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욕망과 관찰한 현실 사이에서

[리뷰] 넷플릭스 드라마 <맨 끝줄 소년>

소설가는 현실을 가공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좋은' 소설가는 현실을 조작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끝까지 읽어낼 뿐이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자연이다. 안개 속 해돋이를 화폭에 담은 클로드 모네의 그림은 예술이다. 예술은 자연을 그대로 복사하는 일이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조작'은 현실을 개인의 욕망에 맞게 비틀어버리지만, '가공'은 현실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새로운 형식으로 드러낸다. 그렇기에 문학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간을 발견하는 예술이다. 언뜻 남루해 보이는 우리의 일상도 작가의 깊은 시선이 닿으면 고유한 의미를 얻게 마련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맨 끝줄 소년>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맨 끝줄 소년> 포스터.넷플릭스

이러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 작품이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맨 끝줄 소년>이다. 문학 교수인 허문오(최민식 분)는 20년 전 소설 한 편을 남긴 후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는 학생들의 과제를 검토하던 중 눈에 띄는 글을 발견하고 한껏 고무된다. 강의실에서도 줄곧 눈여겨보았던 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이강(최현욱 분)의 글이었다. 허 교수는 이강을 자택으로 불러들여 개인 지도를 시작한다. 이강은 계획적으로 친구의 집에 들어가 그 가정을 관찰한 내용을 소설로 써서 과제로 제출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허 교수에게 김수훈(허준호 분)이라는 소설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잘나가던 김수훈은 허 교수의 추천사 부탁을 외면하며 그에게 깊은 모욕감과 상처를 남겼다. 이강이 잠입 취재를 위해 찾아간 친구의 아버지가 다름 아닌 김수훈이라는 것을 알게 된 허 교수는, 이때부터 이강의 창작을 더욱 적극적으로 부추기기 시작한다.

여기서 허 교수는 현실을 자신의 욕망대로 '조작'하려는 작가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는 소설의 소재가 모름지기 특별해야 한다며 일상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폄하한다. 그리고 점점 더 자극적인 전개를 요구한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설정까지 강요하며, 소설을 어느새 개인적인 '복수의 도구'로 변질시킨다. 급기야 김수훈을 범죄자로 만드는 설정까지 요구하는데, 이는 과거의 모욕을 문학으로 되갚으려는 뒤틀린 욕망이었다.

반면에 이강은 현실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그 관찰 자체를 글로 옮긴다. 이강은 허 교수와의 협업 과정을 통해 그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뒤틀린 문학 윤리를 가졌는지 간파한다. 그리고 허 교수 스스로 파멸하도록 유도한다. 이강은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허 교수의 욕망이 끝까지 자신을 이끌도록 내버려 두었을 뿐이다. 결국 허 교수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무너진다.

그렇다면 이강이라는 학생은 왜 그토록 타인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재구성했을까. 그 배경에는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겪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작품은 사실과 허구를 끊임없이 교차시키기에, 그 기억마저 확정된 진실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드라마 안에서 팩트와 픽션은 늘 모호하게 혼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강의 글로 인해 허 교수가 완벽한 파멸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허 교수는 소설이라는 무기를 사용해 동료 작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했지만, 이는 인간으로서도, 작가로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부적절한 행위였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탁월한 시선,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로 쓰여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문학은 예술로 승화된다. 이강이 앉았던 강의실 '맨 끝줄'은 교단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강의실 전체를 가장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자리다. 이는 작가가 특정한 욕망이나 대상에만 매몰되기보다, 인간 삶 전체를 조망하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은유로 읽힌다.

고전소설을 떠올려 본다. 지금까지 끝내 살아남는 고전들은 당시의 현실을 욕망대로 조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본질을 끝까지 읽어낸 진짜 현실에서 태어났다. <맨 끝줄 소년> 역시 우리에게 그 오래된 진실을 집요하게 되묻는다. 이 드라마는 소설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써야 하는가'보다 먼저 '어떻게 현실을 바라볼 것인가'를 매섭게 질문하는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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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일상에서 경험한 것을 글로써 소통하고 싶습니다. 글이 행복한 삶의 마중물임을 믿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