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 재평가' 월드컵 국대 다큐, '홍명보호 홍보물'로 전락할까

[김성호의 씨네만세 1380] 쿠팡플레이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

예고된 수모다. 이 수모를 축구팬, 나아가 전 국민이 함께 감당해야 한단 게 분할 뿐이다. 48강 체제로 개편된 첫 월드컵에서 본선 토너먼트인 32강 진출조차 경우의 수를 따지고 있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한국 축구 돌아가는 상황을 꾸준히 지켜본 이 치고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국가대표팀 경기를 보지 않는다는,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서까지 야유가 터져 나오는 초유의 국가대표 축구팀 보이콧 사태까지 겪어내며 겨우 도달한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이다. 실력으로 입증하는 월드컵 현장에서 홍명보호는 철저히 제 무능과 실패를 전 세계인 앞에 확인케 하고 있다.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는 월드컵 개막에 발맞춰 공개된 국가대표 축구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화제작이었던 <국대: 로드 투 카타르>의 성공에 힘입어서 또 한 번 국가대표 축구팀의 내밀한 이야기를 제작해 방영했다. 쿠팡플레이가 독점 제작해 방영하는 6부작 다큐로, 매주 한 편씩 새 회차가 공개되고 있다. 현재까지 5부가 방영된 상태로, 내달 2일 최종회인 6부를 확인할 수 있다.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는 그 출발부터 국가대표팀이 딛고 선 불안한 토양을 상기시킨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위르겐 클린스만 호의 표류가 그 시작이다. 48강 체제로 개편되며 어느 때보다 크게 열렸던 월드컵 문을 아시아의 호랑이라 불렸던 한국 대표팀이 거의 못 들어갈 뻔했던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 스틸컷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스틸컷쿠팡플레이

안에서 새는 바가지, 월드컵에선?

'해줘 축구'라 불린 무전술부터 한국 대표팀을 얼마 돌보지 않는 불성실한 자세가 논란이 된 끝에, 여론에 밀린 대한축구협회가 100억 원에 이르는 위약금을 지불하고 그를 경질한 게 2024년이다. 이 과정에서 소위 '탁구 게이트'라 명명된 선수단 내 불화가 일반에 흘러나오고, 신임감독 선임을 비롯해 대한축구협회 전반의 불투명한 행정이 도마 위에 오르며 초유의 국대 보이콧까지 이뤄진다.

구조적으로 비민주적인 협회가 한국 축구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설득력 있는 비판은 국회가 홍명보 신임 감독을 청문회에 세운 뒤에도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박문성, 박주호 등 축구계 내부인들까지 거센 비판을 쏟아냈으나 바뀌는 건 없었다. 축구팬들이 할 수 있는 건 보이콧 뿐, 그러나 어디 월드컵과 같은 경기마저 보지 않을 수 있을까. 현 국대는 바로 이 흐름 위에서 올해 월드컵을 맞았다.

다큐는 홍명보의 등장을 시작으로 한다. 작품 시놉시스엔 '대한민국 축구 황금세대의 운명이 걸린 북중미 월드컵, 승리를 위해 국대 축구팀이 달려온 594일간의 여정'이라 적혀 있는데, 여기 적힌 594일이 작품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나타낸다. 한국 대표팀에게 허락된 시간은 594일이었는가. 아니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이후 이번 북중미 월드컵까지 한국 축구엔 1200일이 훌쩍 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다큐가 594일을 잡은 건 월드컵 홍명보호 출범 뒤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진출이 확실시된 상황을 참고한 것이다.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 스틸컷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스틸컷쿠팡플레이

클린스만 '해줘축구', 홍명보는?

작품 속 홍명보는 소방수다. 클린스만이 저지른 크나큰 실수를 바로잡고 표류한 함대를 새로 맡아 지휘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 선장이다. 국가대표팀 감독이 해야 할 역할이란 무엇일까.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을 구성하고, 전술을 짜고, 팀을 운영하는 게 하나하나 그의 책임이 된다. 작품은 국대 내부에 접근해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내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우선은 포르투갈 명문구단 스포르팅 CP 체력코치로 파올로 벤투 사단에 들기도 했던 주앙 아로소를 수석코치로 선임, 골키퍼코치와 피지컬코치, 전력분석관도 포르투갈 출신으로 구성했다. 김진규, 김동진 등 신망 있는 한국 코치진도 영입했다.

다음은 선수단이다. 손흥민, 이재성, 김민재 등 기존 주축선수에 더해 이한범, 엄지성 등 젊은 선수들을 발탁해 신구조화를 어느 정도 맞춰나간다. 전술 또한 클린스만의 4백에서 3백으로 전환한다. 선수시절에도 3백 전술에 적합하단 평을 받은 홍명보 감독이지만 감독으로서 3백을 본격 실행한 건 국가대표팀과 프로팀 모두에서 처음이다. 그가 3백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다큐는 이한범과 같이 이 체제 아래서 더 나은 역할을 부여받는, 공 잘 다룬단 평을 받는 수비수의 입을 빌려 "나라도 3백을 세웠을 것"이란 말로 변화를 반기는 모습을 내보인다.

손흥민, 황희찬, 김민재, 이재성, 황인범은 물론, 홍현석, 배준호, 오현규, 엄지성, 김지수, 양민혁 등 해외파를 점검하러 떠난 유럽 출장길도 인상적으로 담겼다. 해외무대에서 각기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국대 자원들을 홍명보는 어떤 기준으로 살필 것인가. 다큐는 홍명보가 선수들을 찾아 만나고 간단히 조언하는 모습, 또 국대에 든 고참선수들이 아직 자리를 확고히 하지 못한 선수들과 어우러지는 장면 등을 잡아낸다. 국대 또한 하나의 팀, 수장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선수단은 기존과 얼마 달라지지 않은 구성이다. 주축 선수 사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선수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얼마쯤 일어나는 건 경쟁이 미덕이 되는 프로의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 스틸컷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스틸컷쿠팡플레이

비판 없는 다큐, 반쪽짜리인 이유

월드컵 이전까지 14승 5무 4패, 대부분 한국보다 약체로 평가받는 상대와 싸웠으나 나쁘다곤 할 수 없는 성적이다. 어찌 됐든 월드컵 진출 티켓도 확보했으니 최소한의 역할을 해냈다. 안방서 열린 첫 국제대회 2025 EAFF 챔피언십에서 일본에 패해 우승컵을 내주었으나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대회 내내 보였던 형편없는 경기력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한 비판이 일었던 게 사실이다. 놀랍게도 다큐는 이를 전혀 내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풀 죽은 선수들 앞에서 "내 보기엔 우리가 훨씬 더 잘했어" 하고 격려하는 홍명보 감독의 라커룸 발언을 인상적으로 잡아낸다. 감독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다큐에 이 모습만이 담기는 건 바람직하다 보기 어렵다. 누적되고 있는 전술적 실패, 새로운 실험이랄 게 없는 선수단 구성 등 외부의 비판을 다큐가 전혀 담지 않고 있는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거센 비판을 받던 국대다. 그러나 다큐 안엔 그와 같은 비판이 없다. 심지어 비판의 지점들조차 좀체 보이지 않는다. 보이콧이며 야유가 경기를 하는 데 심적으로 힘들다는 선수들의 발언이 담겨 있을 뿐이다. 도입부서 경질된 클린스만에 대해선 비판을 내보인 다큐가 현직인 홍명보에 대해서는 전혀, 그 단서조차 보이지 않고 있단 게 아쉽다.

동행해야 하는, 또 앞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도 협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제작사 측의 이해관계가 이해는 된다. 그러나 시청자가 보고자 하는 건 더 내밀한 모습이지 내부자의 홍보가 아니지 않은가. 거듭 터져 나오는 문제, 국대가 처한 진짜 어려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다큐가 어떻게 좋은 영화일 수 있다는 말인가. 다큐의 본질이 기록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이 다큐의 자세가 아쉽다 할 밖에 없는 일이다.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 포스터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포스터쿠팡플레이

벤투호 재평가한 전작, 홍명보호 홍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는 분명하다. 우선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 국대 안의 경쟁과 훈련, 고민들을 인터뷰를 통해 포착해내고 있다는 게 그렇다. 김진규 같은 코치는 그래도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베테랑과 신인급 선수 모두가 제 상황에 대한 충실한 인터뷰를 해낸다. 다만 팀에 대해서, 또 감독에 대해 어떤 비판도 담고 있지 않을 뿐이다. 비판이 과연 팀을 흔드는 것인가. 정당한 비판은 팀을 강하게 하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일이 아니던가. 이 다큐의 자세에, 특히나 오늘 국대가 처한 예견된 부진 앞에서 더욱 진한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다.

또 한 가지. 제작사인 '쿠팡'의 달라진 입지를 또한 고려할 밖에 없다. 4년 전만 해도 고착화되어 있던 스포츠 중계 분야에 새 바람을 일으킨 신생 매체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쿠팡플레이다. 야심차게 OTT서비스에 진출한 쿠팡은 한국 프로축구 K리그 중계로 시작해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 F1, NBA 등 스포츠를 바탕으로 발 빠르게 업계에서의 영향력을 키워오고 있던 터였다. 지상파 방송국 중심으로 짜이던 스포츠 중계가 오늘날 다각화된 시청자들의 시청할 권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던 차에 쿠팡플레이란 매체의 합류가 공익에 기여한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그러나 오늘 쿠팡플레이가 처한 상황이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모회사인 쿠팡의 개인정보 대규모 유출사건과 그에 대한 대응, 누적돼 온 쿠팡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불매운동 흐름까지 빚어내지 않았나. 월드컵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도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가 전작 <국대: 로드 투 카타르> 만큼 화제를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테다(관련 기사: 홍명보 감독에게 이 다큐를 추천합니다).

전작이 파울루 벤투 당시 감독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베일에 싸여 있던 선수단의 진면목을 알게 하는 효과를 발했다면, 이번 작품은 논란은 모른 체 하고 감독과 선수단, 전술을 홍보하는 데 더욱 집중하는 때문이겠다. 국대의 여정을 가까이서 기록한 이와 같은 기획물이 앞으로도 거듭 나오길 바라는 축구팬임에도 이번 작품에 아쉬움을 표할 밖에 없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국대로드투노스아메리카 쿠팡플레이 홍명보 손흥민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