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현실이 상상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다. 30회를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 초이스 코리안: 장편' 섹션 출품작 <노크>가 보여주는 풍경이 바로 이와 같다. 감독은 정범, 지난 2024년 개봉한 <한 채>를 허장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한 이다. 한국적 욕망의 집약체라 해도 좋을 부동산과 누구도 돌보지 않는 소외된 이들이 기묘하게 얽혀든 독창적 작품을 선보인 그가 <노크>를 통해 한국사회의 불편한 이면을 다시금 들추어낸다.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독창적 장르영화축제를 표방하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다. <노크> 또한 그에 발맞춘 작품, 통상적인 공포영화와는 조금쯤 다른 형식과 설정, 소재로 관객 앞에 다가선다.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 류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형식과 중심된 극적 서사를 앞세우지 않는 구조가 하나하나 그렇다.
영화는 흔히 '6호 시설'이라 불리는 곳을 찾은 방송국 촬영팀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6호 시설이란 범죄를 일으킨 미성년자에게 가해지는 보호처분 가운데 소년원 송치 전 단계인 '6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수용하는 기관이다. 현행 소년법은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청소년을 형사미성년자로 규정해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내리도록 한다.
▲노크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불안과 긴장 감도는 6호 시설
1호부터 10호까지 내려지는 미성년자 형사처분 가운데서 8호에서 10호가 소년원 송치에 이르는 악질적 범죄다. 6호는 격리보다는 교화와 보호의 목적이 더욱 크다고 판단된 경우다. 6호 처분받은 이는 법에 따라 지정된 민간기관에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수용된다. 이 기간 동안 교화 목적의 재교육이 집중적으로 진행된다. 법무부 등에 따르면 매년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6호 처분받고 기관에 수용된다.
처음 촬영은 6호 시설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목적으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 사업을 받아 하는 민간시설이라고는 하지만 수익을 올리기보다 봉사에 가까운 마음으로 시설을 운영하는 소장 부부의 모습이 인터뷰 등을 통해 드러난다. 시설을 퇴소한 뒤에도 생필품을 사 들고 방문하는 이들이 있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리려는 아이들이 있다. 덕분에 시설은 범법자 수용소란 인상보다도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의 보호소란 인상을 준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이를 비추는 방식이다. 영화 속 진행되는 다큐 촬영과는 별개로 촬영팀과 시설 운영자, 또 아이들 사이의 균열이 도드라진다. 2인으로 구성된 현장 촬영팀 사이에서, 시설 운영자와 PD 간에, 또 아이들 안에서도 불온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본래 촬영 목적과는 달리 선배 PD는 후배에게 아이끼리 다투거나 하는 장면을 꼭 찍으라고 당부한다. 후배는 그게 마뜩찮지만 결정권은 선배에게 있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PD는 인터뷰 후에 인터뷰 대상자의 마이크를 그대로 달고 있도록 한다. 그리고 남몰래 그들이 카메라 없는 곳에서 대화하는 내용을 엿듣는다. 신뢰 따윈 없다.
▲노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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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공포스런 현실을 아십니까
소장 부부와 교사, 아이들의 모습에서 따스함을 느낀 후배 PD에게 선배는 어쨌거나 아이들이 범죄를 저질러서, 남을 괴롭혀 이곳에 온 것이라 말한다. 그가 소장에게 무심코 제 생각을 말했다가 어색해지는 순간도 있다. "6개월이란 시간은 피아노도 가르치기 어려운데 인간이 교화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하는 그의 말에 소장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했다. '교화'란 말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소장이 어찌 알아듣지 못할까. 누군가는 이 아이들이 이미 악에 물들어 새사람이 될 수 없다고 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환경이 나빴을 뿐이라고 여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진실이 있겠으나, 때로 진실은 각자의 의견 너머로 힘을 발하지 못한다.
6호 시설이 처한 상황이 꼭 그러하다. 영화 속 6호 시설은 주민들의 거센 반대 끝에 겨우 들어설 수 있었다. 외진 산골짜기에 교화 시설 하나 만드는 데도 동네 주민들이 나와 집회 했다. 반대를 딛고 겨우 만든 시설을 좋은 뜻에서 운영하는 소장은 주민들에겐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한다. 현실이라고 다를까.
매년 6호 처분받는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 정원은 다 합쳐도 그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운영하려는 이들도 얼마 되지 않는 데다가 새로 시설 허가를 받기도 어려운 때문이다. 특히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 이미 과밀한 타 지역 시설로 보내지기 일쑤다. 교화를 위한 재교육에 있어서도 본래 목적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 과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말은 재교육이지만 실제는 격리와 처벌에 그치는 법제도 운영의 현실을 한국사회는 얼마나 돌아보고 있는가.
불온한 진실에 다가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된 서사보다도 현실 그 자체가 더욱 공포스럽다는 인식에 닿는다. 영화는 시설을 퇴소한 뒤 이따금 찾아 자원봉사를 하는 인아의 모습 또한 낯설게 비춘다. 졸업생이 저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베푸는 선순환이 긍정적이어야 마땅한데, 영화는 어딘지 음모가 있는 것처럼 묘하게 그를 잡아낸다. 날을 감춘 듯한 PD의 질문과 회피하듯 자리를 뜨는 인아의 모습이 관객에게 미묘한 긴장과 불안을 전염시킨다.
<노크>는 조금씩 시설에 자리한 불온한 진실에 다가선다. 인아가 어째서 방송국의 관심을 피하는지, 또 시설에서 있었던 사고와 죽음 뒤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드러낸다. 동력은 도진의 다큐멘터리 촬영이지만, 그 목적이 정의구현이나 사실의 기록, 시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아니란 게 특징적이다.
도진은 어떻게든 화제가 될 만한 방송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다큐멘터리 본래의 목적이라거나 촬영대상자의 미래, 진실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소위 '방송국놈들'이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도진과 그 선배들의 태도가 보는 이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순간도 여럿이다. 오로지 소송 가능성만을 고려하며 시설이든, 수용자든, 보험사까지도 누구든 공분을 일으킬 수만 있으면 표적으로 세우겠다는 태도를 감추지 않는다.
▲노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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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무관심에 '노크'를
가편집본을 보며 "대박일 거 같은데"하고 말하는 선배 PD에게 후배는 "6호 시설이 필요한 시설인데, 그렇게 방송하면 나쁘게 보이지 않을까요?"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 듣던 작가는 그녀의 비판에 "왜 예민하냐"고, "PD님 나쁜 사람 만들지 말고 좀 쉬라"고 대응한다. 정당한 비판이 피곤해 선을 넘은 것이 되고, 비틀린 태도가 도리어 정의를 좇는 것인 양 꾸며진다. 이러한 광경이 오로지 영화 속의 일이 아니란 걸 보는 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요컨대 영화 속 공포는 사건이 아닌, 이와 같은 현실의 반영으로부터 온다. 관객에게 현실을 일깨우는 것, 자각하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공포는 이미 존재한다. 고개만 돌리면.
극영화임에도 핸드폰이나 캠코더, 또 CCTV 영상을 그대로 담아내 이색적인 감각을 일으킨다. 때로 다큐팀과 함께 진실에 다가서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기분도 맛볼 수 있다. 진실이 무엇이냐는 다가섬이 마침내 영화 속 진실보다 중요한 문제를 가리키는 순간과 조우할 때 관객은 비로소 고개를 돌려 스크린이 아닌 제가 발 딛고 선 실제 현실을 바라본다.
바로 그곳에 진짜 6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이 모인 시설이 있다. 그를 결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보다도 무관심한 우리 사회가 있다. 그 무관심이 공포보다도 더 공포스럽지 않으냐고 묻는다.
말하자면 제목 '노크'는 무관심한 우리의 창을 두드리는 영화의 신호다. 기껏 영화 한 편에 내준 관심을 보다 절실한 곳에 돌려야 하지 않느냐는 노크다. 당신은 화답할 준비가 되었는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포스터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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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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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처분' 아이들 찍은 방송사, 선·후배 PD 의견 갈린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