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의 몰락... 그녀들은 왜 헐벗고 춤을 춰야 했나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훌라 걸스>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65년, 탄광은 몰락하는 중이다. 대대로 광부로 살아온 이와키 주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일터인 조반 탄광은 대규모 감원이 잇따른다. 거세게 항의하지만, 석탄 대신 석유로 중심이 옮기는 건 막을 수 없다. 회사는 관광 촉진을 부르짖지만, 주민들은 수긍할 수 없다.

마지막 희망으로 거액을 투자한 '하와이안 센터'가 곧 개장한다. 회사는 관광객을 끌기 위해 훌라 댄스팀을 모집한다. 이를 위해 유명 댄서 '히라야마'를 초빙하지만, 반응은 냉랭하다. 하지만 친구에 이끌려 얼떨결에 응모한 '기미코'는 결심을 다진다.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영화

 <훌라 걸스> 스틸
<훌라 걸스> 스틸그린나래미디어㈜

<훌라 걸스>가 돌아왔다. 영화 속 줄거리는 실제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일어난 상황이다. 현재도 영업 중인 '스파 리조트 하와이안즈' 명물인 '하와이언 훌라걸즈' 창단 실화가 곧 영화의 소재인 것. 일본의 산업 근대화를 상징하던 동북지방 광산 도시가 몰락 위기를 극복하고 공업 및 관광도시로 탈바꿈하던 전환점을 담았다.

영화가 시작될 때, 이미 불황의 그림자는 지역을 뒤덮은 상태다. 5천 명 일하던 탄광에서 갱구가 하나씩 폐쇄될 때마다 대량 해고가 뒤따른다. 더는 수익이 나지 않고 적자만 누적되니 '어쩔 수가 없다!'라고 하기엔 지역 황폐화가 너무 참담한 상황. 온 동네가 광부들의 집단 주택으로 채워질 뿐,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동네다. 대를 이어 남자는 탄광에서 일하고 여자는 아이를 낳고 남자를 수발하는 게 주민들에겐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다.

광산은 고되고 위험한 일터다. 기미코의 엄마는 남편을 사고로 잃고 혼자 남매를 키우며 석탄을 분류하는 일로 가족을 먹여 살린 굳센 여인이다. 친구 사나에 가족은 엄마가 없어 장녀가 어린 세 동생을 돌봐야 한다. 18살 동갑 기미코는 어렵사리 학교에 다니지만, 사나에는 학교 대신 가사를 책임진다. 궁핍하나마 유지되던 일상이 위기에 처했다. 남아도 답이 없고, 떠나려 해도 막막하다. 마을 전체에 음울함이 감돈다.

이런 배경을 소개하면 떠오를 작품이 있다. 대처 집권 시절, 영국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외된 잉글랜드 북부의 애환을 담은 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 피터 캐터니어의 <풀 몬티>다. 광산지대 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애환의 사실적 묘사와 함께 절망 속에서 작게나마 희망과 존엄을 회복하려는 이들의 분투란 점에서 무척 닮은꼴이다. 한국에선 강원도 태백 일대 탄광 몰락 배경의 여러 영화 역시 비교 대상이 될 만하다.

닫힌 공동체가 위기에 처할 때

 <훌라 걸스> 스틸
<훌라 걸스> 스틸그린나래미디어㈜

18살 꿈 많은 소녀 기미코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그녀가 경험한 유일한 세계가 온통 붕괴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대를 이어 광부로 일하는 엄마와 오빠 '요지로'는 듬직하지만, 앞으로 가족이 영위하던 삶이 유지될 수 없음은 누구나 안다. 다만 이웃 누구도 다른 대안은 모른다. 그런 가운데 하와이안 센터가 마지막 희망으로 떠오르지만, 5천 명 고용하던 탄광의 역할을 온전히 대신하기란 불가능하다. 센터는 어느새 욕받이로 전락한 상황이다.

댄서 모집은 센터로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비장의 카드인 데다, 부족하나마 지역 주민 고용을 위한 카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민들의 정서는 차갑기만 하다. 어차피 대다수는 해고될 운명이고, 온통 시커먼 탄가루 날리는 마을에 뭐 볼 게 있다고 멀리서 외지인들이 찾아오겠냐며, 심지어 여기가 무슨 '하와이' 흉내냐며 마을엔 회의감만 감돈다. 절망이 사람들의 마음을 집어삼키는 현장. 사람들은 술과 함께 분노와 허무가 뒤섞인 울분을 토하는 걸로 하루를 견딜 뿐.

주민들의 분노는 결코 이기적인 게 아니다. 기업과 정부는 마땅히 주민 생계를 책임질 궁리에 나서야 한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일본의 경제성장을 떠받쳐 왔다'는 자부심, '석탄은 검은 다이아몬드'라는 장담은 틀린 게 아니다. 일본 전체가 올림픽과 만국박람회로 번영에 접어들 때 오로지 이들만 소외된 채 어둠에 머무는 격이다. 상실감과 결합한 불안은 지역 전체를 병들게 한다. 그나마 한 세기 동안 유지된 지역 공동체가 간신히 고삐를 잡아준다.

하지만 단결된 공동체엔 이면이 존재한다. 강철같은 주민들의 동질성은 탄광 산업이 지속될 때 강력한 구심력으로 작동한다. 남자 광부들의 육체노동으로 유지되는 지역경제는 자연스레 남성 가부장제 공동체로 이와키 지역 사회를 규정한다. 남녀 성역할은 엄격히 구분되고, 여성은 가장의 뒷바라지 역할을 미덕으로 배운다. 생계가 해결되는 것만으로 오랜 세월 여성들은 견뎌 왔지만, 이젠 그 전제가 붕괴 직전이다. 여성들은 이제 자구책을 마련해야만 할 때다.

삶의 방식에 저항하는 여성들

 <훌라 걸스> 스틸
<훌라 걸스> 스틸그린나래미디어㈜

기미코는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기로 한다. 춤을 추는 댄서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문화와 예술을 누리며 살 기회를 경험하지 못한 마을 사람들에게 '댄서'란 헐벗고 선정적인 춤을 추는 존재다. 어른들은 펄쩍 뛰며 머리채 붙들 일이다. 센터를 책임진 회사 부장이 아무리 설득해도 씨도 먹히지 않는다. 회사에 대한 불신과 자포자기 심정이 뒤섞인 주민들의 반대는 수구적인 태도로 변해간다. 하지만 그런다고 답이 나올 리 없다.

어쩌면 주민들의 체념은 소극적 분노 배출에 가깝다. 평생 위험을 무릅쓰고 석탄을 캐왔다. 집마다 가족을 잃었고 외부에선 천시를 당했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고자 노역을 감당해 왔다. 하지만 산업 전사 칭송은 찰나뿐, 남은 건 대책 없는 해고다. 우리 광산은 천황 폐하도 다녀가신 곳이라는 나이 든 세대의 자부심은 희미한 유행가 가사보다 의미가 없다. 출구 없는 울분만 남았다. 오늘날과 달리 명목상 위로금이라도 챙기지 못하던 때다.

노동조합으로 상징되는 남성들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요지로 역시 센터 조경 책임자로 전직한 친구를 '변절자'라 매도한다. 시설 조경을 위해 공수한 야자수를 부수려 할 때 왜소한 체구의 친구가 대항하자 금방 이를 취소한다.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며 안간힘 쓰는 친구에 대항할 수 없었던 것. 힘으로 맞서선 답이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린 아들을 둔 엄마도, 홀아비 아빠의 손에 이끌린 선머슴 외동딸도 기미코와 합류한다. 춤의 기본도 모르는 후보생에 머리를 흔들던 도쿄 출신 강사는 돈 받은 기간만 채우고 뜰 궁리뿐이지만, 점점 그녀들의 절박한 사정에 공감하고 가부장제 틀에 신음하던 이곳 여성들의 처지에 분노하며 일체감을 형성한다. 수동적 역할에 머물던 여성들이 공동체의 위기에 작은 희망이라도 지피려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작은 불씨가 아른거리자 여성들이 먼저 팔을 걷는다.

지방 소멸의 시대

 <훌라 걸스> 스틸
<훌라 걸스> 스틸그린나래미디어㈜

<훌라 걸스>는 정답에 가까운 위기극복 – 휴먼 드라마다. 난관에 봉착한 평범한 이들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끈덕진 노력으로 차례로 닥치는 위기를 극복하고 희망찬 미래를 창출하는 기분 좋은 결말로 향한다. 영화는 정석적인 전개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스포츠 영화에서 '언더독' 주인공이 걷는 경로와도 통하는 지점이다. 보는 내내 안절부절 가슴 졸이게 만들지만, 그래도 결말에는 예상 가능한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있는 '왕도'적 문법에 충실하다.

하지만 실화에 바탕을 둔 드라마가 갖는 사실성과 배우들의 열연이 이런 익숙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일본을 넘어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겪어온 현재진행형 위기가 불러오는 공동체 파괴 경험이 공감대를 조성하고, 강인한 여성들의 도전이 불러오는 감동이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덕분이다. 이런 눈물샘 자극하고 온기 넘실대는 여성연대와 공동체 회복 드라마는 관객을 배신하지 않는다.

배우 아오이 유우의 팬이라면 20살 전후의 배우가 찰랑찰랑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던 순간과 재회할 기회다. 이와이 순지의 <하나와 앨리스> 후반 발레 장면이 10대 소녀의 눈부신 찰나를 가두듯 간직했다면, <훌라 걸스>의 개인 연습 장면은 주인공이 엄마(와 지역 공동체 전체)의 반대를 의지로 돌파하는 결연함을 표상하는 성장 기록으로 매혹을 더 한다. 예측 가능한 연기라도 혼신을 다하면 감동은 퇴색하지 않는다. 긍정적 신파가 영화 전반에 가득 넘친다.

그녀들의 노력이 개화하는 찬란한 공연 장면이 피날레를 장식하지만, 이와키의 미래는 이후로도 순탄하진 않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65년의 이듬해, 지자체를 대거 통합하며 공업과 관광 진흥으로 방향을 튼 지역은 훌라걸스 활약으로 온천이 명소가 되면서 위기를 극복했지만, 5천 명이 일하던 조반 탄광은 1976년 끝내 완전 폐광됐다. 90% 넘는 광부가 재고용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근방이라 또다시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영화의 정조는 해피엔딩에 가깝지만, 어두운 그림자는 감추지 않는다. 기미코에게 훌라 댄서가 되자고 권유한 친구 사나에는 정작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아빠를 따라 홋카이도 유바리 탄광으로 향한다. 당장 호구지책은 될 테지만, 1980년대에 유바리 역시 폐광과 함께 위기에 몰린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 여기 역시 관광업에 투자하지만, 이와키처럼 성공하지 못한 채 '지자체 파산'으로 이슈에 오른다. 제조업 붕괴는 대체하기 힘들다는 교훈만 남긴 채.

이젠 <훌라 걸스>와 <빌리 엘리어트>, <풀 몬티> 속 소멸하는 지역 공동체 위기가 전국적 상황으로 치닫는 중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노동이 대체될 때 제조업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고 그들의 가족과 지방 도시는 무엇으로 연명할 것인가가 사회적 화두가 되는 시점에 돌아온 영화는 예전의 밝고 낙천적인 기운에서 좀 더 음울함이 가미된 느낌이다. 그만큼 더 진한 뒷맛과 함께 돌아온 작품에서 2026년 관객은 무엇을 새롭게 채굴할지 궁금한 대목이다.

<작품정보>

훌라 걸스
フラガール
Hula Girls
2006|일본|드라마, 코미디
2026.07.01. (재)개봉|110분|12세 관람가
감독/각본 이상일
출연 아오이 유우, 마츠유키 야스코, 토요카와 에츠시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공/공동배급 ㈜로아앤코홀딩스

 <훌라 걸스> 포스터
<훌라 걸스> 포스터그린나래미디어㈜


훌라걸스 이상일감독 아오이유우 마츠유키 야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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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