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24일(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3차전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명보호가 꺼내든 3-4-3(혹은 3-4-2-1) 포메이션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스리백은 현대 축구에서 충분히 검증된 전술적 선택지다. 홍명보호 역시 대회 직전 평가전에서 이기혁을 왼쪽 스토퍼로 세워 빌드업의 출발점으로 삼고, 윙백의 활동량으로 측면을 살리는 그림을 실험한 바 있다.
그러나 본선 무대에서 한국의 스리백은 장점을 전혀 구현하지 못했다. 후방 숫자는 늘었지만 전진 패스의 질은 처참했다. 센터백 3명이 공을 돌리는 시간만 길어졌을 뿐, 상대 1차 압박을 뚫고 중원으로 진입하는 패스는 턱없이 부족했다. 빌드업의 축이 되어야 할 이기혁은 잦은 패스 미스로 불안을 노출했고, 황인범과 백승호는 상대 압박 앞에 고스란히 갇혔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전방과 중원의 단절이었다. 윙백은 오르내리는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전방 3명은 상대 수비진 사이에 고립됐다. 공을 측면으로 빼내는 데까지는 성공해도 그다음 장면이 없었다. 박스 안 숫자는 부족했고, 의미 없이 'U자형'으로 공만 돌리다 빼앗기는 흐름이 반복됐다.
징후는 멕시코전부터 뚜렷했다. 자주 전진하는 멕시코 왼쪽 배후를 노리겠다는 구상으로 출발했지만, 상대가 촘촘하게 수비 블록을 형성하자 이렇다 할 공격 기회조차 만들지 못했다. 전반 기대득점은 0.06에 불과했다.
후반 5분 선제골을 헌납한 직후에는 손흥민과 이재성을 빼는 체코전의 교체를 기계적으로 되풀이했다. 밀집 수비를 뚫어야 할 시점에 가장 위협적인 카드를 스스로 거둬들이며 반등의 동력마저 꺼뜨렸다.
반드시 결과가 필요했던 남아공전은 이 문제의 결정체였다. 비기기만 해도 조 2위가 가능했지만, 홍 감독은 손흥민 선발 제외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재성마저 빼고 오현규와 황희찬을 투입했지만 변화는 거기서 멈췄다.
후반 실점 이후 한국의 빈공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하프타임에 들어온 손흥민도, 뒤늦게 투입된 조규성도 전술적 반전을 이끌지 못했다. 오히려 세컨드볼 회수나 유기적인 움직임 없이 조규성의 머리만 노리는 단조로운 롱볼 축구로 회귀했다. 치밀한 플랜B라기보다는, 다급해진 플랜A의 기계적 반복에 가까웠다.
배후 공간을 타격할 선수와 전방·중원을 잇는 윤활유가 사라지자, 한국의 공격은 이강인 한 명에게 기형적으로 쏠렸다. 이강인은 우측에서 출발해 중앙과 후방까지 내려와 빌드업을 떠맡아야 했다. 그가 고립된 채 홀로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수차례 반복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박지성 해설위원의 지적처럼, 이강인이 공을 잡았을 때 주변 동료들이 미리 움직여 공간을 만들지 못했고, 한국의 공격은 끝내 개인의 판단에 의존하는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유일한 승리였던 체코전 2-1 역전승 역시 와일드카드 경쟁을 버틸 동력이 되지 못했다. 오현규라는 조커의 '한 방'으로 끝낸 이 승리는, 역설적으로 대표팀이 전술적 구조보다 개인의 번뜩임에 기대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홍명보 감독은 대회 직후 "왜 이런 경기력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참사의 본질은 단 하나, 사령탑의 무색무취한 전술이었다.
철학을 버린 한국, 뚝심을 지킨 일본과 실리의 호주
한국의 실패가 더 쓰라린 이유는 일본과 호주가 정반대의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은 대회 전부터 만신창이에 가까웠다. 미토마와 미나미노가 최종 명단에서 빠졌고, 주장 엔도마저 이탈했다. 설상가상으로 에이스 구보 다케후사마저 네덜란드전 부상으로 조별리그 잔여 경기를 통째로 날렸다.
그럼에도 일본의 축구는 흔들리지 않았다. 방향성은 튀니지전 4-0 대승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핵심은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시스템이었다. 네덜란드전 중앙 미드필더였던 가마다 다이치를 섀도 스트라이커로 전진 배치한 용병술은 4분 만에 득점이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누가 들어가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뚝심이 증명된 셈이다.
스웨덴전에서도 일본은 강력한 스리톱을 상대로 무리하게 1위 욕심을 내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1-1 무승부를 지키며 토너먼트를 대비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호주의 축구는 투박했지만, 자신들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실리를 챙겼다. 주축 선수들이 줄부상으로 빠진 최종전에서 토니 포포비치 감독은 선발 6명을 바꾸는 강수를 두면서도 파라과이와 0-0으로 비기며 조 2위를 사수했다. 볼 점유율에 집착하는 대신 버릴 것과 취할 것을 철저히 구분하는 '실리 축구'로 2회 연속 토너먼트행 티켓을 따낸 것이다.
한국이 놓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득점이 간절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위험을 감수할지 결단하지 못했다. 점유율은 높았지만 정작 위협적인 장면은 상대가 더 많이 만들어냈다. 호주의 실리는 투박해도 목적이 뚜렷했던 반면, 한국의 점유는 그럴듯해 보였으나 실속이 없었다.
'황금세대'의 허상, 피할 수 없는 책임의 시간
한국 축구는 오래전부터 '황금세대'라는 수식어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선수의 이름값은 출발점일 뿐이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낼 원칙, 역할 분담, 세부 전술이 없다면 개인의 화려함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이번 월드컵의 실패를 운이 없었다거나 선수 개인의 부진으로 치부한다면, 한국 축구는 또다시 같은 참사를 반복할 것이다. 좋은 선수는 충분했다. 정작 한국 축구에 없는 것은 그들을 묶어낼 '좋은 팀'과 이를 뒷받침할 '책임 있는 행정'이었다.
이 실패의 뿌리에는 13년간 한국 축구를 좌지우지한 협회 수뇌부가 있다. 정몽규 회장은 클린스만 선임과 경질, 기습 사면 촌극, 홍명보 감독 불공정 선임 논란으로 끊임없이 비판받아 왔다. 문체부 특정감사에서는 27건의 위법·부당 처리가 적발되며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요구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가 택한 출구는, 월드컵 개막을 불과 2주 앞둔 시점의 '대회 후 사퇴' 선언이었다. 공이 굴러가기도 전에 떠날 날짜부터 못 박아 책임의 한복판에서 한발 비켜선 셈이다. 스스로는 '마지막 소임'이라 포장했지만, 이는 쇄신이 아니라 정치적 도피처 확보에 불과했다.
엄청난 대진운을 안고도 마주한 월드컵에서의 참담한 탈락. 그리고 모든 것을 헝클어 놓고 가장 먼저 퇴로를 챙긴 최고 결정권자. 북중미 무대에서 확인한 이 뼈아픈 민낯을 철저히 파헤치고 밑바닥부터 쇄신하지 않는다면, 4년 뒤 월드컵에서도 한국 축구를 위한 자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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