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경기에서 심판이 미국 선수 폴라린 발로건에게 레드카드(퇴장)를 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퇴장당한 자국 축구대표팀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의 출전정지 징계를 철회하기 대대적인 로비에 나선 것으로 드러나 외교 문제로 불거졌다.
막심 프레보 벨기에 외무장관은 6일(현지시각)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만약 백악관의 전화 한 통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이끌어냈다면 축구와 스포츠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훼손한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축구 심판이었던 프레보 장관은 "이 결정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과연 공정한 대회를 외칠 자격이 있는지 많은 의문을 제기한다"라고 비판했다.
자국 선수 징계 막으려 대통령·장관까지 나선 미국
발로건은 지난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간의 32강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렸으나, 후반전에 상대 선수의 발목을 밟는 반칙으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월드컵 규정에 따르면 발로건은 최소 한 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고 6일 열리는 벨기에와의 16강전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으나, FIFA는 전날 발로건의 징계를 1년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 최고위급 인사들이 FIFA에 발로건 징계 철회를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백악관 월드컵 태스크포스 집행국장 앤드루 줄리아니와 이 문제를 논의했다. 줄리아니 집행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발로건의 출전정지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고, 인판티노 회장은 며칠 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발로건의 징계가 유예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에서 레드카드가 189장 나왔지만 출전정지 징계를 받지 않은 경우는 이번이 두 번째다. 1962년 칠레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브라질 가린샤가 퇴장당했으나 결승전에 출전해 우승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동 출전정지 제도가 없어 징계가 번복된 사례는 사실상 발로건이 처음이다.
트럼프 "징계 부당하다고 생각... 결정은 FIFA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내가 FIFA에 재고를 요청했다"라며 자신이 개입한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나는 재검토를 요청했을 뿐 어떤 결정을 내려달라고 말한 적은 없다"라며 "발로건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중미 월드컵의 높은 관중 수와 시청률을 언급하며 "만약 발로건이 징계를 받았다면 대회에 큰 오점을 남겼을 것"이라며 "(징계 유예는) FIFA가 내린 결정이며, 그 결정은 옳았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로건을 퇴장시켰던 브라질 출신 심판을 향해서도 "약간 의심스럽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문제를 두고 "월드컵 역사상 가장 대담한 시도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며 "백악관이 조직적인 로비, 법정 공방, 외교 활동으로 축구 경기의 심판 판정을 국가적 사안으로 끌어올려 결과를 뒤집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깊다. 여러 차례 백악관 집무실을 방문했고, FIFA 평화상을 만들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하기도 했다. 두 인물은 이번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우승팀 선수들에게 트로피를 함께 수여할 예정이다.
FIFA는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표결로 징계를 유예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FIFA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솔직히 말하기 위해 익명을 요구했다는 FIFA 부회장 중 한 명은 "너무 수치스럽다(utter disgrace)"라고 밝혔다. FIFA는 각 대륙 축구연맹 회장과 전문 행정가 등으로 8명의 부회장을 두고 있다.
유럽축구연맹 "FIFA가 선 넘었다... 월드컵 신뢰 훼손"
미국과 16강전에서 격돌할 벨기에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벨기에축구협회는 성명을 통해 "발로건의 출전 자격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라며 "FIFA에 결정문 사본과 절차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FIFA는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라며 "(미국과의)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윤리의 기본 원칙과 공정한 경쟁, 축구 전체의 이익을 위해 몇 시간, 며칠, 몇 달이고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축구계도 힘을 보탰다. 벨기에가 속한 유럽축구연맹(UEFA)은 "퇴장에 의한 최소 한 경기 출전정지는 재량이 아니라 규칙"이라며 "전례가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결정을 내린 FIFA가 레드라인을 넘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축구는 어디서나 같은 규칙으로 경기하기 때문에 신뢰받는 것"이라며 "규칙의 확실성이 그걸 지켜야 할 사람들에 의해 더 이상 보장되지 않으면 경기의 공정성과 월드컵 대회의 신뢰가 훼손된다"라고 밝혔다.
독일 대표팀 차기 감독으로 유력한 위르겐 클롭은 "정말로 트럼프 대통령과 인판티노 회장이 서로 합의해 결정했다면 미친 짓"이라며 "축구를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은 축구와 관련된 어떤 일에도 관여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노르웨이 대표팀을 이끄는 스톨레 솔바켄 감독도 "월드컵에 해를 끼칠 나쁘고 나쁘고 나쁘고 나쁜 결정"이라며 "만약 미국이 벨기에를 이기더라도 이 문제가 언제나 따라다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BBC는 "FIFA의 이번 결정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월드컵의 공정성을 위협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인판티노 회장은 "FIFA 징계위원회는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리며, 나도 그 결정에 놀라거나 동의하지 못할 때도 있다"라면서 "하지만 그 결정은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항상 존중되어야 하고, 이는 월드컵의 공정성과 FIFA의 신뢰성을 지켜준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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