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통해 얼굴 알린 무용수, 사람 두려워하다 깨달은 것

[인터뷰] 아르코 댄스 UP:RISE〈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기무간 안무가

'아르코 댄스 UP:RISE'에 선정된 기무간, 손정현, 이세승, 함초롬 등 네 안무가의 솔직한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합니다.[기자말]

 기무간 프로필
기무간 프로필옥상훈

"사람을 무서워하고, 미워하고, 싫어하던 제가 이제는 늘 사람에 관한 작품을 하고 있네요."

지난 1일 춘천에서 만난 기무간(32) 안무가가 내뱉은 짧은 고백에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작품과 앞으로 만들고 싶은 춤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사람을 피해 본 사람은 사람의 소중함을 안다. 관계에 다쳐본 사람은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도 안다.

그가 '아르코 댄스 UP:RISE'에서 준비하고 있는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도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무대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굳어버린 세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아무런 힘도 남지 않은 듯 쓰러져 있다. 한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끌어주기만을 기다린다. 다른 한 사람은 평온한 얼굴 뒤에 오래된 결핍을 감추고 있다.

세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다. 따뜻한 위로나 다정한 말도 없다. 몸이 먼저 부딪힌다. 상대의 무게에 밀려 쓰러지고, 넘어지는 사람을 붙잡다가 함께 중심을 잃는다. 그러다 누군가의 어깨를 짚고 다시 일어선다. 기무간은 그 거친 접촉 안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위로를 찾고 있다.

"아등바등 엉망으로 망가져 있던 제가 여태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때 제 옆에 있었고 지금 제 옆에 있고 앞으로도 제 옆에 있을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남는 사람

 스테이지파이터에 출연한 기무간 안무가
스테이지파이터에 출연한 기무간 안무가스테이지파이터 갈무리

기무간은 Mnet 무용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한 유연한 춤선과 강한 몰입력은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적지 않은 화제를 모았다. 무용 공연장을 자주 찾지 않던 사람들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방송 이후에는 길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도 늘었다. 무용수에게 대중의 관심은 좀처럼 얻기 어려운 기회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유명세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저는 그냥 춤추는 사람이고 싶어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이 애매한 유명세는 금방 지나갈 거예요. 이걸 즐기다가 모든 것이 지나가고 혼자 남았을 때 저만 바보가 돼 있을 것 같았어요."

그가 방송 출연이나 대중의 관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관심에 기대 자신을 실제보다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방송이 끝나고 박수가 멈춘 뒤에도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의 몸과 작품이다. 기무간은 유명세를 새로운 일을 벌이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자신이 해오던 일을 조금 더 성실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으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유명세에 기대서 무언가 특별해 보이는 일을 하기보다는 그 힘을 제가 원래 해오던 것에 싣고 싶어요. 제가 하고자 했던 것을 조금 더 성실하게 할 수 있는 '무용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방송 이전부터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올려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한국무용을 공부했고, 프로젝트팀 랑만을 이끌며 안무와 연출, 출연을 함께 맡았다. 무용극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도 여러 지역의 공연장을 거치며 작품의 규모를 키워왔다.

대중이 그를 발견한 것은 방송이었지만 기무간이 춤을 시작한 곳은 카메라 앞이 아니었다. 연습실과 공연장,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몸을 만들어왔다. 그가 원하는 것도 방송에서 얻은 이미지를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화려한 장면으로 잠시 소비되는 무용수가 아니라, 인간의 상처와 외로움을 오래 바라보는 안무가가 되고 싶어 한다.

한국무용의 몸으로 동시대 사람을 바라보다

 랑만(RANGMAN)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
랑만(RANGMAN)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기무간

기무간의 몸에는 한국무용의 호흡과 선이 배어 있다. 발을 딛고 무게를 옮기는 방식, 움직임을 급하게 끝내지 않고 길게 이어가는 호흡은 오랜 훈련을 통해 몸에 남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한국무용 창작자'라는 이름 안에만 가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전통을 버리려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전통이라는 이름에 기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한국무용은 그의 작품을 장식하는 외형이 아니라 몸의 뿌리에 가깝다. 그 뿌리에서 출발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것은 동시대 사람의 몸이다. 외로운 사람, 관계에 지친 사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에 등장하는 세 사람도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어느 시기의 기무간 자신이면서, 그가 주변에서 보고 들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느 때의 제 모습이기도 하고, 보고 들으며 찾은 동시대 인간들의 형태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작품에서 제 이야기만을 그대로 하지는 않아요. 직접 관찰하거나 보고 들은 사람들, 어딘가에 비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기무간은 자신의 상처를 무대 위에서 직접 고백하는 대신, 그 상처를 통과해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 그래서 작품 속 인물은 한 사람인 동시에 여러 사람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바닥에 누워본 사람, 괜찮은 척 하루를 견딘 사람,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손을 내밀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무대 위 세 몸 가운데 하나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고

 랑만(RANGMAN)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
랑만(RANGMAN)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기무간

작품의 처음 제목은 〈이것은 동화가 아니다〉였다. 저마다의 이유로 경직된 사람들이 타인의 따뜻함을 알아가고, 서로 연결되면서 조금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출발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작품을 구체화하면서 '동화'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이 작품이 너무 비극적으로 가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작품의 흐름이나 서사를 따라가기보다는 무대 위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관객이 감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목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선언하지만, 작품 안에는 수많은 사연이 숨어 있다. 제목 앞에는 기무간이 생략한 문장이 하나 있다. '여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그는 관객에게 그 이야기들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누가 왜 쓰러졌는지, 무엇 때문에 사람을 밀어내는지, 어떤 상처를 숨기고 살아가는지 모두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몸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들려준다. 무용수의 가쁜 호흡, 피부와 피부가 스치는 소리, 발과 바닥 사이에서 생기는 마찰, 다른 사람의 무게를 받아낼 때 새어 나오는 숨이 객석까지 전달된다.

음악이 감정을 대신 설명하기보다 살아 있는 몸의 소리가 무대를 채운다. 관객은 인물의 사연을 이해하기 전에 흔들리는 중심과 거친 숨, 상대를 놓치지 않으려는 손을 먼저 보게 된다. 기무간은 관객에게 무대 위 인물을 반드시 이해하거나 불쌍하게 여겨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감정적인 공감보다 같은 순간을 함께 지나가는 경험이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을 마주 보고 책을 읽어주는 공연보다는, 관객과 무용수가 옆에 나란히 앉아 한 권의 책을 같이 읽는 것 같은 공연이 됐으면 좋겠어요."

무용수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관객이 이를 받아들이는 공연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숨을 들으며 하나의 시간을 지나가는 공연이다. 그 순간 객석에 앉은 사람도 작품 밖의 관찰자로만 남지 않는다. 무대 위 몸이 쓰러지고 일어나는 시간을 함께 경험하는 또 하나의 몸이 된다.

떨어지는 사람

 랑만(RANGMAN)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
랑만(RANGMAN)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기무간

작품의 후반부에는 한 무용수가 객석을 향해 가만히 손을 내미는 장면이 등장한다. 자신을 일으켜달라는 손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신이 받은 온기를 다시 건네려는 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함께 버텨보자고 말하는 손으로 읽힐 수도 있다. 기무간은 이 장면을 설명하며 고향의 오랜 친구 이낙원이 쓴 시 〈나의 작은 세상〉을 떠올렸다. 떨어지는 이슬은 손으로 완전히 붙잡을 수 없다. 손을 내밀어도 흘러가는 것은 결국 흘러간다. 그러나 손끝에 잠시 머문 이슬은 조금 뜨거워지고, 조금은 천천히 떨어진다. 그는 이 시가 자신이 만들고 있는 작품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완전히 없애줄 수 없다. 무너지는 사람을 영원히 붙들어둘 수도 없다. 이미 떠나기 시작한 사람과 흘러가기 시작한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럼에도 손을 내민다. 한 사람을 완전히 구할 수 없더라도 혼자 떨어지지 않게 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손끝에 닿는 짧은 온기가 추락의 속도를 조금 늦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약속된 행위들을 온전히 잘 해낸 뒤에 무용수가 손을 내밀어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객석에 있는 분들 가운데 네 명 정도는 그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관객이 실제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손을 잡을 필요는 없다. 몸이 움직이기 전에 마음이 먼저 그 손을 향한다면 작품은 이미 객석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세 명의 몸으로 시작한 작품은 앞으로 아홉 명의 군무로 확장될 예정이다. 세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던 충돌과 접촉은 더 많은 몸으로 옮겨가고, 하나의 집이나 사회를 닮은 구조로 넓어진다.

사람이 많아지면 무대는 커진다. 하지만 기무간이 지키고 싶은 것은 규모보다 한 사람의 체온이다. 아홉 명이 함께 움직이는 동안에도 한 사람의 외로움이 지워지지 않는 것, 거대한 군무 속에서도 누군가 내민 손이 보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우리는 왜 외로운가.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도 왜 다시 사람을 찾는가. 다른 사람을 완전히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손을 내미는가.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는 그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쓰러진 몸 옆에 다른 몸을 놓는다. 한 사람이 흔들리면 누군가 그 무게를 받아내고, 함께 넘어지면 다시 서로를 밀어 올린다.

"사람만 사는 세상은 아니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더라고요."

사람을 두려워했던 무용수가 다시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금은 천천히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그 손을 잡고 싶어질 것이다. 그 순간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는 무대 위 세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랑만(RANGMAN)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
랑만(RANGMAN)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기무간


덧붙이는 글 사람을 향한 오랜 사유를 움직임으로 담은 기무간 안무가의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는 ‘스테이지1’에 선정된 4명의 안무가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관객과 만난다. 공연은 오는 11월 5일 오후 4시와 오후 7시 30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무용 기무간 아르코댄스업라이즈 한예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