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은 3년만에 병원에서 깨어난다. 언니 '수련'과 함께 살던 집 옥상에서 추락한 후 처음으로 의식을 차린 것. 한달음에 달려와 얼싸안은 엄마 '금옥'의 손에 이끌려 회복된 소녀는 귀가하지만, 그곳은 추억이 깃든 옛집이 아니다.
사랑하던 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데다 엄마 역시 무언가 감추는 듯하다. 꺼림칙한 가운데 새로운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수안은 죽은 언니와 똑닮은 '재인'을 만난다. 기이한 상황에 처한 소녀는 옛집에 단서를 찾고자 방문한다.
깜짝 공포를 벗어나는 장르 실험
▲<그림자 아이>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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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 오면 극장가에 펼쳐지는 풍경, 바로 공포영화 전성시대다. 2026년 극장가엔 연초부터 공포 장르가 인공호흡기 노릇을 소화하는 참이다. 단편 <함진아비>로 독립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장르 시도를 통해 주목받은 이상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 <살목지>가 300만이 넘는 흥행을 기록했고, 역시 꾸준히 장르 기반 작업에 정진해 온 김민하 감독이 전작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에 이어 후속 연작 <교생실습>을 내놓았다. 연상호 감독은 <군체>로 한국형 좀비 영화 계보를 꾸준히 이어간다. 그리고 여기 한 편이 추가된다.
2019년 <밤의 문이 열린다>를 통해 젊은 나이에 유령이 된 여성과 그와 소통할 수 있는 또래 여성의 사연을 그려낸 유은정 감독은 차기작으로 <그림자 아이>를 가져왔다. 사회적 맥락을 가미한 '초현실'적인 장르물로 구현된 신작은 현실과 동떨어진 말초적 감각이나 도덕적 경계를 무시한 일탈의 쾌락과 일정하게 거리를 둔다. 대신에 극장 밖 현실과 결합된 슬픔과 한의 정서를 펼친다.
현대판 동화로 출발하는 고딕 판타지
▲<그림자 아이>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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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아이>는 감독이 시나리오 집필 과정에서 창작한 동화에서 기본 골격을 가져오는바, 동화의 틀 안에서 사실상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 역할을 도맡는다. 실제로 책이 출간된다면 한 번 영화와 별개로 보고 싶을 만큼 신규 창작이라기엔 꽤 매력적인 이야기다.
수안은 언니 수련과 함께 밤마다 잠들기 전에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그림자와 두 아이'란 그림 동화를 탐독하곤 했었다. 석연찮은 내용과 비밀스런 전력 탓에 관객 또한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우리가 사는 땅 아래에는 다른 세계가 하나 있어.
거긴 눈을 감은 것처럼 아주 깜깜한 곳이야.
아무도 몰랐지만 그곳에 그림자 하나가 있었대.
혼자인 그림자는 외로웠지.
그러다 밝고 따뜻한 땅 위에서 즐겁게 노는 두 아이를 본 거야.
책을 보면 외로운 그림자는 아이들을 찾아와 요구한다. "너희는 몸이 두 개니까 하나를 줘" 그리고 3년 전 비극이 터졌다. 엄마는 뭔가를 더 아는 듯하지만, 이젠 외동딸이 된 수안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그러나 죽은 언니를 꼭 닮은 재인을 발견하고 자석에 끌리듯 가까워지자 조금씩 석연찮은 일이 주변에 일어난다. 진실이 궁금한 수안은 비극이 일어난 옛집을 찾고 거기에서 기이한 현상과 마주한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고 다시 모든 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침대맡 동화가 현실의 공포로 변모하다
▲<그림자 아이>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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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세상 어딘가 나와 똑같이 생긴 존재가 있다는 가정은 기본적으로 불길함을 내포한다. 거울을 보는데 나와 같은 형상이 다른 표정을 짓는다면 누구라도 오싹 소름이 돋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싫은 도플갱어 현상이 자매에게 차례로 닥친다. 수안은 언니와 똑 닮은, 하지만 아무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재인에게 끌린다. 하지만 엄마 금옥은 재인이 하나 남은 딸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리라 믿는다. 하지만 죽은 수련의 얼굴을 한 그녀를 내칠 순 없다.
수안은 재인과 함께 옛집을 출입하면 3년 전 비밀을 파헤치거나, 어쩌면 언니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외우다시피 하는 그림책 내용은 그렇다고 쓰여 있으니까. 재인에 대한 모호한 감정은 심화하지만, 모든 게 혼란스럽기만 한 어린 소녀에게 그걸 일일이 따질 겨를은 없다. 한편 금옥은 불길한 예감과 더불어 가문이 대물림해온 어둠의 영역에 조금씩 발을 들인다. 대체 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동화와 현실의 간격은 점점 좁혀들어 간다.
수안은 막연한 기대가 있다. 그녀의 마음 속엔 그림자가 언니를 데려간 것으로 간주된다. 언니와 똑 닮은 재인을 데려가면 언니가 어둠 속 그림자 세계에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에 소녀는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13살 수안에겐 앞뒤 사정은 알 수도 없고 따질 경황도 없을 따름이다. 그러나 금옥이 마침내 깨달은 3년 전의 진실은 훨씬 더 위험하고 가공할 성격의 것이었다. 과연 몇 대에 걸쳐 물려받은 가문의 저주는 어떤 방법으로 파훼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동화 속 '그림자'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결정적 맥락으로 작용한다. 그림책 속에서 소개되는 그림자는 춥고 어두운 정지된 세계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는 존재다. 그는 밝고 따뜻한 세계를 동경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그곳에 머물 수 없기에 자신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타인의 육체다. 이는 전형적인 유령의 욕망이다. 유령은 육신이 없기에 현실에서 실재화할 수 없다고 맹목적으로 믿으며 빙의를 갈망한다. 오랜 공포 장르의 관습적 법칙이다.
수직으로 구분된 빛과 그림자의 세계
▲<그림자 아이> 스틸영화사 달리기
대개 이런 유령은 잡귀, 혹은 사악한 정령으로 타자화한다. 불가능한 욕망을 품은 타자를 배제해야 나는 물론 가까운 이들을 지킬 수 있다. 그림자는 과도한 욕망을 품고 나를 위협하는 존재다. 초자연적 능력으로 공격하는 불길한 존재를 피하거나 물리쳐야만 갈등이 해소된다. 피아식별이 명확한 셈이다. 하지만 타자에 대해 공감 능력을 발휘한다면, 뭔가 사연이 있지 않을까 돌아보게 된다. 모녀/자매의 행복을 빼앗은 위험한 존재로 치부하면 끝나는 걸까?
감독은 여기에서 그림 동화 속 실제로는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가여운 민중의 한을 은유하는 그림 형제 동화를 끌어들인다. 금옥의 집안에 대대로 전승된 그림책 이면에 감춘 진실이 개방되자 모녀는 이 악순환을 가족애로 포장해 계속 계승할지, 과감히 고리를 끊어낼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금옥과 수안, 죽은 수련이 택한 각자의 방법론을 통해 그들 각자의 결단은 한국 사회 기득권 집단이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 관해 어떤 시각을 취할지 경로로 승화한다.
창작 동화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여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대안적 우화로 몫을 소화한다. 영화를 끝까지 본다면 이해할 테다. 전반부에선 자살 유가족 심리상담을 업으로 하는 금옥이 딸을 잃은 아이러니와 더불어 현대 사회물 맥락을 취하지만,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비밀이 공개되면서부터 계급 갈등과 약자에 대한 착취 관계가 중요한 갈등의 축으로 부상한다. 마치 <여고괴담>과 <장화, 홍련>, 한국 공포영화의 우뚝 솟은 돌출된 두 봉우리를 혼합한 질감이다.
임수정이란 배우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공포와 슬픔을 함께 품은 10대 소녀의 불온한 기운에서 기성세대가 되어 취하는 선택이 남기는 뒷맛은 그녀에게서 계승하듯 펼친 두 딸의 결단과 교차하며 상념에 잠기게 한다. 여기에 박소이 & 유나라는 '아역' 꼬리표 붙이기엔 부당할 만큼 출중한 배우들 합이 제 몫을 해낸다. 할리우드 최신 유행 공포물이 아니라 고전적 한의 정서가 10대 여성들의 사회적 현실과 어우러질 때 발현하는 기이한 감각이 일정하게 조성된다.
여름방학용 공포영화 스테레오를 기대했다면, <그림자 아이>는 기대치와는 동떨어진 작품이 될 테다. 물론 조금 더 완급을 톱니바퀴처럼 조였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여고괴담>에서 이어지는 10대 소녀들의 예측 불가능성과 소외계층 대상 사회문제의 결합 실험을 그리던 이들에겐 반가운 손님이 될 만하다.
<작품정보>
그림자 아이
The Second Child
2025 한국 미스터리, 스릴러, 판타지
2026.07.01. 개봉 105분 15세 관람가
감독/각본 유은정
PD 임수정
출연 박소이, 유나 그리고 임수정
제작 영화사 달리기
공동제작 오아시스 스튜디오
배급 썬더필름
2025 30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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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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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언니 되찾기 위한 13살 소녀의 필사적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