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되기 전 자살한 정신과 의사 이야기

[안지훈의 연극 읽기]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

'댄포스'라는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그는 정신과 의사이기 이전에 정신질환 당사자였다. 아홉 살 무렵의 댄포스는 다음과 같은 일기를 남겼다.

"옆집에서 날카로운 쇠톱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은 귀를 막았지만 난 이상하게 맘이 편해졌다. 웃음도 났다. 갑옷 입은 사람의 팔다리를 자르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비이성적 충동을 인지한 그는 언젠가 자신이 살인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그는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기 전, 자살하며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댄포스가 옳았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18일 관람한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에는 정작 댄포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프로파일러 '조너스 보튼'과 살인 용의자 '존 조우', 단 2명이다. 연극은 조너스 보튼이 존 조우의 살인을 분석하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둘의 대화가 지속될수록 미심쩍은 부분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둘의 대화를 미심쩍게 만드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 '댄포스'와 'M'이다. 조너스 보튼은 존 조우와의 만남에 앞서 댄포스가 남긴 일기를 들춰본다. M은 수사 당국이 추적 중인 연쇄 살인마인데, 범행 이후 피해자의 몸에 'M'이라는 글자를 새기며 흔적을 남겼다. 존 조우는 범행 이후 'M'이라는 흔적을 남기고 체포되어 연쇄 살인마로 추정되고 있지만, 연극이 거듭될수록 존 조우가 M이 아니라는 증거들이 등장하며 사건은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 공연 사진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 공연 사진트위스트1971 공연제작소

'코미디의 대가' 장진, 이번엔 심리 스릴러다

연극은 겉잡을 수 없이 치고 나간다. 상황이 차곡차곡 쌓이지만, 곧 무너져버린다. 무너진 잔해 위에 다시 사건이 올려지고, 상황이 재구성된다. 무너지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다 보면 관객의 머릿속은 복잡해지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러 모든 것이 선명해지면 이내 소름이 돋는다.

장진 감독이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툰 사람들> <불란서 금고> 등 치밀한 상황 설계를 바탕으로 한 코미디를 선보이며 '한국 코미디의 대가'라는 별명을 얻은 장진 감독이 이번에는 심리 스릴러를 선보인 것. 코미디에서 돋보인 장진 스타일의 상황 설계는 심리 스릴러에서도 빛을 발했다.

장진 감독의 심리 스릴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6년, 열여덟 살 소년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얼음>을 통해 심리극을 선보인 바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2인극이었고, 지금도 그때처럼 서늘한 미장센을 구현한다.

<댄포스가 옳았다>는 중년의 장진 감독이 내놓은 신작이지만, 그는 아주 어린 시절 일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훗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친구를 위해 큰 현상금이 걸린 흉악범이 되겠다고 말한 장진 감독 자신이, 이 연극을 구상하는 시발점이 됐다. 이 말은 연극을 보고 나오는 순간에야 비로소 이해된다.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 공연 사진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 공연 사진트위스트1971 공연제작소

악의 근원을 향한 이 연극의 도발

<댄포스가 옳았다>가 100분을 달린 끝에 지목하는 건 연쇄 살인마 M의 정체나 범죄의 진상에 그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이 연극이 가리키는 건 악의 근원, 더 구체적으로는 악에 취약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누군가는 다른 사람보다 악을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다.

조너스 보튼이 그토록 살피고 읽었던 댄포스처럼 말이다. 댄포스에게는 다른 누구보다 악을 선택하기 쉬운 정신적 결함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눈여겨볼 점은 댄포스는 악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악에 취약한 사람 중에는 악인 줄 모르고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알고도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 정신적 결함, 비이성적 충동만이 아니라 악에 노출되기 쉬운 사회·경제적 요인도 짚는다.

댄포스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선택을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도 많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댄포스가 옳았다"는 말은 악에 취약한 사람이 스스로를 내던지는 것을 옹호하고 장려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극은 "댄포스가 옳았다"는 말을 마냥 긍정하진 않는 듯하다.

댄포스의 선택도 물론 그럴 듯하지만, 댄포스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취약한 사람을 더 보듬어주는 세상이라면, 언젠가 "이제는 댄포스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필자에게 이런 고민을 안겨주었던 <댄포스가 옳았다>는 오는 8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 공연 사진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 공연 사진트위스트1971 공연제작소
공연 연극 댄포스가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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