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뭣이 중헌디?" 나홍진의 물음
말하자면 <호프>는 미스터리스릴러로 시작해 괴수물과 재난영화를 거쳐 SF에 이르는 156분의 블록버스터다. 장르나 길이로나 심지어는 황정민을 넘어 할리우드 대표배우들까지 캐스팅했다는 점에서도 블록버스터의 외연을 갖췄다. 미국과 중국 같은 돈 많은 나라만 블록버스터를 찍으란 법이 있냐는 듯, 한국도 얼마든지 해낼 수가 있다는 걸 입증한다.
새로움 따윈 필요하지 않다. 개연성도 그렇다. 너네들 블록버스터에도 그런 건 없었잖아, 이렇게 말하는 듯이 뻔뻔하게 앞으로만 내달린다. 도저히 호포항에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 무기들, 이를테면 자동소총과 유탄발사기, 수류탄 같은 군사무기며 탄 가득 든 탄창묶음이 등장할 때마다 수차례 반복되는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하는 말은 그저 무기의 출처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블록버스터를 펼치는 데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개연성 따위 개나 줘버려도 되지 않느냔 선언이다.
<호프>는 희망인가. 그렇다면 그 희망은 무엇에 대한 희망인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진짜 한국에서 만든 블록버스터가 가능하다는 희망이라면 <호프>는 정말로 희망을 보여준다. AI로 대표되는 현대 디지털 기술이 한국을 더는 상업영화의 변방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는 희망이다. 나홍진도 얼마든지 스티븐 스필버그는 아니래도 저 롤랜드 에머리히나 마이클 베이 쯤과 겨뤄볼 수 있다는 희망이다.
'호프'는 정말로 희망일까?
그러나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호프>의 한 면은 희망이지만 그 반대면은 절망에 더 가까워 보이는 때문이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하는 말에 덮이는 진실, 그러니까 관객에게 닿지 않는 문제는 개연성이다. 관객이 감독이 풀어가는 이야기 가운데 자연스레 품을 법한 의문들을 영화는 하나도 고심하지 않고서 지나친다. 그러고선 그런 작은 일에 매이지 말라고, 제 말에만 귀를 기울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과연 그는 바람직한 태도인가.
시종 관객을 압도하며 나아가는 박진감 넘치는 영화가 단 한 순간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덕분에 어떤 관객은 멈춰 설 필요도, 구태여 질문할 필요도 없지 않으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얻고자 했던 자극이 충분하지 않으냐고, 시종 재미있고 속도감 있는 영화가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는 영화예술의 자세가 아니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를 어두운 극장 안에서 일방적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관객이 그저 감독의 영상연출에 압도되기 위해서만 극장을 찾는가. 그렇지 않다. 영화가 예술이라면 그는 보는 이의 사고를 고양하고 의식을 확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를 완전히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거의 윽박지르듯 쉴 새 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이 영화가 정작 중요한 개연성을 서사는 물론 액션연출과 캐릭터에 있어서까지 상실하고 있다면 그를 챙겨야 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극장에 앉아서도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이해하며 납득하려는 관객이라면 "그런 건 정말로 중요하다"고 외칠 수가 있어야 한다.
내게 <호프>는 희망이 아니라 절망으로 다가온다. 작가와 관객 사이에 이해와 교감, 설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 영화가 그저 자극과 소비의 매체가 아니라 표현과 수용, 창작과 비평의 가치를 갖는 예술이라 여기는 사람에겐 특히 그럴 것이다. 그를 위해 중요한 것을 <호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대사 하나, 장면 하나까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그나마 좋게 말해 복제 혹은 미러링하는 데 집중할 뿐, 관객 앞에 탁월함을 펼쳐내기 위한 고심 따윈 없다. 이것이 영화의 미래라면 영화는 기술일 뿐, 예술로서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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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