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6년 최대 기대작을 물으면 아마도 가장 많은 이들이 이 영화라 답할 테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이야기다.
<오디세이> 개봉이 한 달 뒤로 다가왔다. 환상과 상상, 공상의 영역에서 역사적 실화에 바탕을 둔 현실적 이야기까지 종횡무진 오가던 그의 관심이 그리스로마 신화로 빚어진 걸작에 머문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일리아스>와 함께 서양 고대 문학의 정점에 있단 평을 받는 <오디세이아>가 바로 그 작품. 트로이 전쟁 뒤 고향인 이타카까지 10년에 걸쳐 모진 고생 끝에 귀환하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놀란은 저 나름의 해석을 통해 블록버스터 <오디세이>로 탄생시켰다. 과연 어떤 영화일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때맞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품은 또 다른 작품 한 편이 관객 앞에 선보인다. <오디세이>를 만나기 전 저부터 보고 가는 게 어떠하냐고 은근슬쩍 들이미는 이 영화는 장 뤽 고다르의 <경멸>이다. 영화예술을 한 걸음 진전시켰다고까지 평가받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장 뤽 고다르의 대표작인 이 작품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지난 2023년 디지털 4K복원이 완료된 버전으로, 영화팬들에겐 놓치기 아까운 선택지가 되어줄 테다.
▲경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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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와 <오디세이>의 만남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시나리오 작가 폴(미셸 피콜리 분)이다. 그는 최근 미국인 프로듀서 제레미 프로코쉬(잭 파스칼 분)의 제안을 받아 규모 있는 영화의 각색을 맡게 됐다. 독일 출신 명감독 프리츠 랑의 <오디세이>가 바로 그 작품이다. 대가는 무려 1만 달러, 아내 까미유(브리지트 바르도 분)와 결혼해 살 아파트 대출금을 한 방에 갚을 수 있는 큰돈이다. 폴은 까미유와 함께 이탈리아에 온 제레미, 또 프리츠 랑 감독과 만난다. 감독이 먼저 찍어둔 장면을 함께 보고 어떤 작품을 만들지 논의하는 등 <오디세이>를 만드는 과정이 영화의 큰 줄기를 이룬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첨단 기술의 집약체며 종합예술인 영화는 감독이나 작가 개인의 작업일 수 없다. 각본부터 시작해 촬영과 조명, 음향, 연기, 그 모두를 아우르는 연출까지가 한 편의 영화를 이룬다. 이 모든 작업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투자부터 제작, 배급에 이르는 전 과정이 매끄럽게 이뤄져야 한다. 그중 투자, 돈을 끌어오는 게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누가 돈을 댈 것인가, 또 돈을 주고서 감독이 제 예술을 할 수 있도록 놓아둘 것인가. 이것이 영화예술의 태동부터 오늘에 이르는 가장 큰 딜레마다.
투자한 만큼 이윤을 내야 하는 산업이며, 동시에 예술이기도 한 영화의 딜레마를 작가주의 감독이라면 고심하지 않았을 리 없다. 남의 돈을 끌어다 영화를 찍는 일은 작가며 감독을 수시로 비루하고 비참한 존재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영화 가운데 그에 대한 고통이며 불만을 토로하는 순간과 마주하는 건 그래서이겠다. 이 영화 <경멸> 또한 그와 같다.
▲경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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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에게 할리우드란?
<경멸>은 영화예술을 침윤하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난동을 제레미의 모습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제레미는 영화에 손대기 전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투자자다. 그와 내밀한 관계인 듯 보이는 미모의 젊은 여성 통역사는 다른 질문은 받으면서도 그 과거에 대해선 입을 열지 않는다. 제레미는 건실한 사업가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영화를 비롯한 예술에 조예가 있다거나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 어쩌다 프리츠 랑 같은 거장을 불러다 제 영화를 찍도록 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존경이며 예우 따윈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미리 작업한 푸티지 필름을 집어던지며 행패를 부리는 모습은 도무지 맨정신에서 하는 것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다.
제레미가 준비한 파티에 참석할 것이냔 물음에 극 중 프리츠 랑 감독은 이렇게 답한다.
"매일 아침 밥벌이를 위해 거짓말을 파는 시장에 가네. 희망을 품은 채 장사치들 앞에 서네."
그게 무슨 말이냐 되묻자, 랑은 다시 이렇게 답한다.
"할리우드."
영화의 제목인 '경멸'은 이 지점에서 영화를 자본주의의 셈법으로 대하는 할리우드의 속물적 자세에 대한 장 뤽 고다르, 또 프리츠 랑의 인식이자 태도, 그리고 감정이 된다.
▲경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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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 욕망과 도덕, 그리고
영화는 <오디세이>를 만드는 이야기인 동시에 극작가인 폴과 그 아내 까미유 사이에 일어나는 불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의 도입에서 발가벗은 몸으로 남편 폴과 더없이 좋은 한때를 보내던 까미유가 나중엔 그를 경멸하게 되고 아예 갈라서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엔 제레미와 그를 대하는 폴의 비굴하고 비루한 태도가 영향을 미친 듯 보이는데, 남자와 여자 사이 내밀하고 민감한 변화가 불안과 긴장을 유발한다. 사랑과 좀처럼 엮이지 않을 듯한 경멸이라는 감정과 태도가 관계 안에 자리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이 된다.
장 뤽 고다르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불안하고 불완전한 관계 안에 <오디세이>의 현대적 재해석을 더했다. 제각각의 불완전한 신들이 서로의 욕망을 뻗쳐나가며 갈등하는 신화가 제레미와 폴, 까미유와 프리츠 랑 등 다채로운 군상들의 기묘한 조화 속에서 구현되는 듯하다. 그 사이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에게 귀환하는 이야기가 자리하는데, 10년이나 걸린 귀환이 과연 그저 그 앞에 놓인 고난 때문이었는지 되묻는다. 신화와 전설에 대한 흥미로운 재해석이 영화 만들기, 또 남녀사이와 엮이며 빚어지는 이야기가 보는 이의 사고를 자극한다.
▲경멸포스터라이트하우스
<경멸>을 만나라
한 편으로 영화는 좀처럼 닿지 못하는 관계며 수시로 왜곡되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는 듯하다. 영어로 말하는 제레미와 독어로 말하는 프리츠 랑, 또 이탈리아어로 말하는 폴에 이르기까지 각 인물 사이는 오로지 통역을 통해서만 전해지지만, 그 통역이 이따금 성의 없고 제멋대로인 탓으로 소통은 도저히 온전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로부터 일어나는 감흥은 또한 소통이란 본래 가능한 것인가를 되묻게 한다.
<경멸>은 경외하지 못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 경멸하면서도 등 돌리지 못하는 우리 주변의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그 강력함을 누군가는 신과 같다고 말한다.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를 정복하고, 자본주의가 다른 체제를 상상할 수 없도록 한 작금의 시대에도 프로메테우스의 저항은, 다른 가능성을 구하는 이는 있을 것인가.
10년 동안 돌고 돌아 고향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또한 가능할 것인가. 오로지 이상이 있는 이들만이 경멸하는 법이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그 이상의 존재를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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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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