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걸'
워너브러더스코리아
2021~2022년에 걸쳐 출간된 그래픽노블 <슈퍼걸: 우먼 오브 투모로우>를 원작으로 한 <슈퍼걸>은 여성 슈퍼히어로를 전면에 내세운 <원더우먼>과도 확연히 다른 색깔을 지닌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마존 전사로 성장한 <원더우먼>이 평화를 지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신화적 영웅이라면, <슈퍼걸>은 모든 것을 잃고 낯선 세계에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는 이방인에 가깝다. 외로움과 상실감, 소속감의 부재,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초능력을 지닌 히어로 역시 결핍과 아픔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준다.
단순히 <슈퍼맨>의 여성 버전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인 히어로로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과정은 영화 전반에서 두드러지게 강조된다. 한때 타인의 위험과 고통에 무관심했던 카라는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잃은 루시에게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복수와 구원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품고 머나먼 여정에 나선다.
영화 <아이, 토냐>, <크루엘라> 등을 통해 개성 강한 여성 캐릭터를 능숙하게 다뤘던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카라와 루시가 서로를 위로하고 구원하는 관계를 작품의 감정적 중심축으로 삼았다. 진한 연대감과 세대를 초월한 우정은 마치 <델마와 루이스>를 스페이스 서부극으로 옮겨 놓은 듯한 흥미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매력없는 빌런...밋밋한 연출 구성 아쉬움
▲영화 '슈퍼걸'워너브러더스코리아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슈퍼걸>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의 탄생을 기대해 볼 만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발생한다. 107분 정도의 비교적 길지 않은 상영 시간의 절반 가량을 초반 '빌드업' 과정에 과도하게 할애하다 보니 막상 주인공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 클라이맥스에 도달해선 연료 부족 상태의 자동차처럼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이다.
360도 공간을 활용하는 액션 장면이 밋밋하게 그려지면서 통쾌함이 터져 나와야 할 후반부가 너무 맥없이 마무리된다. 위기를 모면하는 슈퍼걸/카라를 둘러싼 각종 설정이 일관성 없게 설계된 데다 매력 없는 빌런의 등장은 극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잔혹하고 비열한 악당으로만 그려지는 크렘은 '끝판왕' 빌런으로서의 카리스마 부족으로 인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슈퍼맨>의 숙적 렉스 루터, <배트맨>의 영원한 라이벌 조커 등을 접해왔던 입장에선 보는 내내 한숨만 나온다.
뭔가 한방을 보여줄 것처럼 기대됐던 오리지널 캐릭터 로보의 어중간한 존재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강렬했던 첫 등장과는 다르게 이도 저도 아닌 역할로 헛심만 발휘하는 인상을 남기고 퇴장한다. <슈퍼맨>에서 맹활약했던 클립토가 정작 본작에선 독극물 중독이라는 초반 설정 탓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함 많은 주인공이 여러 시련을 거치며 성장하고, 그 속에서 형성되는 여성 캐릭터들의 연대는 분명 인상적인 장점으로 손꼽을 만 하다. 하지만 이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세밀한 연출 기법의 부재는 못내 아쉬움을 남긴다.
오랜 시간 <슈퍼맨>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슈퍼걸>은 이제서야 자신의 이름을 극장 앞에 내걸 수 있었지만 관객들을 완전히 매료시킬 결정적인 한 방은 여전히 보여주지 못했다. 러닝타임 107분. 쿠키 영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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