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에 찾아온 불청객, 쉽게 내쫓지 못하는 진짜 이유

[리뷰]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객석의 적막을 깨고 들리는 구두 소리가 긴장감을 키운다. 객석 뒤에서부터 점차 무대 쪽으로 다가오는 '비지터'는 본격적으로 무대에 발을 딛기 전 한숨을 한번 내뱉는다. 비지터가 무대로 들어오자, 조명과 함께 액터뮤지션이 입장한다. 그들이 악기를 잡고 숨소리에 맞춰 연주를 시작한다. 또 한 번의 밤이 그렇게 시작된다.

러시아의 대숙청 시대가 배경인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내년 2월까지 NOL유니플렉스 3관에서 공연된다. 지난 2017년에 초연한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은 비지터와 맨, 우먼이라는 세 명의 주연 외에 '플레이어'로 불리는 다섯 명의 액터뮤지션의 등장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플레이어들은 기타, 퍼커션, 바이올린, 더블베이스, 피아노 등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에 나선다. 뮤지컬의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라온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무대 위에서, 혹은 무대 가장자리 밖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비지터와 맨, 우먼의 이야기를 한층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플레이어뿐 아니라 조명도 무대를 한층 다채롭게 꾸민다. 욕망을 드러내는 빨간색 조명, 창백해 보일 정도로 밝게 만들어 비현실적인 비주얼을 완성하는 백색 조명, 극의 대표적인 색인 푸른색 조명이 무대를 화려하게 꾸민다. 무대 위는 맨과 우먼의 집으로서 소파는 맨의 장소로 기능하고, 식탁은 우먼의 공간이 된다. 가정 내 이분법에 갇힌 듯 보이는 이런 구성은 비지터가 개입할수록 변한다.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공연사진 액터뮤지션은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하는 배우들을 말한다. 사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한 명의 배우가 더 있다.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공연사진액터뮤지션은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하는 배우들을 말한다. 사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한 명의 배우가 더 있다.모먼트메이커

하나의 희곡, 두 개의 이야기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은 엘친의 희곡 <시티즌 오브 헬>을 원작으로 삼는다. 이 극의 배경은 1937년 러시아 대숙청이다. 스탈린의 측근 중 한 명이었던 키로프가 암살된 사건에서 시작된 1936년부터 1938년까지의 대규모 숙청과 탄압이 이뤄진 사건을 말한다.

<미드나잇: 액터뮤지션>과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미드나잇: 앤틀러스>도 올해 10월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 두 뮤지컬은 이야기의 큰 흐름은 동일하지만, 의상과 무대 연출에서 차이가 있다. <미드나잇: 앤틀러스>는 다른 뮤지컬처럼 오케스트라가 무대 뒤에 있고, 무대에는 멀티 플레이어 두 명이 출연한다.

인물들의 의상도 다르다. 직접 기타를 메고 연갈색 정장을 입는 액터뮤지션의 비지터와 달리 앤틀러스의 비지터는 녹색 장코트를 입는다. 당연히 무대 소품도 다르다. 액터뮤지션에는 스탈린의 초상화가 붙어있지만, 앤틀러스에는 거대한 뿔이 달린 사슴의 머리 박제가 초상화를 대신한다.

이렇듯 두 버전으로 보여주는 <미드나잇>의 이야기는 체제하에서 이기적이고 위선적으로 살아온 이들의 공포를 보여준다. 맨과 우먼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평범한 부부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삶을 위해 친구와 가족을 고발한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물이다. 맨은 정말 반역자를 고발했다고 해명하지만 실상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 뿐이다.

타인을 향한 고발은 결국 스스로에게 돌아온다. 그렇게 서로를 향한 고발이 이어지고 남는 것은 불안에 갇혀 떠는 황폐한 삶 뿐이다. 자신의 집에서도 소리를 낮춰 말하고 초상화를 향한 닿을 수 없는 맹세를 한다.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에서 거짓이 한 겹씩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날 때 맨은 죽음으로 진실과 마주할 기회를 회피한다. 남은 우먼은 비지터의 인형이 되어 탬버린을 들고 종을 치며 액터뮤지션에 합류한다.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공연사진 배우 박선영이 비지터를 연기하고 있다. 비지터는 남녀 배우 모두가 캐스팅된다.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공연사진배우 박선영이 비지터를 연기하고 있다. 비지터는 남녀 배우 모두가 캐스팅된다.모먼트메이커

집에 찾아온 불쾌한 손님의 정체

<미드나잇>의 비지터는 표면상으로 엔카베데(NKVD)라고 불리는 비밀경찰을 말한다. 그러나 비지터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누군가는 무대의 모든 것을 지휘하는 절대자, 신으로 해석한다. 또 다른 이는 극 중 넘버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에 맞춰 그를 악마로 평가하기도 하고, 맨이 고발한 변호사 친구처럼 대숙청의 희생양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해석에 따라 배역 중 유일하게 젠더프리로 캐스팅이 이뤄졌다. 관객은 배우마다 다르게 풀어낸 비지터의 해석을 만나볼 수 있다.

아무것도 비지터를 가둘 수 없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연기하는 비지터는 맡는 배우마다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역할로 유명하다. 배우들은 각자의 개성을 살려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보인다. 동시에 비지터는 무대의 틀을 넘나든다. 제4의 벽을 깨고 맨과 우먼을 조롱한다.

비지터가 깨는 건 편견이나 무대와 객석의 경계만이 아니다. 맨과 우먼이 변명으로 일관할 때마다, 관객인 나에게도 비지터가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양심과 신념에 거리낄 것 없이 살아왔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나를 위해 이기적으로 굴었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창피함에 숨겨두었던 위선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나의 위선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하면서도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을 다시 보게 되는 건 극과 캐릭터가 지닌 매력 때문이다. 무대 장치가 화려하지 않아도 배우의 연기와 음악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것, 그것이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의 힘이다. 계속되는 노크 소리처럼, 여러 번 객석을 찾게 되는 이 끌림이 지난 10년을 설명한다. 맨도 우먼도, 관객도 각자의 비지터를 내쫒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ttps://blog.naver.com/burn_like_a_star에도 실립니다. 필자 블로그와 인스타그램(@a.star_see)에 취재 후기와 함께 공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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