듬으려 하지만 황을 악화시키기만 한다. '내가 누구 때문에 내키지 않는 일을 맡기로 했는데!'라며 상대에게 결정을 떠넘긴다. 이건 나라별 차이를 떠나 서먹한 상황에 절대 해선 안 될 언행이다. 하지만 폴의 대처는 모호하고 아내 못지 않게 충동적이기만 하다.
그래도 파국은 원치 않던 둘은 어떻게든 봉합을 시도한다. 하지만 번번이 툭 터지는 갈등은 도무지 수습 기미가 없다. 자꾸만 번지수 헛짚는 폴에게 염증이 난 카미유는 급기야 남편을 '경멸'하는 지경에 이른다. 남편은 필사적으로 파국을 막으려 해도 여전히 아내 입장에서 공감 능력은 보여주지 못한다. 카미유가 왜 자신이 그에게 실망한 건지 은유적으로 암시해도 폴은 늘 결정적 해결 기회에 엇박자를 낸다. 큰 기회를 놓치기 싫은 '속물' 면모가 발목을 잡는다.
폴은 아내가 원하는 게 어떤 태도인지 알면서도 지식인의 허위의식과 속물성을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그는 젊은 아내에게 결정권을 위임하며 통큰 척하지만, 상대는 단번에 그의 핑계 만들기 의도를 포착한다. 연인에게 추파를 던지는 고용주에게 맞서 단호히 자신을 지키려는 태도를 바랬던 카미유 입장에선 남편의 기회주의적 면모는 경멸의 대상, 염증을 돋울 뿐이다.
수표책과 예술가 사이에서 표류하는 군상
▲<경멸> 스틸
라이트하우스
부부의 예정된 파국은 단순 치정극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로 기반을 잡고 싶지만, 집필하고픈 희곡에 전념하지 못한 채 영화 각본 땜질하는 신세인 폴이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에게 우월감을 과시하다가도, 은연중에 그녀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한다. 60여 년 전 과거를 배경으로 삼긴 해도 그가 아내를 대하는 태도는 권위적 가부장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열등감이 치밀면 폭력성이 불쑥 터지고, 고상한 척 지식인의 이면엔 성적 욕망과 대상화가 숨어 있다.
부와 위계 권력을 거머쥔 제리가 대놓고 카미유를 유혹하는 것과 달리 폴은 고용주에게 학대받은 비서를 위로하는 척 접근하거나 아내의 육체를 노골적으로 탐한다. 그러나 번번이 속물적 욕구는 거부당하거나 쉽게 들키고 만다. 열세를 만회하고자 애처롭게 양보하는 듯해도 조금만 상황이 수습되면 이내 버릇이 돌아온다. 그때마다 카미유는 있던 정이 뚝 떨어진다. 그러나 자기연민에만 충실한 폴은 연인을 올바르게 존중하지 못한 채 합리화에만 급급한다.
그렇게 남에겐 밝힐 수 없는 벼랑으로 몰리면서도 맡은 일은 수행해야 한다. 존경하는 거장 감독과 수표책을 손에 쥔 제작자 사이에서 난감한 구도는 변하지 않는다. 심정적으론 감독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아내와 단란하게 지낼 새 집 대출금은 벌어야 한다. 아내를 붙잡기 위해서다. 정작 상대방은 '뭐가 중헌디?' 상태인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카미유가 점점 흉중의 일관성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반면, 폴의 태도는 갈팡질팡한다. 그의 실존적 처지가 갖는 한계다.
<메트로폴리스>, <마부제 박사>, <니벨룽의 노래>, <M>의 거장 프리츠 랑은 나치의 억압을 피해 미국 망명 후 오랜 경력을 이어왔지만, 산업화한 할리우드 제작자들과 오랜 세월 밀고 당기며 자신의 예술혼을 조금이나마 더 펼치려 했다. 공장처럼 투자 대비 수익 모델로 굴러가며 대중 취향에 맞춰 칼질을 서슴지 않던 무대에서 벌이는 고독한 싸움이다. 물론 제작자도 나름의 논리와 주장이 존재한다. 산업 vs 예술의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폴은 그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입장을 선택해야만 한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영화계를 제패한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상징하는 제작자 vs 고전적인 영화예술의 가치와 숭고함을 포기할 수 없던 거장 감독 대립은 두 가치관의 피할 수 없는 투쟁이고, 미국을 구심으로 한 세계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영원히 계속될 대치다. 대서양의 물리적 거리가 대폭 좁혀진 세계에서 고전 영화의 숨결을 계승하려는 프랑스 작가는 고독한 예술가의 신념을 취할 수 있을까?
현대에 재해석되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담
▲<경멸> 스틸
라이트하우스
<경멸>의 감독 장 뤽 고다르는 도입부에서 전설적인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의 문장을 인용한다.
"영화는 우리의 시선을 우리의 욕망과 조화를 이루는 세계로 대체한다."
영화 역사를 재구성한 이론가이자 고다르를 비롯한 '누벨바그' 세대 정신적 스승의 영화관을 언급한 건 곧 영화 내내 갈등의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20세기 가장 강력한 대중예술'영화'의 근본 의미에 대한 입장표명인 셈이다. 영화가 물려받은 선배 장르의 집대성은 이러해야만 한다는 선언.
영화가 공감각적으로 구축하는 이미지와 서사의 근원을 거슬러 오르면 결국 '신화'에 닿는다. 하필 작중 프리츠 랑 감독이 촬영 중인 영화는 <오디세이>다. 그리스 신화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율리시즈의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한 트로이 전쟁 후 10년 간의 모험담이다. 율리시즈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의 관계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은 극중 극의 핵심 논쟁 지점인 동시에 폴과 카미유 부부의 실존 위기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이 역시 누벨바그 정신과 통하는 대목.
전승된 그대로라면 율리시즈는 신들의 변덕에 시달리면서도 고향과 아내 곁으로 돌아가고자 분투하는 영웅, 페넬로페는 그런 부군을 기다리는 현모양처의 표상이다. 하지만 감독과 각본가, 제작자를 포함해 영화 속 주요 인물 각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며 현실의 영화 창작과 연결한다. 범속한 치정극을 넘어 대중예술 창작의 방향과 태도 논쟁으로, 궁극적으론 고대 그리스인들이 일상에서 벌이던 철학 토론과 맥을 같이 하는 셈.
어느 틈에 율리시즈=폴, 페넬로페=카미유가 겹치기 시작한다. 물론 고전 속 영웅호걸 형상과는 뭔가 다르다. 오히려 풀지 못할 열등감과 불안, 욕망과 아집에 사로잡힌 예정된 비극의 주인공과 가깝다. 급진적 재해석을 통해 완전무결해 보였던 인물들은 강박에 사로잡힌 채 속물적 계산으로 살육을 일삼는 존재로 변한다. 위대한 영웅은 권력과 소유물을 움켜쥐기 위한 간웅으로, 지고지순한 아내는 자신에게서 달아난 남편에 정이 떨어진 독립적 주체로 거듭난다.
영화란 산을 오르는 현실 시지프스의 고독
▲<경멸> 스틸라이트하우스
유럽 지성사와 인문학의 원류라 할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의 캐릭터 재해석은 그냥 만담의 영역이 될 수 없다. 중세 종교 전쟁의 파국을 딛고 근대 계몽과 합리주의를 꽃피웠으나 세계대전을 거치며 실존에 대한 회의를 품던 동시대 유럽 사회의 모색과 회의가 저절로 투영된다. 인간이 신을 필요에 따라 창조했는가, 유일신 신앙처럼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운명을 예정했는가를 놓고 선후 관계 토론의 장을 그린다. 곧 벌어질 '68혁명'의 예언적 풍경이기도 하다.
<경멸>에서 고다르는 한 세대 전인 1922년, 제임스 조이스가 천지개벽 수준으로 배경을 아일랜드로 옮겨 재구성한 <율리시즈>에 이어 또 다른 '오디세이' 이야기를 화면에 주조한다. 현대 서구 사회의 담론을 경유한 고전 신화는 인간 정신이 수많은 세속적 욕구와 제약을 무릅쓰고 시지프스처럼 포기하지 못하는 도전과 탐구로 향한다. 작중 무대인 이탈리아 남부 카프리섬의 풍광은 고대 신화의 세계와 현대의 '만신전' 영화의 무대를 완벽히 하나로 통합해낸다.
카프리에 들른다면 반드시 방문하게 될 '빌라 말라파르테 (Villa Malaparte)', 해안 절벽에 진입로도 없이 세워진 신전을 닮은 고전풍 건축의 웅장함을 재발견한 카메라는 폴이 실패와 좌절 속에도 신에 도전하는 개미처럼 깎아지른 계단을 오르는 광경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프리츠 랑이 그랬듯, 고다르가 걸어가듯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던 예술가의 초상이 자기연민 대신 치부를 감추지 않는 객관화와 불굴의 의지로 고대 유적 속 벽화처럼 형상화된다.
<작품정보>
경멸
Le Mépris / Contempt
1963 프랑스, 이탈리아 드라마, 로맨스
2026.07.15. 개봉 103분 55초 15세 관람가
각본/감독 장 뤽 고다르
출연 브리지트 바르도, 미셸 피콜리, 잭 팔란스, 프리츠 랑
원작 알베르토 모라비아 《경멸》
수입/배급 라이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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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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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적인 남편, 경멸하는 아내... 카프리섬의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