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트럼프, 편파 판정... 논란으로 얼룩진 월드컵

"가장 위대한 월드컵" 호언장담 무색... 인판티노 FIFA 회장 친트럼프 행보에 정치적 독립성 훼손 비판

월드컵은 전 세계 축구팬을 하나로 잇는 지구촌 최대의 축제로 통한다. 이번 북중미월드컵은 역사상 가장 많은 48개국이 참가하여 규모와 관중 수, 상금, 경제 효과 측면에서 역대급 수치를 자랑한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이번 대회는 역대 가장 크고, 가장 포용적이며, 가장 위대한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대회가 어느덧 조별리그를 거쳐 토너먼트 16강전까지 마치며 반환점을 돌아선 현재, 안판티노 회장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월드컵은 각종 논란으로 얼룩져가고 있다. 곳곳에서 속출하는 인종차별과 혐오, 대회 운영을 둘러싼 공정성 의혹이 속출하면서 전 세계인의 축제에 큰 흠집을 남기고 있다.

음바페 겨냥 입에 담지 못할 인종차별 폭언

 프랑스 킬리안 음바페
프랑스 킬리안 음바페 AP/연합뉴스

프랑스의 간판스타 킬리안 음바페는 지난 5일 열린 파라과이와의 북중미 월드컵 16강전에서 결승골을 넣고 팀의 1-0 승리를 이끈 직후 충격적인 인종차별의 표적이 됐다. 파라과이의 여성 정치인인 셀레스테 아마리야 상원의원은 경기 후 자신의 SNS에 음바페를 겨냥해 입에 담지 못할 인종차별적 폭언을 쏟아냈다.

아마리야는 "프랑스인 행세하려 애쓰는 식민화된 카메룬인", "모유 대신 코코넛이나 빨고 자랐다" "침팬지 소리밖에 듣지 못하고 자랐을 것"이라는 망언을 일삼았다. 심지어 "파라과이 선수들이 경기 뒤 그를 때렸어야 했다"며 음바페의 혈통과 외모를 비하한 것도 모자라 폭력까지 노골적으로 부추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음바페도 참지 않았다. 음바페는 "당신은 경멸스러운 사람이며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일갈하며 "당신의 뻔뻔한 인종차별 때문에 전 세계가 파라과이 선수들의 역사적인 노력을 잊고 최악의 이미지만 떠올리게 됐다"고 반격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음바페가 이번에는 인종차별에 맞선 골을 넣었다.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라고 힘을 실었다. 유엔인권사무소는 아마리야의 발언이 "비열하고 비인간적"이라며 공개 비판했고, 프랑스축구협회는 아마리야를 프랑스 사법당국에 고발했다.

당황한 파라과이 정부는 "아마리야 의원은 파라과이 정부나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다"라면서 "파라과이가 추구하는 평화로운 공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와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밝히며 선을 그었다. 아마리야는 논란이 확산하자 게시글을 삭제했고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그런 글을 썼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음바페가 자신을 비판한 내용을 문제삼으며 이를 "여성에 대한 정치적 폭력"이라고 주장하면서 "사과하지 않으면 성폭력 혐의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였다.

이번 월드컵에서 불거진 인종차별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인플루언서 이노냥은 한국과 체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뒷자리에 앉은 멕시코 남성으로부터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 행위인 '눈찢기 제스처'를 당했다.아르헨티나와 카보베르데의 32강전에서는 미국 출신의 흑인 인플루언서 아이쇼스피드가 일부 아르헨티나 관중들로부터 인종차별 발언을 듣고 언쟁을 벌이는 사건도 있었다.

축구에 정치 끼얹은 미국

 직전 경기 퇴장으로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던 미국 축구대표팀 발로건(AS모나코)이 FIFA로부터 집행유예 처분을 받아 벨기에와의 16강전에 출전한다.
직전 경기 퇴장으로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던 미국 축구대표팀 발로건(AS모나코)이 FIFA로부터 집행유예 처분을 받아 벨기에와의 16강전에 출전한다.AP/연합뉴스

미국과 벨기에의 북중미월드컵 16강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 개입과 외압'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 국가대표팀의 스트라이커 폴라린 발로건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32강전에서 상대 선수의 발목을 밟아 퇴장당했다. 규정상 이전 경기에서 퇴장당한 발로건은 자동으로 벨기에와의 16강전 출전이 정지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FIFA가 이례적으로 발로건의 출장 정지 징계를 유예하면서 벨기에와의 16강전에 출전할 수 있게 되어 논란이 됐다. 역대 월드컵 무대에서 나온 189장의 레드카드 중 출전 정지 처분을 피한 경우는, '퇴장 선수가 다음 경기 출장 정지'라는 규정이 명문화된 이후로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징계 유예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행정부 주요 관계자들이 직접 FIFA에 연락을 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압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트럼프는 발로건의 징계 유예 결정 소식에 즉각 SNS에 "옳은 일을 하고 큰 불의를 바로잡아준 FIFA에 감사드린다"고 밝히며 악화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벨기에 축구협회와 선수들은 물론 유럽 축구계에서도 "FIFA가 공정성을 내팽개치고 미국에 수치스러운 굴복을 선택했다"라며 분노를 쏟아냈다.

결국 벨기에 대표팀은 16강전에서 발로건이 정상 출전한 미국을 무려 4-1로 완파하며 '참교육'을 시전했다. 벨기에 선수들은 골을 넣고 나서 트럼프 대통령의 춤을 따라 하는 세리머니로 조롱했다. 또한 경기 후 벨기에 대표팀의 SNS에는 "이 승리도 뒤집어보라"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트럼프와 FIFA를 겨냥한 듯한 일침을 날렸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은 축구에 정치를 끼얹은 미국을 향한 정의 구현이라며 열광했다.

개최국인 미국이 정치 개입으로 월드컵의 공정성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월드컵 개막 당시 미국 -이란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적국에서 월드컵을 치러야 했던 이란 대표팀은 미국 당국의 노골적인 냉대와 비협조로 대회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트럼프는 "이란 선수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라며 노골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이란 대표팀은 애초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 베이스캠프를 차릴 예정이었으나 비자 발급 문제로 베이스캠프를 멕시코 티후아나로 바꿔야만 했다. 또, 미국은 테러 위험을 명분으로 이란축구협회 사무총장과 대표팀 단장, 미디어 담당관의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이란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조별리그 탈락을 피하지 못했다.

 이란 축구대표팀의 주장인 메흐디 타레미
이란 축구대표팀의 주장인 메흐디 타레미 AP/연합뉴스

이란의 주장 메흐디 타레미는 "우리는 항상 애걸해야 하는 처지였다. 우리가 탈락하길 바란다면, 탈락하겠다. 그렇지만 이런 환경은 너무 불공정하다. 우리는 이동도 휴식도 보장받지 못했다. 현장에서 우리를 도울 스태프도 부족했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이런 사태를 해결하고 중재해야 할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사실상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인판티노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행사에 참석하고 'FIFA 평화상'을 신설해 수여하는 등 대표적인 친트럼프 인사로 축구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로 인하여 인판티노 회장 체제에서 FIFA의 정치적 독립성이 무너지고 지나친 상업화에만 매몰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석패한 이집트나 승리한 아르헨티나 모두 찜찜

 7일(현지시각) 미국 애틀란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이집트의 16강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가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7일(현지시각) 미국 애틀란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이집트의 16강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가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아르헨티나와 이집트의 16강전 경기에서는 인기팀과 슈퍼스타에 대한 '편파 판정' 논란이 불거졌다. 이집트는 후반 막판까지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에 2-0으로 앞서며 이변을 눈앞에 두는 듯했으나 78분 이후에만 내리 3골을 내주며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하지만 이집트는 경기 뒤 심판 판정에 강하게 반발하며 "불공정한 경기"였다고 주장했다.

이집트는 비디오 판독(VAR)으로 추가골이 취소된 것, 아르헨티나의 결승골이 터지기 직전 모하메드 살라가 페널티 지역 안에서 넘어졌지만 PK가 인정되지 않은 장면 등을 문제 삼았다. 프랑스 출신의 프랑수아 르텍시에 주심은 이집트의 득점 기회에서는 VAR 확인도 하지 않으며 판정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자아냈다. 두 장면 중 하나만 인정되었어도 이집트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곧바로 이어진 아르헨티나의 역습이 결승골로 연결되면서 이집트 벤치와 선수들은 격렬하게 반발했으나 오히려 카드만 받았다.

이집트의 호삼 하산 감독은 경기 뒤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불의를 겪었다"라고 울분을 터뜨렸다.이어 "어쩌면 그들은 리오넬 메시가 계속 월드컵에서 뛰는 모습을 원했을지도 모른다"라면서 "아르헨티나는 모든 차원에서 지원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을 미리 축하한다"라고 비꼬았다.

이날 논란의 핵심은 VAR의 개입 기준이었다. FIFA는 이번 대회에서 경기 흐름을 살리기 위해 정상적인 신체 접촉은 최대한 허용하겠다는 기조를 보여왔다. 실제 이번 대회 경기당 파울 수는 이전 월드컵보다 줄었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이집트의 추가골 기회가 각기 다른 이유로 석연치 않게 두 번이나 무산됐다.

심판은 이집트가 추가골 득점 직전에 '페널티 지역 밖에 벌어진 접촉' 상황은 VAR로 파울을 꼼꼼히 확인하여 취소한 반면, 살라가 아르헨티나의 '페널티 지역 안쪽에서 당한 접촉'은 오히려 결정적인 페널티킥과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VAR 판정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선수들의 활약상보다 심판 판정의 일관성 차이가 승부를 좌우한 모양새가 되면서, 석패한 이집트나 승리한 아르헨티나 모두 찜찜한 뒷맛이 남은 경기가 되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현대 축구가 지나치게 상업화, 정치화되면서 과거의 순수함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차별과 혐오, 공정성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란이 속출하고 있는 이번 북중미 월드컵의 화려한 성공가도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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