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을 수행하던 몸, 인간에게 한 질문

[리뷰] 3년 만에 확장돼 돌아온 댑댄스프로젝트 〈 Hello World 〉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 '헬로월드'와 그 안에 존재하는 '헬로언트'."

무대 위에 펼쳐진 세계는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화면 속과 닮았다. 입력하면 답이 돌아오고, 요청하면 이미지와 문장이 만들어진다. 그곳에 존재하는 헬로언트는 정보를 생성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인간이 요구하는 수많은 명령을 수행한다. 묻는 대로 답하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충실한 존재다.

그러나 2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만난 댑댄스프로젝트의 〈Hello World〉(6월 20일~2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이 즉각적인 반응이 다소 불편해 보이는 것 같았다. 공연은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무엇을 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이 만든 존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되묻는다.

"헬로언트는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공연을 관통하는 이 문장은 기술에 대한 선언이라기보다 인간을 향한 경고에 가깝다. 헬로언트는 기억하고 반응하며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 인간이 어떤 언어로 명령하고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존재를 끝까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작품은 그 믿음의 간극을 몸과 영상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벌려 놓는다.

'헬로 월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용어는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할 때 화면에 띄우는 가장 첫 번째 문장이다. 새로운 언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가 세상에 건네는 첫 인사. 그러나 이 작품에서 누가 누구에게 인사를 건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인간이 디지털 세계를 향해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인공지능이 인간을 향해 처음 입을 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공연이 끝날 즈음 이 짧은 문장은 환영의 말이 아니라 인간의 자격을 묻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당신은 지금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는가."

자연을 향하던 질문이 인공지능으로 옮겨오다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 공연이 지난 2023년 이후 3년 만에 돌아왔다.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 공연이 지난 2023년 이후 3년 만에 돌아왔다.이규승

필자가 〈Hello World〉를 처음 만난 것은 2023년 1월이다.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 오른 작품에는 빨간 사과와 거대한 브로콜리, 아홉 개의 태블릿이 등장했다. 태블릿 화면에는 자연과 명화, 환경오염의 이미지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무용수들은 화면과 오브제를 옮기고 연결하며 자연과 인간, 디지털 이미지가 뒤섞인 세계를 만들었다. 인간은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끊임없이 소비했고, 실제 자연은 사라진 자리에 선명한 디지털 이미지만 남았다. 당시 작품이 던진 질문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가까웠다. 자연을 소유하고 편집하고 재현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결국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는지 묻고 있었다.

그때 공연을 본 뒤 "이것은 무용인가, 융복합 미디어 전시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무용수의 몸과 영상, 오브제와 공간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전통적인 무용의 경계를 허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강렬한 영상이 무용수의 신체를 가리는 순간도 있었다. 몸이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는 장면도 여럿 보였다. (관련 기사 : 이것은 무용인가, 융복합 미디어 전시인가 https://omn.kr/22dve )

그런데 3년 만에 돌아온 이 작품은 초연을 반복하지 않는다. '공연예술창작산실 2차 제작지원'을 통해 소극장에서 대극장으로 공간을 넓혔고, 작품의 중심도 인간과 자연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로 이동했다.

초연이 "디지털 세계에서 자연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라고 물었다면, 이번 공연은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세계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를 다룬다. 주제는 달라졌지만 두 작품의 뿌리는 다르지 않다. 자연이든 인공지능이든 인간은 자신이 아닌 존재를 쓸모와 효율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 사이 현실도 크게 변했다. 3년 전만 해도 생성형 인공지능은 일부 사람들에게 낯선 기술이었다.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은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들며 음악을 생성한다.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취향을 분석하고 감정을 흉내 내며 대화 상대를 자처한다. 작품이 시대를 따라간 것이라기보다 현실이 〈Hello World〉가 던진 질문을 따라잡은 셈이다.

가장 오래된 몸으로 가장 새로운 존재를

댑댄스프로젝트는 김호연·임정하 공동대표와 영상작가 LIMVERT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창작단체다. 무용수와 영상작가, 기획자 등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협업하며 신체 움직임을 영상, 오브제, 공간과 결합해왔다. 이들이 지속해서 던져온 질문은 "춤이란 무엇인가"다. 완성된 동작이나 숙련된 테크닉만을 춤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움직임이 춤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몸을 하나의 언어로 바라본다. 작품의 개념을 설명으로 주입하기보다 관객이 움직임 자체를 통해 감각하고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한다.

〈Hello World〉에서도 인공지능은 로봇이나 기계장치로 형상화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되고 원초적인 매체인 인간의 몸이 가장 새로운 존재인 인공지능을 대신한다. 이것은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흥미로운 역설이다. 인공지능은 몸이 없지만 무대 위에서는 몸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무용수들은 명령을 기다리고 입력된 값을 수행하는 존재처럼 움직인다. 한 사람의 동작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복제된 움직임은 다시 또 다른 몸으로 이어진다. 입력과 출력, 명령과 수행, 복제와 반복의 구조가 몸과 몸 사이에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정교한 시스템처럼 보인다. 각자의 몸은 하나의 장치가 되고 여러 몸은 연결된 네트워크를 이룬다. 한 사람이 멈추면 다른 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하나의 움직임이 끝나기 전에 다음 동작이 이어진다. 개별적인 인간은 사라지고 기능만 남은 듯하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컴퓨터처럼 정확하지 않다. 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속도와 힘, 호흡이 달라진다. 누군가의 팔은 조금 늦게 뻗고, 한쪽 발은 미세하게 흔들린다. 상대의 무게를 받아내는 순간 예정된 자세가 달라진다.

기계의 세계에서 오류는 제거해야 할 결함이다. 춤에서는 그 어긋남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든다. 완벽하게 반복하지 못하는 몸이야말로 안무를 살아 있게 한다. 몸이 기계를 닮아갈수록 인간의 특성이 오히려 선명해진다. 인간은 지치고 흔들리며 머뭇거린다. 다른 몸의 무게에 영향을 받고,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에 반응한다. 인간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에서 드러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도 다른 몸의 무게를 직접 받아내지는 않는다. 넘어지는 사람을 붙잡을 때 손끝에 전해지는 힘, 같은 공간에서 호흡할 때 생기는 긴장, 땀과 피로가 몸을 바꾸는 경험은 아직 인간의 영역이다. 〈Hello World〉는 인공지능의 능력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인공지능과 마주한 인간의 몸이 어떻게 긴장하고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영상은 배경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신체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 커튼콜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 커튼콜이규승

공연에 등장하는 디지털 이미지는 단순한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영상은 무용수의 몸을 확대하고 분절하며 때로는 삼킨다. 무대 공간을 현실과 가상의 경계로 바꾸고 관객의 시선을 실제 몸과 생성된 이미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동시킨다. 초연에서도 영상은 작품의 중심 언어였다. 여러 개의 태블릿에서 흘러나오는 이미지들은 무대 위 오브제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출연자였다. 이번 공연에서 영상은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인 헬로월드를 구체화한다.

하지만 작품의 중심은 완성된 디지털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정확하게 계산된 이미지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몸이다. 영상이 매끄러운 세계를 보여줄수록 무용수의 거친 숨과 불규칙한 움직임은 더욱 도드라진다. 영상과 몸은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상대를 필요로 한다. 몸이 없으면 디지털 이미지는 감각을 잃고, 영상이 없다면 몸은 헬로월드라는 세계를 충분히 확장하기 어렵다. 두 매체는 조화를 이루기보다 긴장 속에서 공존한다.

이 긴장은 댑댄스프로젝트 작업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영상과 오브제를 춤에 장식처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매체가 부딪힐 때 생기는 감각을 작품의 언어로 삼는다. 다만 영상이 강해질수록 몸의 세밀한 움직임이 묻히는 순간은 여전히 남는다. 관객의 눈은 본능적으로 크고 선명한 화면을 따라간다. 그 사이 무용수의 손끝이나 미세한 호흡은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그 불균형마저 의미로 읽힌다. 오늘날 인간 역시 수많은 화면과 생성 이미지에 둘러싸여 자신의 몸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화면이 몸을 압도하는 무대의 풍경은 디지털 이미지가 현실의 감각을 밀어내는 지금의 일상과 닮았다.

인공지능 시대, 다시 몸을 묻다

〈Hello World〉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예언하는 공연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공포를 과장하지도 않고, 기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는 낙관에 기대지도 않는다. 공연이 바라보는 대상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능 앞에 선 인간이다. 인간은 새롭게 등장한 존재에게 어떤 첫마디를 건넬 것인가. 명령부터 내릴 것인가. 얼마나 쓸모 있는지 계산할 것인가. 두려움 때문에 통제하려 들 것인가. 아니면 낯선 존재와 관계를 맺는 방법부터 배울 것인가.

댑댄스프로젝트는 이 질문을 말이 아닌 몸으로 던진다. 몸은 관계를 피할 수 없다. 무대 위에서 한 사람의 움직임은 다른 사람의 호흡과 무게에 영향을 받는다. 혼자 완성되는 동작은 없다. 밀고 당기고 기대고 버티는 과정에서 춤이 만들어진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다움은 더 뛰어난 계산 능력이나 완벽한 기억력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은 이미 그 경쟁에서 기계를 이길 수 없다. 인간다움은 타인의 무게를 감당하는 능력,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받아들이는 태도, 실패와 불완전함을 견디는 힘에 가까울지 모른다.

공연이 끝난 뒤 '헬로 월드'라는 문장은 처음과 다르게 들린다. 새로운 프로그램의 탄생을 알리는 가벼운 인사가 아니라 인간에게 돌아온 질문이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언어는 코딩이 아닐 수 있다. 다른 존재에게 함부로 명령하지 않는 법, 응답을 기다리는 법, 관계 속에서 함께 변화하는 법이 먼저다.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건넨 첫 인사는 결국 인간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안녕, 인간. 당신은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까."
 〈Hello World〉 공연 공식 포스터
〈Hello World〉 공연 공식 포스터댑댄스프로젝트


덧붙이는 글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는 6월 20일~2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2차 제작지원 작품이다. 김호연·임정하가 안무하고 곽유하, 김호연, 임소정, 임정하가 출연했으며 이정은이 특별출연했다. 영상은 LIMVERT, 조다.명디자인은 이승호, 사운드디자인·오퍼레이팅은 김현수, 무대감독은 김지우, 의상디자인은 김은경, 소품 제작은 최세현이 맡았다.
댑댄스프로젝트 김호연 대학로 무용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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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