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비판하는 이유, 이 영화에 답 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390] 30회 BIFAN '부천 초이스 코리안' <정육점집 외아들>

'부천 초이스'는 제목이 말하듯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가려 뽑은 작품을 상영하는 섹션이다. 수천 편의 작품이 출품된 이번 영화제에서 선정작은 AI영화를 포함한 장·단편 321편이다. 이중 주력이라 할 만한 섹션이 바로 '부천 초이스'로, 월드와 코리안, AI로 구분된 세부 섹션 중에서 한국작품을 모아둔 '부천 초이스 코리안: 장편'엔 모두 10편의 영화가 들어왔다. 이들이 한때 한국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불렸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오늘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품과 작가로 뽑은 결과라 해도 무방하겠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이들 10편의 영화가 드러내는 가장 큰 특징으로 '장르적 다양성'을 뽑았다. 호러와 스릴러, 또 코미디, 범죄영화, 디스토피아적 SF와 애니메이션까지, 하나의 경향으로 묶어낼 수 없는 다채로운 경향을 최대한 포착하려 했다는 뜻이겠다.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 가려 뽑은, 부천의 선택을 받을 영화들은 대체 어떠할까. 그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되는 건 영화제를 존중하는 한 명의 영화팬으로 자연스런 일일 테다.

<정육점집 외아들>은 '부천 초이스 코리안: 장편' 부문에 든 10편 중 하나다. 유형준 감독의 81분짜리 첫 장편으로, 제목이 알려주듯 어느 정육점을 운영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태섭(권영찬 분), 이모부(정형석 분)가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말은 일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태섭은 어릴 적부터 이모와 이모부에게 거둬진 고아로, 이모부는 제가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태섭을 사실상 무급으로 부려먹고 있는 것. 겉으로는 가족기업이지만 실상은 노동착취인 그렇고 그런 이야기. 영화 <정육점집 외아들>의 배경이다.

정육점집 외아들 스틸컷
정육점집 외아들스틸컷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모부 정육점에서 무급노동하는 청년

태섭에겐 아버지나 다름없는 이모부다. 다만 그 이모부가 태섭을 진짜 아들처럼 여기지 않는단 게 문제다. 정육점 이름부터 부자 정육점으로, 겉으로는 태섭을 아들처럼 앞세우는 이모부가 실상은 그를 전혀 돌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태섭은 월급은커녕 용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신세다. 어느덧 앞날을 그려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태섭은 모아둔 돈조차 따로 없다. 그런 그를 오래 사귀어온 애인조차 결혼상대로는 생각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서류상으로 일을 해본 적도 없어 대출조차 막힌 태섭은 독립을 위해 이모부 앞에 제 의견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물론 이모부가 그리 호락호락할리가 없지만.

구태여 따지자면 범죄드라마라 할 수 있겠다. 독립을 원하는 태섭이 사건에 휘말리며 이모부와 극렬히 대립하게 되는 구조를 가졌다. 어느 날 찾아온 사내를 통해 이모부가 불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태섭이 그를 기회로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 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협박에 못 이겨서 이모부가 사내에게 돈을 내주면 제 몫을 챙겨 자립하겠단 게 태섭의 계획이지만 세상사가 어디 계획대로만 되던가. 우연에 우연이 겹치며 영화는 태섭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까지 몰아붙인다. 그저 독립하기만을 원했던 태섭에게 형사사건에 연루되고, 가족이라 믿었던 집단에서 퇴출되는 일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가혹하다.

<정육점집 외아들>은 분명한 아쉬움의 지점을 여럿 가졌다. 그중 하나는 개연성이다. 영화에 동력을 제공하는 사건, 그러니까 불륜의 확인이며 살인까지가 모두 자연적인 흐름을 벗어나 돌출되는 우연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개연성을 크게 상실하게 한다. 태섭이 이모부의 불륜사실을 알게 되는 것부터, 살인사건에 연루되는 것, 나아가 극의 클라이맥스와 결말에 이르는 결정적 사건들까지도 모조리 중요한 것은 돌발적 우연에 의지해 이뤄진다.

정육점집 외아들 스틸컷
정육점집 외아들스틸컷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우연에 기대는 전개, 평면적 캐릭터

또 하나 아쉬운 건 캐릭터와 관계, 배경설정에 대한 것이다. 제목에까지 빼어단 '정육점'은 어째서 정육점이어야 했는가. 죽은 동물의 육체를 썰어 공급하는 직업군과 그 매장이 영화에서 갖는 필연적 역할이 존재하는가. 정육점이 아니라 미용실이래도 다를 바 없었을 이야기란 점에서 구태여 그에 오랜 시간을 할애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태섭과 이모부, 이모의 캐릭터 또한 평면적이다. 영화 내내 처음 비치는 모습과 달라지는 인물이 없을 정도다. 사건과 맞물려 변화하지 않는 캐릭터들만 가득한 이야기는 관객에게 쉬이 지루함을 안긴다. 어째서 관객은 이 이야기를 보아야 하는가. 그저 살인이 있기 때문에? 살인, 그러니까 죽음과 범죄, 피가 나오는 영화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가?

냉정하게 말하자면 <정육점집 외아들>엔 새로움이랄 게 없다. 기술적 측면에서 따로 흠잡을 구석이 많지 않은 매끄러운 영화인 게 사실이지만 작가의 인장이라 부를 만한 독자적 색채, 이 영화만의 특장점이며 승부수라 할 것이 전무하다. 캐릭터와 관계, 배경과 상징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래 머물러 고심한 흔적조차 없다. 범죄물의 고정적 장르성을 안이하게 답습할 뿐이다.

정육점집 외아들 스틸컷
정육점집 외아들스틸컷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무난한 이 영화, 과연 판타스틱한가?

<정육점집 외아들>이 나쁜 영화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누군가는 그럭저럭 즐겁게 볼 만한 구석도 없잖다. 어쨌든 위기에 봉착한 주인공이 있고, 그가 처한 상황이 갈수록 꼬여가는 문제가 있으며, 밖으로는 범죄요 안으로는 가족간의 문제란 두 가지 위기가 나름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은 그 내실과는 별개로 영화가 풀어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그는 그대로 영화가 나름의 힘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된다.

다만 묻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 영화가 과연 판타스틱하냐는 것, 그러니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단 10편의 작품을 추려 '부천 초이스'란 이름으로 소개할 만큼 특별한가 하는 것이다. 영화제가 '장르적 다양성'이라 말한 바로 그 영역에서 <정육점집 외아들>은 독자적이고 선명한 성취를 구하지도, 구하려 하지도 않고 있다.

묻는다. 판타스틱영화제는 과연 판타스틱한가. 올해로 30회를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고민이 바로 이 지점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한때 한국 3대 영화제 중 하나였다. 한때라고 말할 밖에 없는 것은, 이 영화제가 제 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 다른 두 영화제가 한참을 앞서 가고 있고, 또 다른 여러 영화제가 독자적인 색채를 갖고서 약진해온 때문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포스터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의 BIFAN다움, 그를 찾기를 바라며

아시아 제일의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와 세계적 작가를 발굴해 소개하는 대체 불가능한 창구로 역할을 담당하는 전주국제영화제에 비하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자임하는 역할이 과연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는 없다.

또 한 편으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등 독자적인 텃밭을 구축하고 내실을 다져온 여러 영화제들 사이에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현재를 돌아볼 밖에 없다.

이미 지난해 한 차례 관객수와 상영작 감소, 상영횟수며 부대행사 축소, 심지어는 함량미달의 폐막작 선정에 이르기까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오늘을 비판한 바 있다. 대중성과 선명성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데다, 시비 지원에 의지하면서도 시민과 함께 하는 축제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는 등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오늘엔 긍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한둘이 아니다(관련기사: 이 영화가 폐막작?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배신감을 느꼈다).

특장점 없는 <정육점집 외아들>은 다만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영화제는 상영작으로 말하지만, 그저 상영작으로만 말하는 건 아니다. 오늘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선택은 무엇인가. 더 판타스틱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더 대중 가까이 다가서는 것인가. 이 영화제가 한국 영화계의 한 기둥이, 드문 창구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BIFAN 정육점집외아들 유형준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