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현 안무 '비바 라 비다'
추연정
무대 위에서 양말은 메시지를 설명하는 소품에 머물지 않는다. 퍼포머들은 양말을 집고, 잡아당기고, 뒤집고, 두드린다. 제품을 검사하는 반복 노동은 하나의 춤이 되고, 양말과 손, 바닥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음악으로 바뀐다.
여기에 무용수와 성악가, 타악 연주자가 참여한다. 그러나 무용수는 춤만 추고, 성악가는 노래만 부르며, 연주자는 악기만 다루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지 않는다. 하나의 몸에서 움직임과 목소리, 사운드가 동시에 발생하는 '악가무 통합형 퍼포먼스'를 시도한다.
손정현은 한국무용을 하면서 장구와 북을 치고 노래를 배우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에게 춤과 음악은 애초부터 분리된 장르가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과 소리를 내는 일은 하나의 수행 안에 있었다.
"몸의 악기화는 몸을 악기처럼 사용하는 기술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몸이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가 다시 움직임을 이끄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신체와 목소리, 사운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언어인 셈이죠."
관객 역시 춤을 보고 음악을 듣는 식으로 감각을 나누기보다 몸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양말을 당기는 힘, 손바닥이 천을 때리는 소리, 흔들리는 호흡과 목소리가 서로 겹치면서 검수의 노동은 어느 순간 공연이 된다.
작품 속에는 완벽한 연주를 요구받는 인물도 등장한다. 그는 연주를 이어가려 하지만 또 다른 존재가 끊임없이 집중을 흐트러뜨린다. 몸을 방해하고 불안을 키우며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심는다. 처음에는 외부의 평가자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존재가 실제 타인인지, 인물 안에 자리 잡은 자기검열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더 무서운 것은 타인의 기준이 점점 내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에요.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데 스스로를 먼저 검열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가', '부족해 보이지 않을까'를 계속 묻게 되죠."
작품 속 방해자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외부의 평가이면서 동시에 이미 몸 안에 들어와 자신을 흔드는 목소리다. 손정현은 그 존재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는 타인처럼, 또 어떤 순간에는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불안처럼 보이기를 바란다. 결국 우리가 가장 오래 싸우는 대상은 타인의 시선 자체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자리를 잡은 타인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흔들리지 않는 몸보다 다시 중심을 찾는 몸
▲손정현 안무 '비바 라 비다'
추연정
작품 후반부에서 검수 과정에 탈락한 양말들이 무대 위에 쌓인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양말은 마지막 장면에서 퍼포머의 몸을 받치는 디딤판으로 바뀐다. 사회가 결함이라고 분류한 것이 새로운 균형의 조건이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손정현은 이 장면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익숙한 위로로 읽히는 것을 경계한다. 현실에서 평가와 비교는 계속된다. 상처와 불안도 한 번의 결심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폐기된 양말은 결함이 없어진 존재가 아니에요. 다만 새로운 방식으로 쓰이게 된 존재입니다. 사람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하자라고 부른 경험이나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나를 지탱하는 일부가 될 수는 있죠."
그에게 균형은 도착해야 할 결과가 아니다. 매 순간 다시 조절해야 하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자기만의 중심을 되찾는 힘이다.
현재 〈발끝의 균형〉은 약 30분 길이로 구상돼 있다. 손정현은 앞으로 작품을 한 시간가량으로 확장해 관객도 거대한 검수 시스템 안에 들어오게 하고 싶다고 했다. 관객에게 "당신도 평가자"라는 죄책감을 주기보다, 누군가를 평가한 경험과 누군가에게 평가받은 경험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각하게 하려는 것이다.
무대와 객석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는 공간도 고민하고 있다. 관객이 공연을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시스템 안에 함께 놓였다고 느끼게 하는 방식이다. 공연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누군가를 판단한 적이 있었구나"라는 기억과 "나 역시 평가받으며 살아왔구나"라는 감정이 동시에 떠오를 수 있다.
무대 위의 양말은 끝내 멀쩡한 상품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풀린 실밥과 미세한 오차도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버려졌던 것들이 한 사람의 몸을 떠받치는 바닥이 된다. 손정현이 말하는 균형도 완벽한 상태가 아니다. 쓰러질 듯 기울어도 다시 발끝에 힘을 주는 일,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검수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마다 중심을 되찾는 일이다. 흔들리지 않는 삶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서는 삶. 〈발끝의 균형〉은 그 위태롭지만 질긴 몸의 힘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손정현 안무 '음어아(Um Uh Ah)'옥상훈
손정현 안무가는 1988년에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예술사 및 전문사 졸업했으며, 국민대학교 공연영상학과 무용학 박사 졸업했다. 대표 안무작으로는 <음어아(Um Uh Ah)>, <VIVA LA VIDA> , <자취 적>, <리틀 포레스트>, <은밀한 동행>, <비틀림> 등이 있다. 제35회 한국무용제전-소극장 우수 안무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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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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