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날 때면 보려고 사둔 영화 '아웃오브아프리카' CD김숙귀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집근처 작은 바닷가 찻집이라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차를 운전하고 나섰다. 직접 내리는 커피도 훌륭하고 야외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아늑하고 정겨운 곳이다. 며칠 전에 만든 음악 CD를 재생했다.
운전을 할 때는 아직 파일을 내려받아 만든 CD로 음악을 듣는다. 모차르트의 청아한 클라리넷협주곡이 흘러나오고 곧 이어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남자와 여자. 감격에 겨운 여자는 뒤에 앉은 남자를 향해 팔을 뻗고 남자는 여자의 손을 마주 잡는다. 아래로는 아프리카 케냐의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진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아웃오브 아프리카'는 개봉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처음 영화를 대했을 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특히 남자주인공의 자유로운 사랑법이 인상깊었다.
그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자가 자신의 옷에 떨어진 단추를 달아주려는 것도 못하게 할 만큼 구속을 싫어하고 함께 지내자는 여자의 제의도 거절한다. 그러나 여자의 머리를 감겨주며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한동안 훌쩍 떠났다가 문득 자신을 보러 오는 남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여자는 결국 남자의 사랑법을 받아들인다. 인생의 마지막 정착지로 여자를 선택한 남자가 사고로 죽음을 맞게 되면서 영화는 끝나지만 그 슬프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아름다웠다.
2000년 개봉한 영화 '화양연화'는 지난 해 특별판으로 재개봉했는데 2025년 뉴욕타임지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4위에 오르기도 했다. 개봉관에서 처음 영화를 보고 그 뒤로도 두어 번 더 보았다. 애절한 첼로선율과 아름다운 영상, 그리고 비오는 날, 남녀주인공이 이별연습을 하며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슬프게 울던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다.
자신들의 배우자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얘기하며 차츰 가까워지고 마침내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라며 애써 사랑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여자는 남자와 거리를 두려한다. 이를 느낀 남자는 결국 떠난다. 영화 곳곳, 두사람의 표정과 몸짓에서 느껴지는 절제된 사랑의 감정은 안타까움과 함께 사랑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래전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도 기억난다.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가 있었다. 토끼는 자신의 걸음이 느린 것에 늘 위축되어있는 거북이를 위해 경주를 제의했다. 중간쯤 먼저 가서 자는 척하고 있으면 거북이가 다가와 자신을 깨워서 나란히 발맞춰 언덕으로 오르리라 믿었다. 그러나 거북이는 토끼옆을 지나면서도 깨우지 않았다. 자는 척하던 토끼는 눈물을 흘렸다. 결국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겼다. 경주 후 동네 식구들과 후세 사람들로부터 거북이는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들었고 토끼는 교만하고 경솔하다는 욕을 먹었다. 그러나 토끼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그 모든 비난을 감수 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거북이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이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읽고 난 뒤 진정한 사랑에 대해 한동안 생각했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기도 하고 사랑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기도 한다. 거북이처럼 다가오는 사랑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는가 하면 토끼처럼 사랑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랑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집착없이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자유롭게 놓아주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받는 사랑을 체념하기가 얼마나 서러운지도 안다.
때로 외로워 사랑을 찾는다고 하지만 사랑의 깊이만큼 외로움도 깊어가는 게 아닐까. 영혼을 걸고 온전한 희생을 바치고도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을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그저 아름다운 가슴만으로 사랑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설사 생살 베이는 피흘림이 있더라도, 죽을 것처럼 아프더라도, 한여름 소나기처럼 다가오는 사랑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온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하리라. 비록 사랑을 위해 일년을 기다린 끝에 고작 열흘동안 사랑을 나누고 생을 마감하는 반딧불이처럼 짧고 강렬한 사랑을 할 지라도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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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