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배달 소년이 무대 위에 세운 '오전 2시 30분'의 속뜻

[인터뷰] 자픈커넥션 1인극 〈쓰로우〉정재필 대표

"그때는 잿빛으로 그을린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15년이 지나 돌아보니, 금빛으로 빛나는 시간이었어요."

지난 19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자픈커넥션 정재필 대표가 말했다. 그가 말하는 '그때'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골을 떠나 홀로 서울에 올라왔던 시절이다. 도움을 청할 어른도, 정해진 일도, 반드시 가야 할 곳도 없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 자유는 기쁨보다 두려움과 불안에 가까웠다.

열여덟 소년의 새벽

 왼쪽 위다은 배우, 오른쪽 정재필 대표
왼쪽 위다은 배우, 오른쪽 정재필 대표정재필

열여덟의 소년은 새벽마다 신문을 배달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차가운 골목을 오르내리며 신문을 던졌다. 손에 묻어나는 신문 잉크와 기름 냄새, 층마다 다른 높이로 신문을 던져야 했던 감각, 계단과 언덕을 오르내린 뒤 찾아오는 근육통이 그의 하루를 채웠다.

그 시간은 오랫동안 그의 기억 속에 묻혀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새벽이 지나고 15년이 흐른 뒤, 그는 아내인 위다은 배우와 함께 당시의 기억을 다시 꺼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1인극 〈쓰로우〉(6월 25일~27일, 아르코꿈밭극장)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기억이 어떻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과 어른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지 질문했다. 기억은 희곡이 됐고, 희곡은 배우의 몸을 만나 무대 위의 인물 '다은'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때를 떠올리면 오래된 극장에서 본 영화 한 편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지나온 시간이지만 허구 같고, 무대 위 허구인데도 실제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그 시간은 저희 두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됐습니다."

신문과 하루, 자기 자신을 던지는 사람

 연극 <쓰로우> 공연 장면
연극 <쓰로우> 공연 장면아르코 제공

작품 제목인 '쓰로우(Throw)'는 말 그대로 '던지다'라는 뜻이다. 작품 속 다은은 매일 새벽 신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가 던지는 것은 신문만이 아니다. 자신의 하루와 시간,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마음까지 함께 던진다. 그는 다은의 행동을 대단한 도전이나 영웅적인 선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묵묵히 버티는 행위에 가깝다고 말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을 던져야 하는 순간을 만납니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멈출 수 없어서, 잘될 것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가기 위해 던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다은이 처음 던진 것은 신문이었다. 이어 하루를 던졌고, 시간을 던졌으며, 마침내 자기 자신을 세상과 무대를 향해 던졌다. 그가 관객에게 보내고 싶은 것 역시 정해진 답이나 교훈은 아니다. 그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자신을 던지고 있는가."
"무엇을 포기하지 못해 여기까지 왔는가."
"지금껏 던져온 수많은 선택과 시간이 결국 어떤 사람을 만들었는가."

작품의 중요한 배경은 오전 2시 30분이다. 새벽은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경계의 시간이다. 어둠이 남아 있지만 빛이 시작되고, 피로가 쌓여 있지만 새로운 하루의 가능성도 태어나는 시간이다. 그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새벽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온다'는 익숙한 희망의 메시지보다 새벽 그 자체에 집중했다.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새벽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바라본 것이다.

다은은 아침이 언제 올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계단과 언덕을 오른다. 전날보다 조금 더 정확하게 신문을 던지려 애쓰고, 고된 노동 속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 익살스러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면 다은은 과거의 상처와 아득한 미래 사이에 놓인 볼품없는 열여덟 살 청소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다은은 밤과 아침의 빛이 뒤섞인 새벽처럼, 폭발하기 직전의 에너지를 품은 존재다.

〈쓰로우〉는 새벽에서 출발해 낮과 밤을 지나 다시 새벽으로 돌아온다. 시간은 원을 그리지만 인물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반복되는 신문배달 속에서도 다은의 몸과 마음에는 조금씩 다른 시간이 쌓인다.

다른 배우의 몸을 만나기까지

 연극 <쓰로우> 공연 장면
연극 <쓰로우> 공연 장면아르코 제공

〈쓰로우〉는 위다은 배우가 혼자 무대를 책임지는 1인극이다. 그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몸과 목소리로 옮기는 일은 이 작업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새로운 과정이었다.

같은 단어와 장면을 두고도 연출과 배우의 해석은 달랐다. 그에게는 실제로 겪은 기억이었지만, 위다은 배우에게는 글을 통해 처음 만나는 타인의 시간이었다.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번역과 해석이 필요했다. 특히 1인극에서는 배우의 해석이 절대적이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홀로 인물이 되어 살아가고, 말하고, 침묵하며 시간을 견뎌야 한다.

위다은 배우는 지난 4년 동안 다은으로 무대에 오르며 토씨 하나와 단어 하나, 작은 장면 하나까지 거듭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생각과 움직임은 연출의 처음 의도를 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작품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이 과정을 "먼지 쌓인 상자 속에 잠들어 있던 눅눅한 일기가 관객의 숨결을 만나 살아 있는 인물이 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자픈커넥션은 연극과 무용,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적이고 동시대적인 언어로 번역해왔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는 〈쓰로우〉에서도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분리하지 않는다.

공연은 한 시간 동안 배우 한 명의 말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말이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몸의 상태와 미세한 제스처, 때로는 폭발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말 사이에 의도적으로 공백을 만들고, 예상하지 못한 침묵이 생기면 움직임이 그 여백을 채운다. 신문을 던지는 장면도 단순한 동작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와 위다은 배우는 실제로 신문을 배달했던 새벽 골목을 찾아가 던지는 연습을 반복했다.

반쯤 잠든 무거운 몸으로 계단을 오르는 감각, 손에 쥔 신문의 촉감과 냄새, 1층과 2층, 3층에 신문을 던질 때 달라지는 힘과 자세까지 몸에 익혔다. 배우는 흉내를 내는 대신 실제 행위를 반복하며 노동의 감각을 체화했다. 그래서 〈쓰로우〉의 절정에서는 말이 사라진다. 작품의 밀도가 가장 높아지는 순간, 배우는 대사 대신 움직임으로 이야기한다. 온몸으로 달리고 던진 뒤에야 작은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온다.

"던진다는 것은 말이 아니라 움직임입니다. 작품의 절정에서 말을 소거하고 움직임으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움직임의 끝에 도착한 다다른 뒤에야 비로소 작은 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을 한 사람으로 만나는 공연

 연극 <쓰로우> 공연 장면
연극 <쓰로우> 공연 장면아르코 제공

〈쓰로우〉를 바라보는 청소년과 성인의 시선은 다르다. 청소년 관객은 다은을 현재형의 인물로 받아들인다.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과 미래에 대한 불안, 지금의 현실을 견뎌야 하는 상황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낀다. 반면 성인 관객은 다은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꿈을 향해 달렸던 시절이나 생계를 위해 버텨야 했던 순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삶의 고단함을 발견한다.

청소년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떠올린다면, 성인은 이미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본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결국 관객들은 같은 질문과 마주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2025년 '청소년을 위한 공연예술축제'에서 〈쓰로우〉는 무대예술상을 받았고 위다은 배우는 연기상을 수상했다. 수상은 작품이 계속 관객을 향해 자신을 던질 수 있게 한 격려이자 새로운 책임이 됐다. 올해 아르코 '어린이청소년을위한예술지원사업'을 통해 네 번째 공연을 준비하면서 창작진은 대본을 대폭 수정했다. 다은이 신문을 배달하며 살아가는 현재의 삶뿐 아니라 그 뒤에 가려져 있던 이야기들을 보완했다. 다은이 왜 멈추지 못하고 계속 던져야 하는지, 그가 머물고 있는 새벽은 어떤 시간인지 질문을 거듭했다.

초연부터 함께한 고승우 조명디자이너는 새벽과 다은의 내면을 더욱 깊이 있게 보여주는 조명을 새로 설계했다. 공한식 작곡가는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음악과 인물의 상태를 드러내는 사운드를 포함해 극의 모든 사운드트랙을 새롭게 제작했다. 자문 신재훈 연출은 창작진이 막다른 길에 부딪힐 때마다 작품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작품의 본질, 돌아보게 하는 질문

 연극 <쓰로우> 공연 장면
연극 <쓰로우> 공연 장면아르코 제공

그는 청소년을 단순히 보호하거나 교육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청소년 역시 자신의 삶과 생각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이며, 공연은 그들과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밖 청소년의 삶을 소재로 하지만, 작품은 그들을 설명하거나 대변하려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청소년 공연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태도로 창작자의 '낮은 마음'과 메시지의 '단순함'을 꼽았다. 그가 청소년기에 우연히 만났던 연극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복잡한 구조나 뛰어난 무대 기술이 아니다. 눈앞에서 진심을 다해 연기하던 배우의 눈동자와 인간의 마음을 건드린 단순한 메시지다.

"창작자가 낮은 마음으로 청소년 관객을 만나고, 자기 안에 살고 있는 청소년을 바라보며 작품을 만든다면 반드시 닿아야 할 관객과 온전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여덟의 정재필은 자신이 던진 신문이 어디에 닿을지 알지 못했다. 그저 새벽의 계단과 언덕을 오르며 매일의 몫을 던졌다. 15년이 지나 그때의 신문은 한 편의 연극이 되었고, 한 배우의 몸을 거쳐 다시 관객에게 날아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새벽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만 〈쓰로우〉는 새벽 뒤에 아침이 온다는 사실만 말하지 않는다. 정재필 본인을 비롯해 여전히 자기만의 새벽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몸을 움직여 자신을 던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연극 <쓰로우> 공연 장면
연극 <쓰로우> 공연 장면아르코 제공

덧붙이는 글 자픈커넥션의 1인극 〈쓰로우〉는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아르코꿈밭극장에서 공연된다. 공연 시간은 60분이며 만 10세 이상 관람할 수 있다. 관람료는 전석 3만 원이다. 정재필이 작·연출을 맡고 위다은이 출연한다.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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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