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를 주목한다. 취임 뒤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식, 세월호 기억식,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과 제주 4·3 추념식, 5월의 광주에 걸음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마땅히 다시 돌아보아야 할 사건 하나를 건너뛰었다고 여겨서다.
1980년 광주에 한 달 앞서 국가폭력에 짓밟힌 사북의 항쟁, 동원탄좌 광부와 사북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다. 오래 꺼내지 못했고, 그래서 가슴 아픈 한으로 자리한 국가폭력의 상처를 이제는 꺼내어 돌보아야 할 일이다. 고령의 피해자들이 하나하나 세상을 등지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그 한을 풀어야 할 일이다. 국가가 먼저 풀어내지 못한다면 이들은 여전히 저 46년 전 비극에 갇혀 미래로의 걸음을 함께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제 1회 '광부의 날'을 맞은 지난 6월 29일 SNS을 통해 '사북항쟁'을 언급하긴 했다. 마침 움직임도 일고 있다. 박봉남 감독의 공 들인 다큐멘터리 <사북 1980>이 지난해부터 전국 각지서 공동체 상영을 이어가는 것이다. 지난 씨네만세에서 적었듯, 다큐를 넘어 운동이길 원하는 이 영화를 나는 있는 힘껏 지지하려 한다. 참여정부에서 출범한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을 발굴하고, 이어진 재심 재판으로 무죄선고와 함께 재판부의 사과가 담긴 판결문을 얻어내는 사례가 있었다곤 하지만, 국가차원에서 이 사건을 충실히 돌아보고 공식 사죄하는 일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영화관람과 후원, 서명으로 함께 하는 '늦은 메아리 운동'을 통해 정부가 전격적으로 지난 잘못을 사죄하게끔 이끄는 작업이 의미 있는 이유다.
▲먼지, 사북을 묻다스틸컷
이미영
사북의 비극, 본격 조명한 기념비적 작품
박봉남 감독의 <사북 1980>에 앞서 중요한 다큐멘터리가 먼저 있었음을 기억한다. 이미영의 2002년 작 <먼지, 사북을 묻다>가 바로 그 작품이다. 첫 작품이기도 했던 단편 <먼지의 집>으로 막장에 들어가 일하는 광부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그녀가 한층 확장된 장편 <먼지, 사북을 묻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사북 항쟁의 비극에 다가선다. 진실화해위가 첫 삽을 떼기도 훨씬 전에 아직 장편 하나 낸 바 없던 젊은 여성 감독과 그녀를 따르는 또 한 명의 젊은 여성 스태프가 카메라 하나만 들고서 광부들을 쫓아다니며 진실에 다가선 기록이다. 자본으로부터는 물론, 소재와 주제, 기성 영화의 관심으로부터도 독립해 있는 <먼지, 사북을 묻다>보다 더 독립적인 영화를 나는 얼마 알지 못한다.
<먼지, 사북을 묻다>는 감독의 목소리로 풀어가는 에세이 필름의 외양을 가졌다. 감독의 목소리로 나오는 내래이션이 그대로 관객들을 영화 안으로 이끈다. 2002년 강원도 정선읍 사북에 온 젊은 두 여성과 1980년 사북을 기억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사람들이 어렵사리 이어진다.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았던, 그래서 아주 오래 묻혀 있던 무거운 진실을 22년 만에 파 올리는 영화가 마치 위태로운 막장서 작업하는 광부들의 수고를 보는 듯하다.
동원탄좌가 운영한 사북 탄광은 부족한 에너지를 석탄으로 보충하던 근대화 시기 내내 활발하게 운영됐다. 1962년 개광한 이래 10여 년 동안 몸집이 20배 이상으로 커졌을 정도다. 5억 원이던 자본금이 100억 원을 훌쩍 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전후 이렇다 할 산업 하나 갖추지 못했던 한국이 근대화된 산업국가로 자리하기까지 사북 탄광의 역할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던 터다.
▲먼지, 사북을 묻다포스터
이미영
착취당한 산업역군, 그로부터 비극이 태어났다
그러나 광부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시절 많은 산업 분야에서 그러했듯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했고, 노동자는 스스로를 지키기에 버거웠다. 노동법이 법전 안에만 들었을 뿐 바깥세상에선 작동하지 않던 때다. 1970년대 말, 광부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한 달에 월급 16~18만원이 고작이었다. 쌀 세 가마 값으로, 가족들을 건사하면 남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짜장면 값이나 대중교통 가격이 지금보다 20분의 1 정도였으니, 오늘날로 단순 환산하자면 300만원을 조금 넘는 정도랄까. 당시 중견기업 평균임금과 비슷했으니 적은 돈은 아니었으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려하자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영화가 담고 있진 못하지만 연 평균 수백 명이 막장서 일하다 죽고 다치는 일이 공공연했던 때다.
더욱 큰 문제는 근무환경이었다. 사실상 광부들은 열악한 처우에 내몰려 감시당하고 착취당했다. 사측 감시원이 사택 인근을 순찰하며 소위 '불온한' 움직임을 단속하고 보고한다거나 하는 일이 공공연했다. 산 위에 자리한 탄광과 사택 마을은 읍내와 멀어서 광부와 그 가족들은 생필품을 조합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구매해야 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이 죄다 읍내보다 한참 비쌌다고. 소주와 질 낮은 쌀을 더 비싼 값에 사먹어야 하다니 호구 잡힌 꼴이 아닌가. 누구를 위한 조합이고 회사인가, 불만이 일어난 건 자연스런 일이다. 영화는 사북 항쟁 직전 광부와 그 가족들이 처해 있던 사정을 생생한 인터뷰로 담아낸다.
시작은 노조였다. 영화는 노조 지부장 이재기와 그를 둘러싼 어용노조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회사와 함께 등장한 '이재기 어용노조가 매년 1억5000만 원에 이르는 조합비를 물 쓰듯이 써댔다'는 주장과 함께 '노조활동이란 고작 경찰과의 대화 같은 반공교육 뿐'이어서 원성이 어마어마했다는 사실도 전한다. 결국 그에 대항하는 후보, 이용갑이 6대 노조지부장 선거에 입후보했으나 어용노조 측의 부당한 공작으로 당선되는 데 실패했다.
영화는 회사 측이 '무자격대의원 7명을 포섭해 15:13으로 이재기가 당선'된 사실, '재선거에서 무자격 대의원 포함 20:2로 이재기가 압승'한 내용 등을 자막으로 삽입한다. 감독의 목소리는 또한 노조 지부장 이재기가 '무자격 대의원들을 포섭'하고 '광부들에게 거둔 노조비로 대의원들에게 기생관광을 시켜주'었다거나 했다는 내용을 언급한다. 또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대의원 등을 인터뷰해 '이재기를 찍어달라고' 현금 100만원을 건넸다거나 하는 증언도 얻어낸다.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먼지, 사북을 묻다스틸컷
이미영
국가가 자행한 폭력,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북항쟁의 시작은 이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비롯됐다. 광부들이 모여든 자리에 정선경찰서 소속 정보과 형사 이운선이 사복차림으로 나와 있다가 광부들에게 걸렸다던가. 현장서 도망치던 그가 지프차량을 막아선 광부를 치고 지나가서 광부가 다쳤다고 했다. 감독은 촬영 당시 서울로 자리를 옮겨 외사과에 근무하던 그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지만 그는 사고가 있었단 사실을 극구 부인한다. <사북 1980>이 인터뷰 없이 확정적으로 다루는 것을 이 영화는 당사자를 찾아 묻고 부인하는 모습을 더하여서 담아낸다. 이건 그대로 다큐의 미덕이자 수고로운 일이다.
도입을 건넌 영화는 이내 절정으로 치닫는다. 친 이는 일 없다는데 치이고 크게 다친 광부가 둘이나 있다. 당시 분노한 광부들은 정선경찰서 사북지서를 점거하고 파업을 감행했다. 예고된, 체계적인 파업이 아니었다. 통제 불가능한 분노가 폭발하듯 분출했다.
주요 자원인 석탄 생산지에서의 파업이라니, 독재자 박정희가 암살되고 계엄령이 삼엄하던 1980년 4월의 한국에선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정선경찰서가 즉각 진압을 위해 경력을 파견한 것도 그래서겠다. 광부 쪽이 쪽수도 훨씬 많고 요충지를 선점하고 투석으로 대응하는 탓에 진압하긴 역부족이었음에도 무리하게 광부들이 점거한 쪽으로 진입하려다 경찰 측 사망자까지 발생한다. 작전은 끝내 실패한다. 읍 전체가 광부들에게 떨어진다. 그들의 세상이 열린다. 대치와 자치, 전에 없던 새 질서가 작동하는 가운데서 경찰과 군이 파업 주도 세력과 협상에 나선다.
국가와 파업 주도세력 간에 이뤄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다. 도지사는 물론 경찰과 군 관계자까지 참여한 협상이었다. 광부들은 파업을 중단하고 일터로 돌아간다. 전보다 나은 세상이 오리라 기대하며. 그러나 돌아온 것은 불법체포와 감금, 고문과 폭행이었다.
▲먼지, 사북을 묻다포스터이미영
수고로운 다가섬으로 발굴한 진실
영화는 사북항쟁의 감춰진 진실에 성실하게 다가선다. 누구도 걸음하지도, 묻지도 않던 사북으로 들어가 만나고 캐묻고 영상으로 담는다. 두 젊은 여성이 지난 일을 캐묻고 다닌다는 소식에 불온한 움직임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권력의 모습이 또한 당시의 현실을 알게 한다.
<먼지, 사북을 묻다>가 <사북 1980>에 비하여 갖춘 미덕이 있다면 수고로움일 테다. 적어도 소재와 주제의 면에서 앞서 있는 어떤 작품에도 의지하지 않고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을 대고 하나하나 만나가며 사북의 진실을 더듬어 나아가는 모습이 놀랍다. 문제에 책임 있는 이들, 특히 군 관계자에게 어떻게든 물음을 던지려 하고, 사북 문제를 다룰 때마다 뒤로 빠져 있는 기업가도 전면에 드러내는 태도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 결과로써 이혁배 당시 동원탄좌 사장의 목소리가 영화 안에 담기고, 이들 가문이 동원탄좌를 바탕으로 리츠칼튼 호텔과 로얄 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레저기업으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이, 심지어는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유전 사업에까지 진출했다는 이야기가 확인된다. 다른 곳에선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사북의 가려진 진실 한 장을 은근슬쩍 들춰낸 것이다. 한 차례 통화 뒤 연락이 닿지 않는 기업주가 사는 서울 성북동 저택을 찾아서 그 외관까지 담아낸 장면은 앞서 비춰진 열악한 광부들의 사정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강렬한 인상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지난 1980년의 비극이 민주화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자각을 하도록 한다. 영화 <먼지, 사북을 묻다>의 분명하고도 선명한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한 달 전인 1980년 4월, 강원도 동원탄좌 광부들의 파업과 그 이후 있었던 국가폭력을 한국은 어찌 기억하고 있는가. 국가가 승인한 협상은 지켜지지 않았고 파업 주도세력에겐 가혹한 복수가 뒤따랐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주도한 무차별한 강제연행과 고문이 있었고 여성들에게는 성적 유린까지 가해졌다. 한순간에 일생 광부로 살아온 노동자들이 간첩으로 몰렸다. 그 모두가 과연 전두환의 군사반란과 대통령 취임과 관련이 없는 것일까.
한 달 뒤 광주에서의 비극으로 대중은 물론, 언론의 관심까지 받지 못한 사북이다. 국가폭력에 따른 고통을 오로지 피해자의 것으로 놓아둔 채로 한국사회는 제 잘못을 오래도록 돌보지 않았다. 이제와 하나하나 정부 상대 소송에 승소하면 정의가 되찾아지는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광주를, 제주를, 세월호 침몰참사 피해자들을 찾아 위로한 대통령이 사북의 상처까지 보듬길 기대하는 건 그것이 국가가 나아갈 마땅한 길이며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는 대통령의 선택이라 믿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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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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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제주·세월호 찾은 이재명 대통령, 사북은 왜 빠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