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마, 직이뿐데이" 80년 전 대구 10월 항쟁의 기억

[극장가는 길]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연재 "극장가는 길"은 어둠이 번지는 저녁, 극장을 향해 걷는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객석과 무대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며 교차하는 숨소리, 조명기 점멸,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는 세계 변화의 순간을 길어내고 이를 기록한다. 나는 지역의 연극과 축제의 현장을 묵묵히 걷고 보면서 그 무대의 잔상과 스쳐간 감정과에 대해 적으며 동시대적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편집자말]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포스터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포스터극단 함께사는세상

'대구'라는 도시, 그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

'극단 함께사는세상'에서 지난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해방이후 최초의 민중항쟁이라 일컫는 대구 10월 항쟁의 기억을 연극무대에 올렸다. 80년 전, 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정수리까지 뜨거움이 차는 계절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소극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아마도 1946년 10월의 대구의 함성과 눈물을 이렇게 전면적으로 무대에 올린 것은 연극 <시월의 메아리>가 처음이지 않을까. 그만큼 대구라는 도시의 오래된 상처와 기억을 현재의 무대로 불러내는 작업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뜻일 것이다.

이 연극의 문제의식은 바로 '대구'라는 도시, 그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있다. 대구를 특정 정치 성향으로 규정해 온 익숙한 이미지 대신, 해방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과 복합적인 갈등, 그리고 국가폭력이 교차한 도시로 다시 보는 태도는, 이 연극을 남다른 시선에서 보게 한다. 극단 함께사는세상(함세상)이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해방 직후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져간 1946년 10월 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비극을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엮어낸 옴니버스 형식의 마당극이다.

'기억 잇기'라는 살아 있는 역사 체험의 장

<산행><할아버지의 일기장><선이와 영숙><표지석 제막식><진실의데이터><시월의 메아리>가 연이어진 이번 작품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월항쟁의 역사적 비극을 박제된 사건의 기억, 과거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을 사는 시민들의 기억과 현재의 질문들을 병치하는 구조로 각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0월 항쟁에서 촉발된 학살의 기억, 항쟁의 시작과 전개 과정,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상처가 시간과 세대를 가로질러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안정된 구조로 보여준다. 잊혀져가는 10월 항쟁을 '왜', 또 '어떻게' 오늘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인가를 이 연극은 내내 문제의식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의 정책 실패와 식량난, 좌우 이념 갈등 속에서 대구에서 촉발된 10월 항쟁이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가적 차원의 온전한 기억과 기념의 체계 안에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질문이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서 재현되는 억울한 죽음과 미완의 진실 규명 요구는 단순한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오늘의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생생한 역사의 목소리다. 그리고 무대는 '기억 잇기'라는 살아 있는 역사 체험의 장으로 전환된다.

극 도입부, <산행>에서 가창골을 향해 산길을 함께 오르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불편한 몸'의 형상화와 '오르다'의 행위는 큰 정서적 울림을 준다. 불편한 몸으로 산꼭대기까지 오르려는 노인의 고집은 한 개인의 성격 묘사를 넘어, 끝내 외면하지 않으려는 기억의 의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마, 직이뿐데이"라는 남겨진 이들의 삶에 낙인처럼 박힌 '진실의 조각들'을 하나씩 펼쳐 보이며, 항쟁과 학살의 역사, 그리고 기억을 둘러싼 논쟁을 무척 무거운 톤으로 풀어낸다.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이미지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이미지극단 함께사는세상

연극 속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인물과 장면을 통해 항쟁의 전개, 집단 학살, 남겨진 자들의 상처와 기억을 비추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집단적 서사로 수렴되도록 연결되어 있다.

<선이와 영숙>은 항쟁과 학살의 역사가 여성의 몸 위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늦은 밤, 비밀을 공유해 온 두 여성의 대화 속에서, 70대가 된 영숙은 어머니 선이가 평생 짊어져 온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성폭행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선이의 선택과 그 이후의 트라우마는, 국가폭력과 전쟁의 서사가 더 이상 '사건의 이름'이나 '희생자 숫자'로만 존재하지 않고 대신 한 여성의 침묵, 평생을 따라다닌 죄책감과 수치심, 그리고 뒤늦게야 언어를 얻는 고백의 과정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면서 당사자의 기억과 치유가 동일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 진실을 말하는 순간에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말하기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선명하게 형상화해낸다.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이미지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이미지극단 함께사는 세상

디지털 시대의 역사 학살과 기념의 형식

디지털 시대의 기억 정치까지 시야에 담고 있는 <진실의 데이터>는 시스템에 의도적으로 조작된 문건과 혐오 콘텐츠가 AI 학습망에 강제로 주입되는 과정을 통해 물리적 학살 이후에도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역사 자체를 삭제·왜곡할 수 있는 새로운 위험을 드러내고 있다.

'디지털 홀로코스트'라 부를 만한 이 상황에서, 한 줄의 문장이 강하게 남는다. "민간인 학살의 데이터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보존됩니다. 역사는 조작될 수 없습니다"라는 AI '오월'의 목소리는 오늘, 아니 내일 다시 역사 학살이 새로운 방식으로 자행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데 그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표지석 제막식>과 <시월의 메아리>는 기념과 기억의 형식을 대비해 보여주고 있다. 표지석을 세우는 행위는 한 사건을 '공식적인 기억의 좌표'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기념비가 세워졌다고 해서 기억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이후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가르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 '메아리'는, 기억이 한 번의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건너 반복해서 돌아오는 소리임을 상기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 메아리가 과거의 목소리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관객이 새로 만들어 내는 울림이라는 기념의 책임을 상기킨다.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이미지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이미지극단 함께사는세상

마당극의 연행성과 무대 이미지

마당극이라는 형식은 이번 공연에서 특히 설득력 있게 활용된다. 춤과 노래, 판소리, 인형극 등 다양한 연행적 요소가 남겨진 자들의 상처와 기억을 비추는 장면 곳곳에 배치되면서, 관객을 단순한 추모객이 아니라 극장이란 마당에 함께 둘러앉은 동시대의 한 구성원으로 끌어들인다.

여기에 장애배우와 비장애 배우가 함께 무대에 서는 구성이 더해지면서, 공연은 형식 차원에서도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극단 이름의 지향을 그대로 구현한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는 호흡은, 10월 항쟁과 학살의 기억을 다양한 몸과 정체성이 함께 짊어지는 현재형 과제로 확장시킨다.

연극 속 인물은 80년의 시간을 건너 되살아난 노인과 청년, 공개수업을 앞둔 신입 역사교사, 학생, AI 등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양한 세대, 성별, 비인간의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들 각자가 속한 시간의 언어로 10월 항쟁을 말하지만, 마당극 무대 위에서는 그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지며 지금의 '우리'라는 정체성이 크게 드러난다.

<시월의 메아리>라는 청소년문화제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10월 항쟁의 기억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학생들은 '시월의 메아리'라는 이름으로 문화제를 기획하고, 전시 구성과 표현 방식을 둘러싸고 서로 의견을 달리하며 갈등과 조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은 기념과 기억의 민주주의가 단지 결과에 있지 않고, 누가 어떤 의견을 내고, 그 의견들이 어떻게 충돌하고, 어떤 방식으로 합의에 이르는가라는 '과정'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역사적 사건을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장면은, 10월 항쟁이 '어른들의 역사'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청소년 문화 속으로 이어지면서 기억의 세대 계승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장면이기도 하다.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이미지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이미지극단 함께사는세상

관객에게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어둠에 잠긴 골짜기를 함께 밝혀 달라는 요청은 공연의 연행성을 가장 극대화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꺼져 있어야 할 핸드폰이, 이 순간에는 오히려 기억의 의례를 완성하는 도구로 전환되다. 각자의 손에 쥐어진 작은 불빛이 모여 골짜기를 비추는 이 장면은 우리는 더 이상 이 어둠을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현재형의 선언으로 연출된다.

그래서 기억이 누군가 대신 수행해 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몸으로 참여해야 하는 의례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또 경쾌한 리듬과 랩으로 '시월의 메아리' 가사가 불리는 장면은, 과거 무거운 역사적 재현극의 관습적 톤을 과감히 벗어난다는 점에서 낯설면서도 참신하게 다가왔다. 이는 청소년·청년 세대가 10월 항쟁의 역사를 '자신들의 리듬'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각 장면이 충분히 감정을 축적하기 전에 서둘러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그 심도가 얕아지는 점이 없지 않다. 또 판소리나 경쾌한 리듬의 랩과 춤, 노래 등이 뒷받침하는 극적 분위기가 다소 무대에서 산만하게 보여지기도 한다. 이런 점들이 이후에 보다 연출적으로 잘 다듬어지고 보완되면 하는 바람이다.

"상처는 일단 덮고 봉합해야 안전하다?"

<할아버지의 일기장>에서 역사교사 소라가 보건교사에게 듣는 "상처는요, 너무 오래 열어두면 덧나요. 일단 소독하고, 덮고, 봉합해야 살이 차오르죠. 그래야 안전하죠"라는 말한다. 이는 일상적인 의료 조언처럼 들리지만 관객에게는 곧바로 역사와 기억의 은유로 다가온다.

소라가 이 말을 이상하리만치 거북하게 듣는 장면은, 10월항쟁과 민간인 학살의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야 하는지 그 긴장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상처는 덮고 봉합해야 안전하다"는 논리는 국가폭력과 학살의 기억을 다루는 역사교육의 자리에서는 오히려 위험한 태도로 읽힌다. 이 장면을 통해 공연은, 상처를 덮고 봉합하는 것이 과연 사회적 '안전'을 보장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망각과 왜곡을 낳는지 되묻게 한다.

'상처는 일단 덮고 봉합해야 안전하다' 메아리 같은 말이 오늘따라 무척 답답하게 하울링이 된다.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연극을 보러 소극장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이미지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공연이미지조훈성

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 <시월의 메아리>
(2026.06.27. 소극장 함세상)

작: 박연희, 강신욱, 탁정아
연출: 박연희
출연: 손병숙, 강신욱, 박희진, 탁정아, 노윤경, 양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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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통연희, 굿, 마당극 등을 연구하고, 또 그 마당을 보러 다녔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히 걷다 보니,연극, 공연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한 심의, 자문 등의 일도 겸하고 있다. 2024년, 『묵음_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 (그래도, 2024) 등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