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 공연 이끈 85세 팝의 전설, 모로코에서 만나다

아프리카 최대 규모 음악 축제 마와진에서 펼쳐진 디온 워릭 콘서트

대중음악사의 위대한 작곡가 버트 바카락이 지난 2023년 2월 8일 작고한 뒤 그의 음악 세계를 한동안 들춰봤다. '더 룩 오브 러브(The Look of Love)'의 더스티 스프링필드와 '왓츠 더 푸시캣?(What's the Pussycat?)'의 톰 존스와 더불어 그의 악곡에 날개를 달아준 뮤즈는 명가수 디온 워릭. 맞수로 거론되던 아레사 프랭클린의 쩌렁쩌렁한 소울과 상반되는 사근사근한 팝 보컬은 빌보드 핫 100에 무려 69번 진입하는 역사를 쌓았다.

모로코 여행을 계획하던 중 마침 수도 라바트에서 열리는 대규모 여름 음악 축제 마와진(Mawazine) 마지막 날(지난 6월 27일) 라인업에서 워릭을 발견했다. 옳다거니 하고 바로 예매했다. 라바트 시내의 이벤트홀인 모하마드 5세 국립 극장에서 미국의 거장 가수를 만났다. 지난 6월 19일부터 27일까지 라바트에서 열린 마와진은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음악 축제로, 올해도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의 거장 티에스토와 스타 래퍼 타이 달라 사인 등 유력한 뮤지션이 대거 출연했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5인조 걸 그룹 '있지(ITZY)'도 지난 6월 23일 마와진 공연을 마쳤다.

명품 팝송 이어진 감탄의 연속

 디온 워릭 모로코 콘서트
디온 워릭 모로코 콘서트염동교

공연장 입구에 <히어 아이 앰(HereI Am)(1965)>과 <히어 웨어 데어 이즈 러브(Here Where There Is Love)(1966)> 사인 엘피(LP)가 보였다. 판매자에게 "워릭의 공연 소식에 깜짝 놀랐다"라고 말하니 "막판에 결정된 일이라 페스티벌 측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라고 답했다. 혹시 몰라 물어본 엘피 가격에 '500'이란 답이 들려와 식겁했지만, 달러나 유로가 아닌 현지 환율 디르함으로 원화 기준 약 8만 2천 원이었다.

래퍼 겸 싱어 도자 캣이 '페인트 더 타운 레드(Paint the Town Red)'에서 인용한 보사노바풍 '워크 온 바이(Walk On By)'부터 바카락의 선율이 그의 음성을 통해 환생 했다. 본디 뮤지컬 <프라미스, 프라미스>에 흘렀던 산뜻한 '아 윌 네버 폴 인 러브 어게인(I'll Never Fall in Love Again)', 마이클 케인 주연의 영화 1966년 코미디 영화 <알피>의 주제가 '알피(Alfie)' 1967년 리메이크 모두 바카락의 손길에서 나왔다. 가사는 모두 미국 작사가 할 데이비드의 작품인데, 엘튼 존-버니 토핀 콤비가 떠오를 정도로 바카락-데이비드 파트너십은 뛰어났다.

이 밖에도 쿠바계 미국인 가수 셀리아 크루즈와 협업한 '두 유 노우 더 웨이 투 산 호세(Do You Know the Way To San Jose)'와 연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파랑새에게 대신 전한다는 '메시지 투 마이클(Message to Michael)'같은 명품 팝송이 이어졌다. 비지스의 맏형 배리 깁이 곡을 쓰고 코러스를 입힌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는 배리 깁 특유의 풍부한 하모니와 또렷한 곡조가 일품이었다.

전성기와 비교하면 전반적인 위력과 음 높이가 내려온 건 사실이나 85세 고령에 약 30곡 100분 가까이 무대를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감탄스러웠다. 현장 음악 감독으로도 활약한 피아니스트 안드레 체즈 루이스는 팔을 휙 돌려 주먹을 꽉 쥐며 매번 곡의 종료를 알렸다. 스탠다드 팝에 걸맞은 세션 연주가 대부분이었지만 잠깐 주어진 개별 타임에선 베이시스트의 화려한 솔로가 빛났다.

 디온 워릭 모로코 콘서트
디온 워릭 모로코 콘서트염동교

관객과 함께 부른 '댓츠 왓 프렌즈 아 포(That's What Friends Are For)'은 화룡점정. 워릭보다 네 살 아래 위대한 알앤비 보컬 글래디스 나이트와 엘튼 존, 스티비 원더와 합을 맞춘 명곡으로, 저명한 필라델피아 소울 그룹 스피너스와 함께한 1974년 작 'Then Came You'와 더불어 "유이한" 빌보드 핫100 넘버원 송이다.

한편, 지정 좌석제로 알고 있었는데 공연장에 도착하니 내 자리에 어느 꼬마가 앉아 있었다. 정황을 보아하니 예약 시스템 문제로 혼란해 하고 있었다. 어부지리로 2열에 앉게 되었는데 덕분에 1열에 앉아 숨죽이며 공연을 관람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디디 브리지워터를 지켜볼 수 있었다. 1974년의 재즈 수작 < 아프로 블루(Afro Blue) >를 내놓았던 브리지워터도 마와진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지난 6월 26일 공연했다.

 디온 워릭 모로코 콘서트
디온 워릭 모로코 콘서트염동교

며칠 전 SNS에 흥미로운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미국 대중 음악계 신화적 경영인이었던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장례식 추모 연설자로 워릭이 나섰다. 워릭은 자신의 인사에도 식장의 참석자들이 잠잠하자 "제가 인사를 건네면 답하셔야죠"라며 식을 이끌어갔다. 데이비스는 아리스타와 콜럼비아같은 굴지의 회사를 오가며 50곡이 넘는 빌보드 핫 100 넘버원에 관여한 인물이다.

모하메드 극장에서의 미묘한 기류의 재현 같았다. 농담과 진담 사이에 걸쳐있는 듯한 멘트에 종종 장내가 고요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강단 있게 언사를 이어가던 모습에서 불편감보단 카리스마와 아우라를 느꼈다. 클라이브 데이비스와 버트 바카락 같은 음악계 거인들의 조력은 분명했지만, 70년에 달하는 경력을 일궈온 중심엔 역시 자기 자신이 있었음을 명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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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