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아재의 '리센느' 입덕기...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찾아온 리센느, 가식 없는 소녀들에게 빠지다

"너희들이 나한테 한국인의 밥상이고, 다큐 3일이고, 인간극장이다."
"한 아이돌을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의 실사판이네. ㅋㅋㅋㅋ"

최근 온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 아이돌의 역주행 스페셜 스테이지 무대 영상 속, 다정한 댓글에 눈이 갑니다. 화려한 대형 기획사의 자본이 장악한 요즘 아이돌 판에서, 도대체 이 아이돌은 어떤 마법을 부렸기에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이토록 뭉클하고도 다정한 사랑을 받는 걸까요? "아이돌 리센느가 누구야?" 싶으신 분들, 딱 좋은 타이밍에 오셨습니다. 저 역시 한 달 전까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거든요.

한 달 전까지 제 유튜브 홈 화면은 평화롭고 고요했습니다. 골프 중계를 돌려보거나 수영 강습 채널을 기웃거리고, 예전 가수들의 전설적인 무대 영상이나 주식 경제 채널을 보는 게 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낯선 영상을 들이밀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브레이크 없이 쏟아내는 아이돌과, 과장된 포즈로 해맑게 웃는 일본인 멤버가 보였습니다. 처음엔 피식 웃고 넘겼습니다. 완벽하게 세팅된 요즘 아이돌과 달리 너무 날 것의 모습이었으니까요. 근 한 달 동안, 이 끈질긴 알고리즘 추천을 끝까지 못 알아본 제 무딘 감각이 지금 생각하면 야속할 뿐입니다.

가식 없는 아이돌의 정체

 리센느
리센느리센느 원이 유튜브 채널

여기서 잠깐, 이 둘의 정체부터 풀고 가겠습니다. 사투리 소녀는 아이돌 그룹 리센느의 리더 '원이'입니다. 경상남도 거제시 출신으로, 본인 유튜브 채널인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를 통해 남다른 애향심 하나로 거제를 전국구 핫플레이스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죠.

갸루(일본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유행한 특유의 화장법. 진하고 검은 얼굴 화장에 눈 주변은 검은색이나 하얀색으로 분하고 태닝에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선보인다) 포즈의 주인공은 일본 출신 멤버 '미나미'입니다. 어머니가 진짜 갸루 세대였다는 설정을 살려 일명 '갸루귀신'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갸루피스를 하며 외친 "거제, 야-호~!" 한마디를 유행어로 만든 인물입니다.

이들의 영상에 빠져들며 평범하던 일상에 유쾌한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원이 채널을 역주행하다 거제도 시골 식당 에피소드를 마주한 날이었습니다. 라면 재료를 얻으러 들어간 원이가 식당 아주머니께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더군요.

"저 덕연(원이 어머니)이 딸입니다!"

그 이름 석 자에 가위를 든 채 서 계시던 식당 아주머니가 반색 하셨습니다. "아이고! 우리우리 이쁜 딸내미!" 화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이 어머니 김덕연씨의 따뜻한 삶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습니다. 동네 언니들과 반찬을 나누고 이웃 대소사에 함께 울고 웃으며 수십 년 다져 놓았을 다정한 동네 인심의 밭이 느껴졌습니다.

그 사랑을 듬뿍 먹고 자란 딸이니, 무대 위에서도 꾸밈없이 무해하고 건강한 투지가 나오는구나 싶어 가슴이 찡했습니다. 아이돌의 매력이 꼭 화려하게 포장된 비주얼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그 영상을 보며 배웠습니다.

멈출 수 없는 손가락

 리더 원이가 거제도 시골 식당에서 해맑게 자신을 소개하는 에피소드의 한 장면.
리더 원이가 거제도 시골 식당에서 해맑게 자신을 소개하는 에피소드의 한 장면.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그다음부터는 리센느 영상을 찾아보는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원이와 미나미 콤비에 막내 '제나'가 합류하며 판이 커졌습니다. 경상북도 경주 출신인 제나는 거제 사투리를 쓰는 원이와 '하루종일 사투리 쓰기' 콘텐츠를 찍었다가 '신라공주'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리고 다른 멤버인 '리브'와 '메이'까지 등장해 "저희도 리센느입니다!"를 외쳤습니다. 다섯 명이 다 모이니 그 시너지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한 편만 보고 자야지' 했던 다짐은 진작 무너지고 정신 차려보니 새벽 내내 리센느 영상만 대여섯 편을 연달아 넘겨보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검색해 보고서야 이 다섯 소녀가 2024년 3월 26일 데뷔했고, 그해 8월 발표한 청량한 곡 '러브 어택 Love Attack'이 무려 2년이 지난 지금 멜론 차트 5위까지 오르는 대역전극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들은 아이돌 팀이 이 하나뿐인 규모 작은 소속사에서 꼬박 2년 넘는 무명의 시간을 버틴 그룹이었습니다. 날것처럼 보였던 그 명랑한 장면들 뒤에 포기하지 않은 무명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영상이 사뭇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엉뚱하고 착한 멤버들은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무려 7시간 16분 동안 팬들과의 라이브 방송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면서 팬 한 명 한 명이 너무 소중하다며 연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리센느는 '러브 어택 Love Attack'이 역주행하며 차트 순위가 오르자 지난 5월 30일, 팬들의 걸음 수만큼 기부 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리센느의 서사를 알고 역주행 스페셜 무대 영상을 보는 순간, 가슴이 짜릿하게 벅차올랐습니다. 이들은 데뷔 초 관객석 200석을 못 채워 팬들에게 와 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던 아이돌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여 만에 기적처럼 다시 선 그 무대 위, 목이 터져라 "야호!"를 외치는 팬들의 함성과 응원 풍선을 마주했습니다. 무대에서 격한 안무를 하면서도 음원과 똑같은 라이브 실력을 뽐내는 멤버를 보며 전율이 일었습니다. 200석을 채우지 못한 서글픈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꽉 찬 풍경 앞에서 코끝이 시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멤버들이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다 함께 엉엉 울었다는 후일담까지 완벽한 성장 영화 한 편을 보는 거 같았습니다.

이 훈훈한 기운은 화면 밖으로도 기분 좋게 번졌습니다. 거제시가 발 빠르게 멤버 전원을 공식 홍보대사로 위촉해 실제 로컬 명소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신라공주 제나의 고향 경주 역시 홍보대사로 화답했습니다. 팍팍한 세상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들의 속도대로 즐겁게 걸어와 기어이 세상을 향기롭게 물들인 다섯 소녀가 참 고마웠습니다. 이들의 눈부신 성장 드라마는 이제 겨우 찬란한 도입부를 지났을 뿐입니다. 이달 카라의 '프리티 걸 Pretty Girl' 리메이크 싱글을 발매하는데, 또 어떤 멋진 반전과 행복을 선물해 줄지 벌써 설렙니다.

혹시 지금 지루한 일상에 따뜻한 위로와 활력이 필요하신가요? 그렇다면 리센느의 영상을 꼭 한번 클릭해 보시길 바랍니다. 미처 매력을 모르고 지나친 제가 뒤늦게 빠져든 것처럼, 정신 차려보면 당신도 어느새 거제 바다의 청량한 여름 향기에 스며들어 이 성실한 청춘들의 든든한 이모, 삼촌팬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마음이 동하셨다면 음원 한 번 더 재생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200석을 채우려고 애태우던 다섯 소녀가, 이번엔 정말로 차트 꼭대기까지 거제 바다 헤엄치듯 시원하게 뛰어오르는 걸 우리 다 같이 구경 한번 해보자고요.

자, 신입 리센느 팬덤의 마음을 담아 다 함께 기분 좋게 외쳐볼까요? "거제 야호! 리센느 야호!"

 화제의 역주행 곡 'Love Attack' 스페셜 스테이지 영상에 달린 누리꾼들의 다정한 댓글들
화제의 역주행 곡 'Love Attack' 스페셜 스테이지 영상에 달린 누리꾼들의 다정한 댓글들Mnet 유튜브 화면 캡처



리센느 러브어택 입덕기 거제야호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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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