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만(RANGMAN)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
기무간
작품의 후반부에는 한 무용수가 객석을 향해 가만히 손을 내미는 장면이 등장한다. 자신을 일으켜달라는 손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신이 받은 온기를 다시 건네려는 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함께 버텨보자고 말하는 손으로 읽힐 수도 있다. 기무간은 이 장면을 설명하며 고향의 오랜 친구 이낙원이 쓴 시 〈나의 작은 세상〉을 떠올렸다. 떨어지는 이슬은 손으로 완전히 붙잡을 수 없다. 손을 내밀어도 흘러가는 것은 결국 흘러간다. 그러나 손끝에 잠시 머문 이슬은 조금 뜨거워지고, 조금은 천천히 떨어진다. 그는 이 시가 자신이 만들고 있는 작품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완전히 없애줄 수 없다. 무너지는 사람을 영원히 붙들어둘 수도 없다. 이미 떠나기 시작한 사람과 흘러가기 시작한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럼에도 손을 내민다. 한 사람을 완전히 구할 수 없더라도 혼자 떨어지지 않게 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손끝에 닿는 짧은 온기가 추락의 속도를 조금 늦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약속된 행위들을 온전히 잘 해낸 뒤에 무용수가 손을 내밀어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객석에 있는 분들 가운데 네 명 정도는 그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관객이 실제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손을 잡을 필요는 없다. 몸이 움직이기 전에 마음이 먼저 그 손을 향한다면 작품은 이미 객석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세 명의 몸으로 시작한 작품은 앞으로 아홉 명의 군무로 확장될 예정이다. 세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던 충돌과 접촉은 더 많은 몸으로 옮겨가고, 하나의 집이나 사회를 닮은 구조로 넓어진다.
사람이 많아지면 무대는 커진다. 하지만 기무간이 지키고 싶은 것은 규모보다 한 사람의 체온이다. 아홉 명이 함께 움직이는 동안에도 한 사람의 외로움이 지워지지 않는 것, 거대한 군무 속에서도 누군가 내민 손이 보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우리는 왜 외로운가.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도 왜 다시 사람을 찾는가. 다른 사람을 완전히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손을 내미는가.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는 그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쓰러진 몸 옆에 다른 몸을 놓는다. 한 사람이 흔들리면 누군가 그 무게를 받아내고, 함께 넘어지면 다시 서로를 밀어 올린다.
"사람만 사는 세상은 아니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더라고요."
사람을 두려워했던 무용수가 다시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금은 천천히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그 손을 잡고 싶어질 것이다. 그 순간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는 무대 위 세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랑만(RANGMAN) 'In search of paradise: 낙원을 찾아서'기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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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