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박지르듯 질주하는 '호프', 나홍진 감독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389] <호프>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 호프일까.

바닷가를 끼고 있는 작은 항구마을 호포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점 하나를 떼어 '호프'란 제목을 달고 있는 건 그저 우연만이 아니다. 스쳐 가듯 지나치는 간판이 잠깐 비추듯이 희망을 뜻하는 영단어 'Hope'가 호포항의 영어 이름이다. 영화가 희망을 품기 위하여서 배경을 호포로 삼았음은 그래서 분명하다.

희망이란 언제나 좋은 것인가. 그렇지가 못하기에 설득이 필요하다. 저 유명한 영화 <쇼생크 탈출>은 바로 이 명제를 설득하기 위해 내달리는 142분의 여정이라 봐도 무방하다. "희망은 좋은 거예요. 어쩌면 제일 좋은 걸지도 몰라요.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라는 앤디의 편지글에 레드가, 나아가 영화를 보는 모두가 수긍하게 된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훌륭함을 보여준다. 나는 <호프>가 해냈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어야 했다고 믿는다.

호프 스틸컷
호프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한국형 아닌 진짜 블록버스터?

나홍진 감독은 한국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무려 156분의 블록버스터를 찍어냈다. 이 작업은 그 자체로 어떤 희망을 증명한다. 한때 한국에선 블록버스터가, 무려 괴수와 우주선이 등장하는 규모 있는 영화가, 또 알리시아 비칸데르며 마이클 패스벤더 같은 할리우드 스타까지 출연하는 작품을 찍을 수가 없으리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오늘에 이르러 나홍진은 이것이 가능하단 걸, 심지어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단 걸 확인케 한다. 희망만 간직하고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고, 호포 같은 시골 마을에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은 작품을 찍어낼 수 있다고 선포한다. 이를 그대로 한국영화, 나아가 영화예술의 희망이라 보는 이가 없지는 않을 테다.

<호프>는 여느 블록버스터가 그러하듯 관객을 압도하는 도입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 선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이라 적어도 크게 무리는 없을 명배우 황정민이다. 존재감 확실한 그는 1970년대 호포 치안을 책임지는 출장소 소장 범석이다. 차림부터 동네를 장악한 대장 같은 그 주변에 험악한 인상의 한 무리 사내들이 모여든다. 총 한 정씩 어깨에 걸고 있는 이들은 꽤 오래 팀을 이룬 사냥꾼들이다. 영화는 이들 앞에 선 범석의 확고한 카리스마와 이들 사이에, 또 그 밖에까지 감도는 기묘한 긴장감을 바탕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꽉 붙든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소 한 마리 때문이다. 이날 이들이 사냥을 갔다 나오던 중 길가에 커다란 소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신고 한 것이다. 길에 누워 죽어 있는 황소 몸통엔 곰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발톱 자국이 나 있다. 도대체 소를 죽일 만큼, 이처럼 큰 발톱 자국을 남길 만큼 큰 짐승은 무엇일까. 범석은 도대체 그런 동물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일 없다. 대체 무엇이 이 소를 죽였을까. 영화 초반부는 그 답을 찾아가는 한 편의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보인다.

한동안 미스터리 스릴러의 흐름을 타고 전개되던 영화는 어느 순간 본론을 꺼내 든다. 그저 곰이나 호랑이가 아니다. 정체불명의 괴물이다. 죽은 건 그저 소 한 마리가 아니다. 마을 외곽에 사는 어느 노인의 축사가 박살이 나 있고, 여러 마리 소와 함께 노인까지 죽어 있는 것이다.

호프 스틸컷
호프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장르에서 장르로 이어지는

미스터리가 조금씩 벗겨지고 나면 괴수물의 장이 열린다. 단서를 좇아 사냥꾼들은 산으로 올라가고, 읍내로 온 범석은 범석대로 괴수들과 마주한다. 젊은이들은 산불진화를 위해 나가 있고 호포엔 나이든 사람들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괴수가 읍내 한복판에 나타난 것. 짐승의 것이 아닌 괴력으로 건물을 부수고 사람들을 학살하는 괴수의 정체를 범석도 그를 따르는 카메라도 좀처럼 포착해 내지 못한다. 산탄총 한 정을 들고 내달려서 괴수의 뒤를 쫓는 범석과 괴수에게 처참하게 당하는 이들의 모습이 여느 할리우드 괴수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뿐이다.

읍내에선 읍내대로, 산 깊은 곳에선 산 깊은 곳대로 싸움이 이어진다. 종횡무진하는 괴수는 과연 인간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을 만큼 어마무시하다. 이에 맞서는 이들의 노력이 괴수영화를 넘어 일종의 재난영화를 보는 듯한데, 어찌어찌하여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여지없이 제 존재를 과시한다.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전개가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제 공식에 정통한 이의 솜씨를 보는 듯하다. 그가 바로 한국영화가 낳은 나홍진이란 건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일일까.

뭐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는 영화는 이번엔 SF의 색채를 내보인다. 모든 건 결국 외계에서 온 이들 때문이라는 듯, 아니, 꼭 외계에서 온 우주선이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 도시들에만 떨어지란 법 있냐는 듯이 <호프>는 우주선을 한국에서도 외딴 항구마을 호포의 깊은 산속에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그로부터 <호프>는 다시 외계인과 인간의 조우를 다룬 일련의 영화들, 또 외계인과 인간이 서로 죽고 죽이는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일랑 <호프>가 아니래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골백번쯤은 본 것 같지만 그게 뭐 어떠한가. 이 영화가 할리우드가 아니라 메이드인코리아란 게 중요하지, 하는 나홍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달까.

호프 스틸컷
호프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뭣이 중헌디?" 나홍진의 물음

말하자면 <호프>는 미스터리스릴러로 시작해 괴수물과 재난영화를 거쳐 SF에 이르는 156분의 블록버스터다. 장르나 길이로나 심지어는 황정민을 넘어 할리우드 대표배우들까지 캐스팅했다는 점에서도 블록버스터의 외연을 갖췄다. 미국과 중국 같은 돈 많은 나라만 블록버스터를 찍으란 법이 있냐는 듯, 한국도 얼마든지 해낼 수가 있다는 걸 입증한다.

새로움 따윈 필요하지 않다. 개연성도 그렇다. 너네들 블록버스터에도 그런 건 없었잖아, 이렇게 말하는 듯이 뻔뻔하게 앞으로만 내달린다. 도저히 호포항에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 무기들, 이를테면 자동소총과 유탄발사기, 수류탄 같은 군사무기며 탄 가득 든 탄창묶음이 등장할 때마다 수차례 반복되는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하는 말은 그저 무기의 출처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블록버스터를 펼치는 데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개연성 따위 개나 줘버려도 되지 않느냔 선언이다.

<호프>는 희망인가. 그렇다면 그 희망은 무엇에 대한 희망인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진짜 한국에서 만든 블록버스터가 가능하다는 희망이라면 <호프>는 정말로 희망을 보여준다. AI로 대표되는 현대 디지털 기술이 한국을 더는 상업영화의 변방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는 희망이다. 나홍진도 얼마든지 스티븐 스필버그는 아니래도 저 롤랜드 에머리히나 마이클 베이 쯤과 겨뤄볼 수 있다는 희망이다.

'호프'는 정말로 희망일까?

그러나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호프>의 한 면은 희망이지만 그 반대면은 절망에 더 가까워 보이는 때문이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하는 말에 덮이는 진실, 그러니까 관객에게 닿지 않는 문제는 개연성이다. 관객이 감독이 풀어가는 이야기 가운데 자연스레 품을 법한 의문들을 영화는 하나도 고심하지 않고서 지나친다. 그러고선 그런 작은 일에 매이지 말라고, 제 말에만 귀를 기울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과연 그는 바람직한 태도인가.

시종 관객을 압도하며 나아가는 박진감 넘치는 영화가 단 한 순간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덕분에 어떤 관객은 멈춰 설 필요도, 구태여 질문할 필요도 없지 않으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얻고자 했던 자극이 충분하지 않으냐고, 시종 재미있고 속도감 있는 영화가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는 영화예술의 자세가 아니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를 어두운 극장 안에서 일방적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관객이 그저 감독의 영상연출에 압도되기 위해서만 극장을 찾는가. 그렇지 않다. 영화가 예술이라면 그는 보는 이의 사고를 고양하고 의식을 확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를 완전히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거의 윽박지르듯 쉴 새 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이 영화가 정작 중요한 개연성을 서사는 물론 액션연출과 캐릭터에 있어서까지 상실하고 있다면 그를 챙겨야 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극장에 앉아서도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이해하며 납득하려는 관객이라면 "그런 건 정말로 중요하다"고 외칠 수가 있어야 한다.

내게 <호프>는 희망이 아니라 절망으로 다가온다. 작가와 관객 사이에 이해와 교감, 설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 영화가 그저 자극과 소비의 매체가 아니라 표현과 수용, 창작과 비평의 가치를 갖는 예술이라 여기는 사람에겐 특히 그럴 것이다. 그를 위해 중요한 것을 <호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대사 하나, 장면 하나까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그나마 좋게 말해 복제 혹은 미러링하는 데 집중할 뿐, 관객 앞에 탁월함을 펼쳐내기 위한 고심 따윈 없다. 이것이 영화의 미래라면 영화는 기술일 뿐, 예술로서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호프 포스터
호프포스터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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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