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 2026 FIFA 월드컵 - H조 - 카보베르데 대 사우디아라비아 -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휴스턴 스타디움 - 2026년 6월 26일. 카보베르데의 선수들이 경기 후 월드컵 32강 진출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 로이터
대서양을 헤엄친 '푸른 상어'가 H조에서 끝내 살아남았다.
카보베르데는 지난 27일 오전 9시(아래 한국시간) 휴스턴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26 FIFA 월드컵 H조 3차전에서 0-0으로 비겼다. 같은 시각 스페인이 우루과이를 1-0으로 꺾으면서, 카보베르데는 3무를 기록하고도 H조 2위로 32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경기 내내 사우디를 압도한 카보베르데, 무승부가 아쉬웠다
카보베르데는 4-1-4-1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보지냐 골키퍼가 골문을 지켰고, 후방에서는 주앙 파울루, 디네이 보르지스, 피코 로페스, 바그너 피나가 수비진을 구성했다. 중원에는 윌리 세메두, 자미루 몬테이루, 케빈 피나, 데로이 두아르트, 라이언 멘데스가 배치됐으며, 최전방에는 다일론 리브라멘투가 출격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모하메드 알오와이스가 골키퍼 장갑을 꼈다. 후방에는 나와프 부샬, 알암리, 알탐박티, 사우드 압둘하미드가 섰다. 중원은 살렘 알다우사리, 나세르 알다우사리, 알카이바리, 술탄 만다시가 책임졌고, 칸노와 알브리칸이 최전방에 포진했다.
전반 초반, 사우디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기였음에도 흐름을 쉽게 가져오지 못했다. 전반 18분 살렘 알다우사리의 슈팅은 바그너 피나의 블록에 막혔고, 전반 29분에는 핵심 수비수 알탐박티가 부상으로 쓰러져 알리 라자미가 대신 투입되는 악재까지 겹쳤다.
사우디가 흔들리는 틈을 타 카보베르데는 전반 30분을 전후로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전반 42분에는 윌리 세메두가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시도한 과감한 발리 슈팅이 골대 옆으로 빗나갔다. 결정적인 찬스는 사우디 쪽에서 먼저 나오긴 했다. 전반 추가시간 칸노의 헤더가 보지냐 골키퍼에게 가로막혔는데, 이는 전반전 양 팀을 통틀어 나온 유일한 유효슈팅이었다.
후반 들어 카보베르데의 기세는 더욱 매서워졌다. 후반 3분 데로이 두아르트의 크로스에 이은 몬테이루의 슈팅이 골키퍼에게 막혔고, 1분 뒤에는 케빈 피나의 중거리 슈팅이 골대를 살짝 벗어났다.
후반 내내 카보베르데는 경기장을 넓게 쓰며 경기의 흐름을 지배했다. 반면 사우디는 거듭 소유권을 내주고 뒷공간을 허용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후반 29분, 카보베르데가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다. 후방에서 디네이가 한 번에 넘겨준 공을 누누 다코스타가 라로스 두아르트에게 찔러넣었다. 1대1 찬스를 맞은 두아르트가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했으나 알오와이스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카보베르데의 맹공은 계속됐다. 후반 39분 알오와이스 골키퍼가 크로스를 놓친 틈을 타 케빈 피나가 슈팅을 날렸지만 골대를 빗나갔다. 후반 41분에는 두아르트의 크로스에 이은 바그너 피나의 슈팅이 알암리의 육탄 방어에 막혔고, 호드리게스가 세컨드 볼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슈팅으로 잇지는 못했다.
사우디는 후반 추가시간에야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후반 47분 알샤마트의 패스를 받은 알함단이 알부라이칸과 원투패스를 주고받으며 박스 안쪽까지 진입해 슈팅을 시도했으나, 보지냐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오히려 카보베르데가 극장골 기회를 잡았다. 2대1 역습 상황에서 날카로운 스루패스를 받은 호드리게스가 골키퍼 앞에서 침착하게 코스타를 향해 컷백을 내줬으나, 마지막 슈팅이 살짝 빗나가며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경기는 0-0으로 끝났다. 카보베르데 선수들은 곧바로 휴대전화을 통해 스페인과 우루과이의 경기 결과를 확인했다. 같은 시각 스페인이 우루과이를 1-0으로 꺾으며 카보베르데의 32강 진출이 확정되자, 선수들과 관중들은 그제야 참았던 환호성을 터뜨렸다.
우연이 아니었던 카보베르데의 기적
카보베르데는 이번 대회를 통해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인구 약 52만 명, 경기도 안양시보다도 인구가 적은 작은 섬나라가 스페인, 우루과이, 사우디아라비아와 한 조에 묶였을 때만 해도 이들의 32강 진출을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그러나 카보베르데는 조별리그 세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기적 같은 32강 진출을 단순한 '행운'으로 치부할 순 없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반대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스페인과 0-0으로 비기며 대회 최대의 이변을 연출했고, 우루과이를 상대로는 2-2 난타전 끝에 귀중한 승점을 따냈다. 최종전인 사우디아라비아전은 오히려 승리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경기 내용 면에서 상대를 압도했다.
특히 사우디전은 카보베르데가 32강 무대에 오를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 경기였다. 무승부에 만족하며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후반전 내내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며, 조급해진 사우디의 균열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승리가 절실했던 쪽은 사우디였으나, 실제 승리에 더 가까웠던 팀은 카보베르데였다. 카보베르데는 이날 슈팅 15개와 기대득점(xG) 1.52를 기록하며, 슈팅 7개와 기대득점 0.40에 그친 사우디를 크게 웃돌았다.
카보베르데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명은 '푸른 상어(Tubarões Azuis)'다. 이번 대회에서 이들은 푸른 상어라는 별명을 제대로 입증했다. '무적함대' 스페인도,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도, 아르헨티나를 잡았던 복병 사우디아라비아도 끝내 이들을 침몰시키지 못했다.
카보베르데의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32강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상대는 다름 아닌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다. 객관적인 전력 차이는 뚜렷하지만, 세 번의 무패로 증명한 생존 본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할 차례다. H조의 험난한 바다를 지나온 작은 섬나라는 이제 아르헨티나라는 더 거대한 파도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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