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고립을 불러온다고? 재개봉 앞둔 이 영화의 경고

[김성호의 씨네만세 1386] <회로>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한다. 2026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밀레니엄, 곧 한 세기가 저무는 광경을 지켜보던 26년 전 이야기다. 정보화며 세계화란 말이 민주화보다 더 많이 쓰이던 시대, 컴퓨터가 집집마다 한 대씩 마련되고, 거리엔 식당만큼 많은 PC방이 생겨나던 때다. 지난 시대의 모든 것이 아날로그란 이름으로 마치 뒤처진 무엇처럼 여겨지던 이 시대, 한국과 한국인들은 과연 새로 다가오는 시대를 선택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떠밀리듯, 닥쳐온 세상 가운데 어떻게든 살아냈던 것뿐일까.

시대는 작품을 만든다. 세기말, 역사의 한 장이 넘어가던 그 시대에 만들어진 일련의 작품들이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이야기되곤 한다. 세기말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수많은 작품군 가운데서 일본 공포영화가 자주 거론되는 건 그리 낯설지 않다. 이는 그 시대 일본 영화가 각별히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한국에선 <링> <주온> 정도의 성공한 일본 공포영화만 유명하지만 이밖에도 주목받는 공포영화가 제법 있었다. 이달 8일 한국서 재개봉을 앞둔 <회로>도 그중 한 편이다. 오늘에 이르러 일본 영화계를 떠받치는 여러 기둥 중 하나로 평가되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대표작이다.

세계 유수 영화제가 그의 작품을 초청해 상영하는데, 한국에서도 일찍이 구로사와 기요시의 존재가 발굴돼 '저기 일본에는 이런 작가도 있다'고 주목하기도 했다. 올해 그 신작 <차임>이 한국서 개봉한 것과 발맞춰 25년을 가로질러 <회로> 또한 새로 선보이게 되었으니 그 오랜 팬은 기대감을 안고 극장을 찾을 수 있을 테다.

회로 스틸컷
회로스틸컷디오시네마

컴퓨터에서 출몰하는 유령이라니

동시대 많은 영화가 있었으나 시간이 흘러 <회로> 만큼 주목받는 작품은 많지 않다. 그저 보는 이를 오싹하게 하는 장르적 공포만 답습했다면 이와 같은 재평가가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다. 당대에도 <회로>는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까지 주목받았는데, <링>과 <주온>에 이어 현지 리메이크작이 만들어진 몇 안 되는 일본 공포영화로, 개봉에선 좋지 못한 반응을 얻었으나 2차시장에서는 나름대로 입소문을 타며 비디오 속편까지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회로>는 유령이 나오는 영화다. 통상의 유령과는 다른 신개념 유령이다. 흔히 유령은 오래된 옛것, 사람들이 더는 찾지 않는 것에 있다고들 여겨지지 않는가. 그래서 폐가나 흉가가 유령이 출몰하는 장소로 지목되기도 한다. 사람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곳,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간 곳, 또는 같은 장소라도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의 공간이 유령에게 익숙한 곳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회로>에서 유령이 출몰하는 곳은 다름 아닌 컴퓨터다. 당대 최신 기술이 집약된 문명의 이기 가운데 유령이 자리한다. 그 역발상이 영화 <회로>의 승부수가 된다.

회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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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 공포 3부작

평범하단 말이 꼭 어울리는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대학생 카와시마(카토 하루히코 분)와 직장인 쿠도(아소 쿠미코 분)가 바로 그들로, 영화는 어느 날부터 이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에 주목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던 이들 곁에서 직장 동료며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달라져 버린 주변인도 생기고, 몇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대체 왜? 그 이유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카와시마와 쿠도는 도무지 믿기 힘든 진상과 마주한다.

어쩌다 모니터를 바라볼 때면 그 안에 현실과 꼭 같은 장면이 떠 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인터넷엔 '유령을 만나고 싶으냐'는 메시지가 뜨기도 하고, 형체가 온전치 않은 존재가 달려들어 카와시마를 위협하기도 한다. 모호하고 불쾌하며 불가해한 일이 연속되는 가운데 인물들은 제게 벌어지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아간다.

<회로>는 1997년 작 <큐어>로부터 2006년 작 <절규>까지 이어지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 3부작 중 허리를 이루는 작품이다. 명확한 사건의 이유며 문제의 근원이 영화 내내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관객은 극 중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은근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불쾌한 질감의 공포에 서서히 잠식돼 간다.

회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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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도리어 인간을 고립시킨다

유령의 근원은 불명확하지만 영화가 겨냥하고 있는 문제의 지점만큼은 선명하다. "아무리 단순한 장치라 해도 일단 시스템이 완성되면 그 시스템대로 움직이기 시작해서 그대로 굳어버려"라거나 "각자 따로 살아가다 보면 인간은 연약하니까 점점 망가져 버리는 것 같아" 같은 대사들은 기술적 연결이 도리어 개인을 고립시키는 인터넷 기술의 적용례를 돌아보게 한다.

컴퓨터, 또 인터넷 기술을 공포의 매개로 꺼내 든 선택이 인상적이다. PC통신으로 출발해 범용 인터넷이 사회 보편의 공공재로 자리 잡던 시대, 공간적 제약을 기술로써 극복한 인터넷이 개인의 고립을 풀어내고 사회를 더 낫게 하리란 기대감이 충만하던 때가 아닌가. 실제로 많은 영역에서 인터넷은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고 정보를 교류하는 혁신적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정보의 교류 이상의 연결을 이뤄냈는가 묻는다면 쉬이 답하기 어렵게 된다. 때로는 그러했으나 그보다 자주 그러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벽에 그을음과 같은 존재로 납작해지지 않기 위해, 윤곽 없이 흐릿한 존재로만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누구를 찾아 바삐 오가는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회로를 통한 연결이 인간의 존재 방식이어선 안 된다는 게 <회로>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어지지만, 영화 가운데 짙게 자리한 절망적 분위기는 좀처럼 희망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자각하게 한다.

회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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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의 절망감이 자욱하다

혹자는 이 영화가 처음부터 세계의 붕괴를 그린 아포칼립스라 말한다. <큐어>와 <절규>가 그러하듯,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각 개인을 파멸케 하는 고독과 허무, 공포가 퍼져나가 사회 전체를 잠식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 가운데 정과 우정, 사랑 같은 것이 무력하게 부서져 나가는 형국이 꼭 그를 겨냥한 배치라고 보면 나름의 설득력 또한 있는 듯하다.

그저 인터넷, 온라인 연결만을 그린 영화라고 말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유럽 여러 나라를 넘어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군림했던 1990년대 일본 경제가 소위 거품처럼 붕괴한 뒤 '잃어버린 10년'이란 이야기가 나돌던 때이기도 하다. 소시민들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의 자장 아래 놓여 있었고, 누구도 쉽게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됐다. 영화가 스스로 문제의 근원을 저격하지도, 답을 내지도 못하고 짙은 절망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데는 이와 같은 사회적 상황 또한 자리한다는 분석이다. 당시 나온 일련의 공포영화가 대체로 비슷한 분위기를 공유한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 해석이 아주 틀렸다고 말하긴 어려울 테다.

요컨대 <회로>는 독창적 방법론으로 시대를 반영한 영화의 장르적 변주다. 충분히 두려우냐 하면 보는 이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공포를 끌어내는 방식은 다른 영화에서 흔히 발견하게 되는 그렇고 그런 수단을 통한 것이 아니다. 유령은 천천히 허우적거리는 것에 가깝고, 분위기는 몰아치는 대신 잠식한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윽박지르듯 겁주는 방식이 흔히 통용되는 공포영화 가운데 이와 같은 작품을 만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 희소성이 <회로>를 오늘에 이르러 다시 보게 하는 결정적 이유일 테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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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