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 몸담아온 권진경이 지난 27일 세상을 떠났단 소식이다. 육종암 발병 2년 만이다. 한창 활동할 젊은 나이에 들려온 비보에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애통함을 표한다. 투병 소식을 알리지 않아 더욱 갑작스레 여기는 이도 적잖다.
영화계 외곽에서 꾸준히 활동해왔으나 그녀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글과 영상, 또 작은 영화 상영회를 돕는 활동가로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이 짧지 않았다. 대중의 관심이란 얼마나 어지럽고 비좁은가를 돌아본다.
나 또한 권진경의 글을 읽은 일이 꽤 된다. 나보다도 훨씬 먼저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시작한 그녀의 페이지엔 지금껏 1137건의 글이 올라와 있다. 여성주의의 틀을 통하여 작품과 영화계를 바라봐온 일련의 글들이 그 일관된 관점이며 지향을 짐작하게 한다. 여성주의가 영화계 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킨 지난 십 수 년, 권진경의 글이 일으킨 작지만 분명한 파동 또한 있었으리라 여긴다(관련 페이지:
https://www.ohmynews.com/NWS_Web/iRoom/articles/news_list.aspx?MEM_CD=00077502&GB=text&MAX_GRD=ALL&STD_KND=ALL&PAGE_NO=2&SRCH_TXT=).
고인의 명복을 빌며
▲남산(타워)스틸컷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이토록 많은 글을 세상에 내어놓은 이의 너무나 이른 마지막을 그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녀와 함께 활동한 이를 적어도 십 수 명쯤 알고 지내기에 더욱 마음이 쓰이는 것도 있을 것이다.
어떤 죽음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기엔 너무나 서글프다. 예기치 않은 이별이 아니라, 마음을 다잡고 돌아보는 작별이 되기 위하여 나는 때로 때때로 '씨네만세' 한 꼭지를 내어 누군가의 부고를 전한다. 이제껏 십 수 편, 올해만도 일곱 번째 내 나름의 부고를 쓰는 게 그래서다.
권진경은 두 편의 실험적 작품을 발표한 영화 창작자이기도 하다. 2016년 작 <1968년, 눈물의 영화>를 시작으로, 2020년엔 <남산(타워)>를 제작했다. 각 러닝타임 9분과 20분짜리 짤막한 단편으로, 서울 남산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인디다큐페스티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됐을 만큼 나름 독창적인 관점과 자세로 영화란 매체의 가능성을 모색했단 평가다.
뜻밖에 들려온 비보에 부고문 작성을 맡겠다 자청한 신은실 비평가는 고인에 대해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방법론으로 역사를 형상화하는 영화를 연출한 창작자"이자 "'모두를 위한 극장' 등에서 상영 기획자로도 활약하며 동료들의 영화를 선보인 다재다능한 활동가"라 평했다. 고인은 코로나19로 극장 및 영화계가 위기에 봉착했던 시기 1년 넘게 비어 있던 한독협 비평분과장직을 맡아 잡지 <독립영화> 발간과 '독립영화 쇼케이스' 기획 등의 사업을 이끌기도 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상을 찾은 협회의 오늘에 그 공이 또한 없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작품이나 비평보다도 생전의 모습으로 그녀를 추억하는 이를 여럿 보았다. 그와 나누었던 미소, 들었던 덕담을 하나씩 꺼내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녀가 생전 주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삶을 꾸려갔는지를 짐작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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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