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못 하는 저주에 걸린 두 남녀, 그 끝에 발견한 것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뮤지컬 <더 트라이브>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가히 '거짓말 권하는 사회'라 할 만하다. 진실된 면모가 미덕처럼 여겨지지만, 정작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짓말이 필수다. 매 순간 진실만 말한다면 그 누구도, 그 어떤 조직도 그 사람을 찾지 않을 것이다.

지난 13일 관람한 서울시뮤지컬단의 <더 트라이브>는 '거짓말 권하는 사회'의 전형을 보여준다. 주인공 '조셉'는 박물관의 에이스 복원가로, 모두의 선망을 받는다. 그러나 조셉이 엉성한 면모를 보인다면 '에이스'라는 평가는 금세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조셉은 매 순간 에이스가 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또 다른 주인공 '끌로이'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의상 디자이너 아버지와 스타 영화감독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끌로이는 어느새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로 성장했다. 영화계의 관심은 끌로이에게 집중되고, 특집 인터뷰 촬영까지 예정됐다. 세상 사람들은 영화예술인 집안에서 태어난 끌로이에게 바라는 이미지가 있다. 끌로이에게 바라는 답변도 있다. 끌로이는 영화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해야 하고, 비범해 보이는 예술적 영감을 인터뷰에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뮤지컬 <더 트라이브> 공연 사진
뮤지컬 <더 트라이브> 공연 사진세종문화회관

사회는 '연기하는 사람'을 원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 바로 이런 사회의 속성을 간파했다. 고프먼은 사람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연극에 비유하며,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일종의 연기를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상황에 맞게 인상을 관리하고, 사회적 기대에 맞게 자아를 연출해야 한다. 오죽하면 고프먼은 사람들이 의료인 앞에서는 더 환자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를 한다고 예시를 들기도 했다.

고프먼의 관점에서 보면 <더 트라이브> 속 조셉은 에이스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하고 있으며, 끌로이 역시 영화인 집안의 예술적인 여성 작가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하는 중이다. 조셉이나 끌로이뿐만 아니라 뮤지컬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적당한 거짓말로 연기를 이어가는데, 박물관의 한 남자 직원이 이를 유쾌하게 보여준다.

남자 직원은 박물관 관장의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모든 지시에 자신이 자처해 늦은 시간까지 남아 일을 한다. 이렇게 일하고 싶어서 일하는 직장인은 거의 없다. 그저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니 '일하고 싶은 척',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것이다. 극중 남자 직원도 마찬가지다.

그런 남자 직원을 유심히 보던 관장은 그에게 이름을 묻는다. 남자 직원은 자신을 알아봐 준 관장에서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남직원 1입니다." 남직원 1의 이름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이 원하는 건 무슨 일이든 자처하는 열정적인 직원 '남자 1'이다. 직원들이 원하는 건 깔끔하고 완벽한 에이스의 모습일 뿐, 조셉이라는 인물 그 자체가 아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 역시 영화를 사랑하는 타고난 예술가이지, 끌로이라는 인물 그 자체가 아니다.

 뮤지컬 <더 트라이브> 공연 사진
뮤지컬 <더 트라이브> 공연 사진세종문화회관

거짓말을 하는 순간 고대 부족이 나타난다?

조셉과 끌로이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연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커다란 문제가 닥쳤으니, 바로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순간 고대 부족이 튀어나와 춤을 춘다는 것이다. 고대 부족은 두 사람의 눈에만 보일 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갑자기 이상한 춤판을 벌이는 기이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더 트라이브>는 바로 이 신선한 설정을 토대로 삼는다. 이때 조셉과 끌로이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거짓말을 하고 춤을 추거나, 진실을 말하고 사람들의 기대를 져버리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사회적 기대와 어긋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를 통해 뮤지컬이 그려내는 건 두 사람이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한편 고대 부족의 등장이 '가면의 균열'로부터 시작된다는 설정은 탁월하다. 끌로이가 박물관에 전시된 가면을 부러뜨리게 되고, 여기에 조셉이 얽히면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둘은 가면의 원래 주인이었던 고대 부족이 나타나는 저주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전시된 가면의 균열은 곧 두 사람이 쓰고 있는 사회적 가면의 균열로 이어지는 상징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조셉이 동성애자라는 설정은 '정상성'이라는 규범까지 작품에 끌어들인다. 규범이 너무 깊이 내면화된 탓에 외부의 기준뿐 아니라 내면의 검열관과도 다퉈야 하는 조셉을 통해 <더 트라이브>는 한층 입체적이고 탄탄한 서사를 구현한다.

<더 트라이브>는 오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김찬호·허도영(조셉 역), 유주혜·이혜란(끌로이 역), 이경준·박원진(박물관 관장 역) 등이 출연한다.

 뮤지컬 <더 트라이브> 공연 사진
뮤지컬 <더 트라이브> 공연 사진세종문화회관
공연 뮤지컬 더트라이브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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