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섬의 핵실험 소문,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

[김성호의 씨네만세 1381] <퍼시픽션>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태어난 지 어언 130여 년이 됐다. 그동안 영화는 예술을 넘어 대중문화의 굵직한 기둥으로 자리매김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그 긴 시간 동안 제작된 수많은 영화 속에서 장르와 기법, 구조며 형식이 태어났다. 때로는 현실과 거리 있는 이질적이고 새로운 무엇으로, 또 때로는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실감나는 이야기로 다가서기 위하여 영화 창작자들은 관객에게 통할만한 더 효과적이고 파괴적인 기법을 강구해왔다.

영화사 가운데 매체의 가능성을 비약케 한 탁월한 감독이 여럿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과 오손 웰스, 장 뤽 고다르, 구로사와 아키라, 스탠리 큐브릭, 스티븐 스필버그 등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영화예술의 새로운 장을 관객 앞에 열어젖혔다. 전에 없던 기술적 비약은 물론이고, 촬영과 서사에서 새로움을 구하는 발상과 도전들이 영화란 예술이 뛰놀 터전을 몰라보게 넓혀주었다. 오늘에 이르러 앞의 감독들이 이뤄낸 성취 위에 기대 있지 않은 창작자는 단 하나도 없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다음을 구하는 것은 영화 또한 다른 어느 예술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2026년 오늘의 영화예술이 지난 시대 선배들의 작업 앞에 당당하다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전에 비할 바 없이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기술과 법제도, 문화적 여건 등 창작환경 또한 나아진 오늘에 이르러 과연 과거의 걸작과 견줄 만한 작품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가를 돌아본다. 자신할 수 없는 것은 오늘의 영화예술이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새로움을 구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자각 때문이다. 특히 구조와 형식에 있어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는 작가를 세상은 얼마 발굴해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퍼시픽션 스틸컷
퍼시픽션스틸컷필름다빈

영화예술의 최전선에 선 알베르 세라의 문제작

이유야 여러 가지겠다. 무엇보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데 상당한 돈이 든다는 것, 그리하여 작가가 저 혼자만의 도전정신으로 불확실한 시도를 감행하기 쉽지 않다는 게 우선되는 이유일 테다. 미술과 문학과 달리, 영화는 시장성이 담보되지 않는 작품을 만드는 데 제약이 따른다. 대중에게 외면 받는 작품은 당장 영화를 만드는 데 들어간 투자금조차 회수할 수 없도록 한다. 자연히 다음 투자 또한 받아내기 어렵다. 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감독을 찾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확실한 미래는 창작자를 움츠리게 한다. 검증된 방식, 통하는 소재에 골몰하는 작가가 더 나은 기회를 얻는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가 나오지만 이야기만 조금씩 다를 뿐 구조와 형식, 승부의 지점들이 대동소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의 지평을 확장하는 도전적 작가를 양성하기 위해 지원금까지 걸고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를 지원하는 일이 흔하지만 갈수록 작품은 비슷해지고 수준급 작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알베르 세라는 이 시대 영화예술의 최전선에 자리한 거장이다. 스페인 영화를 논할 때 페드로 알모도바르, 빅토르 에리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와 함께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로, 2010년대 들어 세계적 영화제서 제 작품의 가치를 확고히 인정받았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황금표범상 수상작 <내 죽음의 이야기>,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 <리베르떼> 같은 작품이 그 대표작이다. 한국에 곧 선보이는 <퍼시픽션>은 세계적 거장으로 거듭난 알베르 세라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입성한 기념비적 영화로, 그 특유의 영화세계가 유감없이 버무려진 보기 드문 작품이다.

퍼시픽션 스틸컷
퍼시픽션스틸컷필름다빈

지상낙원에서 핵실험을? 흉흉한 소문

배경은 태평양 한 가운데 위치한 타히티 섬이다. 저 유명한 폴 고갱이 말년을 보내며 유명한 그림 여러 점을 남긴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섬으로, 과거 제국주의 국가로 전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두었던 프랑스의 몇 안 되는 해외영토로 남아 있는 땅이다. 자연히 원주민들도 프랑스어를 얼마쯤 쓰고, 자치권도 프랑스 정부가 용인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뤄지는 상황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지상낙원이란 말까지 나오는 타히티지만 프랑스 식민지란 현실은 외면할 수 없는 비극의 씨앗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핵실험이다.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인 프랑스가 핵실험을 진행한 곳이 바로 타히티 인근 환초지대였고, 핵무기가 소형화되며 새로이 실험 필요성이 대두될 때마다 이곳에서 핵실험이 재개될 것이란 우려가 잇따랐던 것이다. <퍼시픽션>이 터 잡고 있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드 롤레(브누와 마지멜 분)는 프랑스 정부가 파견한 타히티섬 판무관이다. 판무관이란 식민령에 파견되는 고위 외교 책임자로, 본국을 대리해 타히티에서의 정무를 처리하는 직책이다. 영화는 드 롤레가 타히티 곳곳을 나다니며 현지 원주민들을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원주민들은 여느 때처럼 드 롤레를 환대하지만 어느 순간 프랑스가 섬에서 핵실험을 재개할 거란 소문이 나돌며 분위기가 흉흉해지기 시작한다. 주민 대표단이 드 롤레를 찾아와 진상을 묻고 절대로 핵실험이 재개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하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바다.

퍼시픽션 스틸컷
퍼시픽션스틸컷필름다빈

별다를 것 없는 서사, 익숙하지 않은 연출

물론 드 롤레는 소문이 근거 없는 풍문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저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란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프랑스가 타히티어를 금지했을 때도, 타히티 문화를 탄압하고 식민정책을 가속화했을 때도, 지난 핵실험까지도 원주민들과 논의하고 동의를 구한 일은 없지 않았는가. 영화는 드 롤레와 원주민들 사이의 기묘한 관계, 대놓고 적대하지 못하지만 좀처럼 섞여들지 못하는 그 상황을 인상 깊게 비춘다.

통상의 영화라면 프랑스의 핵실험과 그를 막아내려는 투쟁을 전면에 내세울 게 분명하다. 그 편이 더 극적이고 관객 또한 흥미를 가질 만한 지점이니까. 그러나 알베르 세라의 선택은 다르다. 그는 아직 풍문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심지어 그 근거조차 전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드 롤레가 섬 곳곳을 오가며 마주하는 상황을 비춘다. 타히티 전통 공연을 지켜보고, 바다에 나가 큰 파도 앞에 제트스키를 타는 등의 모습이 이어진다. 여느 공무원의 외유성 출장 같이 여겨질 그런 장면들로부터 대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인가.

알베르 세라의 진면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는 그 새로울 것 없는 장면들을 비범하게 비춘다. 기이하다 해도 좋을 사운드 활용과 낯설기 짝이 없는 촬영이 어우러져 무대 뒤 배우에게서, 또 닥쳐오는 커다란 파도 앞에서 관객은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더없이 아름다운 타히티섬을 배경으로, 어느 모로 보아도 선하고 평화로운 인상의 원주민들 가운데 이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단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비범함을 이루는 것이 바로 알베르 세라의 연출이다. 이 연출로부터 그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특출한 연출로써 이뤄낸 기이함은 관객에게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가. 바로 여기에 <퍼시픽션>의 승부수가 있다.

퍼시픽션 포스터
퍼시픽션포스터필름다빈

난해하고 지루한 영화가 갖는 미덕

영화의 제목인 '퍼시픽션'은 어떤 의미인가. 태평양을 뜻하는 'Pacific'과 창작물을 뜻하는 'fiction'의 결합으로서도 말이 된다. 그러나 한 걸음 나아가 'Pacification'을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고작 'a' 하나를 가운데 더하는 것만으로, '태평양'에서의 '이야기'는 강대국이 은근한 힘으로 작은 섬을 억눌러 제 의지를 관철하는 일이 되고 만다. 흔히 '평정' 쯤으로 풀이될 'Pacification'보다 이 영화와 더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영화 내내 원주민의 땅에서, 원주민들 가운데 소수자로 존재하는 프랑스 백인 드 롤레다. 그러나 그에게선 타히티를 대하는 프랑스의 고압적 자세가, 겉으로만 신사적인 척 하며 힘으로 억눌러서 제 이해를 관철하려는 위력이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타히티에서의 핵실험을 시위를 조직해 막아서겠다는 원주민 대표들의 시도가 과연 유효할 수 있을까. 그 현격한 힘의 격차를 민주적 시위와 같은 방식으로 돌파하기란 쉽지 않단 걸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테다. 그래서 이 영화는 태평양 어느 곳에서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위력으로 굴복시켜 제 이해를 관철하는, 평화를 가장한 평정을 내보인다. 알베르 세라가 <퍼시픽션>을 통해 보여주려 하는 건 그저 드 롤레가 타히티에서 보낸 며칠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정의 감각일 터다.

<퍼시픽션>은 그저 프랑스와 타히티 간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는 현격한 힘의 격차로 상대를 굴복시켜 제 이해를 관철하는, 평화와 절차를 가장한 권력의 작동을 수시로 목격한다. 한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이와 같은 광경이 얼마든지 있다. 저기 지방에 발전소를 세우고 도시가 쓸 전기를 고압 송전탑을 통해 가져오며 우리는 대체 얼마나 많은 작은 목소리를 무시하고 짓밟았던가.

도시가 배출하는 쓰레기를 또 도시 밖으로 내보내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저항을 아무렇지 않게 외면하였는가. 도시가 쓸 전기를 위해 핵발전소를 짓고 그에 따른 방사능폐기물처리장 부지를 외딴 곳에 짓기로 하고서 그 지역 주민들에게 어떻게 동의를 얻어내었는가. 그 모두가 법과 절차, 협상에 따른 적법한 행정이었다고 우리는 얼마나 쉽게 이야기하곤 하는가.

그래서 이 영화 <퍼시픽션>은 그저 태평양 어느 섬의 이야기, 또 드 롤레와 원주민들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확장한다. 힘과 권력이 저보다 못한 이를 굴복시켜 제 뜻을 관철하는 모든 곳에서 닮은꼴을 찾을 수 있다. 알베르 세라가 구현한 평정의 감각이 우리 가까운 곳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되는 이유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퍼시픽션 필름다빈 알베르세라 브누와마지멜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