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에 운동화 신고 달리는 여자, 핏빛 복수가 시작됐다

[여자가 바라본 여성 이야기] 영화 <레디 오어 낫: 죽음의 숨바꼭질>

 영화 <레디 오어 낫: 죽음의 숨바꼭질> 스틸컷
영화 <레디 오어 낫: 죽음의 숨바꼭질> 스틸컷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레디 오어 낫: 죽음의 숨바꼭질>은 전편의 설정을 이어받아 시리즈의 특성을 활용해 세계관을 과감하게 확장했다. 부와 권력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위선적인 인물과 가장 약해 보이는 인물이 벌이는 대결을 블랙 코미디로 그려냈다.

7년 만에 돌아온 속편의 오프닝은 전편의 결말에서 시작한다. 결혼식 날 시월드의 이상한 전통에 따라 숨바꼭질 게임을 무사히(?) 마친 신부 그레이스(사마라 위빙)가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진 동생 페이스(캐서린 뉴튼)와 만나 더 막장으로 치닫는 게임을 시작한다.

엄청난 부자 남편과 결혼한 줄 알았는데 사기 결혼이었던 황당함도 잠시, 게임의 승자이자 유일한 생존자 그레이스는 하루아침에 과부가 됐다. 하룻밤 사이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순간, 또다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게 납치되어 게임의 표적이 된다.

다시 시작된 숨바꼭질

 영화 <레디 오어 낫: 죽음의 숨바꼭질>
영화 <레디 오어 낫: 죽음의 숨바꼭질>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전 세계적인 부호가 한자리에 모인 자리를 배경 삼아 이들의 위선과 광기를 제대로 까발린다. 게임 사업으로 부를 쌓은 르 도마스 가문이 멸족된 이후 네 가문의 다툼이 본격화된다. 이들 사이의 오랜 규칙은 그대로다. 활, 도끼, 장총 등을 이용해 술래를 잡아야 하며 술래는 동이 틀 때까지 살아남아야만 한다. 시간은 엄수해야 하며 같은 편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규칙을 어길 시 누구라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

영화는 더 잔혹한 게임을 치르게 된 인물을 쫓으며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판이 커진 술래잡기에 동생 페이스까지 합세해 이야기는 예측불허, 속수무책으로 흘러간다. 그레이스와 페이스는 위기 속에 끊임없이 부딪히지만 결국 끈끈한 자매애로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그간의 오해를 풀고 더 돈독해진다. 자매는 돈도 이렇다 할 배경도 없지만 규칙의 빈틈을 파고들며 고난을 극복한다.

결혼 제도를 비트는 영리함

 영화 <레디 오어 낫: 죽음의 숨바꼭질>
영화 <레디 오어 낫: 죽음의 숨바꼭질>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돈과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들의 모순을 풍자하며 비릿한 웃음을 안긴다. 악마를 숭상하는 대가로 부를 누린 실체가 자세히 밝혀지며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치닫는데, 영리한 스토리텔링으로 설득력이 상당하다. 모든 계약의 성사와 파기가 '결혼'을 통해 진행된다. 상류층의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으로 세력 확장, 부의 유지를 다지는 매개였으며 현대에도 이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비꼰다.

악마와의 계약과 결혼을 비슷한 선상에 둔 결말도 인상적이다. 결혼의 허점을 파고들어 권력의 욕망에 집착하는 인간의 민낯과 결혼 제도의 역설을 보기 좋게 비튼다. 결혼식에서 반지를 끼며 약속한 사랑이 죽음과 삶을 결정하는 중요 수단이라는 걸 다시금 강조한다.

주인공 그레이스는 두 편의 영화 내내 나온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컨버스 운동화를 신는다. 이는 전쟁에 나가는 군인의 갑옷과도 같다. 속편에서는 피로 물든 웨딩드레스를 다시 입으며 장르적 쾌감을 더했다. 제작진은 후반부에 그가 걸치는 턱시도 재킷을 통해 코스튬 진화에도 공들였다. 이는 그레이스가 희생자에 머물지 않고 진취적인 생존자로 판을 주도하겠다는 변화의 의지이자, 가족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로 읽힌다.

이 판의 주최자 르 베일은 우매한 인간을 장기말로 쓰는 악마다.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가차 없이 폭파해 버리지만 승자에게는 부와 명예를 부여한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규칙만을 따른다.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악마의 형평성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현장에서 유일한 희망이다.

배우 사마라 위빙은 며칠 만에 결혼, 이혼, 재혼, 장례 등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그레이스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역할에 딱 맞는 퇴폐미와 액션 능력을 선보였다. 영화 초반에 깜짝 등장했다 사라지지만 댄포스 가문의 수장을 맡은 영화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강력한 존재감과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로 알려진 일라이저 우드의 짧지만 서늘한 등장도 인상적이다.

레디오어낫죽음의숨바꼭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