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때까지 기다린다" 새로운 '관객 운동' 시작한 독립영화 3편

[현장] 독립영화 장기 상영 프로젝트 '슬로우시네마 운동' 출범 기자 간담회

 19일 오전 충무로 인근 한 식당에서 열린 '슬로우시네마 운동' 출범 간담회
19일 오전 충무로 인근 한 식당에서 열린 '슬로우시네마 운동' 출범 간담회성하훈

질기게 극장을 지키며 장기상영 중인 <1980사북>(박봉남 감독), <3학년 2학기>(이란희 감독), <바람이 전하는 말>(양희 감독) 등 3편의 독립영화에 대해 영화인들이 관객 연대를 제안했다. 이른바 '슬로우시네마 운동'.

이들 3편의 영화는 기존 영화들과는 다르게 대관상영이나 공동체 상영 방식을 통해 기적적으로 상영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관련기사 : 좋은 영화, 관객이 직접 지킨다... 상영 공식 깬 영화 네 편 https://omn.kr/2gtm6)

19일 오전 충무로 인근의 한 식당에서 열린 '슬로우시네마 운동' 간담회는 가늘고 길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들에 대해 영화계의 마음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은 대표,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 백재호 대표, 한국예술영화관협회 최낙용 대표를 비롯해 이란희 감독, 박봉남 감독, 양희 감독 등 3편 영화 감독 및 피디 등이 자리했다.

"장기상영 독립영화 힘 되기 위해 나선 것"

이은 대표는 "<1980 사북>을 보고 훌륭한 영화를 관객들이 봐야 되는데 왜 많이 보지 못할까 하는 깊은 고민이 생겼다"며 "시민상영위원회를 만들어 상영 운동을 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먼저 개봉한 <3학년 2학기>와 이후 개봉한 <바람이 전하는 말>도 똑같은 방식으로 상영 운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 창작자들이이 만나 힘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최낙용 대표는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개봉작의 18%가 독립예술영화인데, 상영관은 2%에 불과하고, 상영시간의 차별도 심하다"면서 예매도 (영화) 개봉 이틀 전에야 열리는 등 독립영화가 처한 불공정한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최 대표는 "이런 관객 운동을 통해 영화들이 관객을 더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독협 백재호 이사장은 ▲2026년 12월말까지 세 편의 작품이 오로지 영화관에서 지속적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작품을 향유하고자 하는 관객을 창작자들이 직접, 그리고 더 많이 찾아가 소통하며 ▲이번 연대 상영을 마중물 삼아 또 다른 독립영화들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관객 운동'의 단단한 틀을 마련한다 등 3대 실천목표를 제시했다.

<1980 사북> 박봉남 감독은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가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박 감독은 "영화 안에는 특정 여성들이 당했던 국가 폭력과 성적 가혹 행위들이 상당히 사실적으로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그분들의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사실은 OTT로 넘기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OTT로 넘어갔을 경우에 이것들이 다시 확대되고 인용되는 2차 가해의 가능성이 많이 있어서 처음부터 OTT로 못 넘기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3일 개봉해 10개월 가까이 상영을 이어가고 있는 <3학년 2학기> 신운섭 피디는 "인천에서 노동단체들이 주관한 상영회 때 많은 관심을 받았다"면서 여럿이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란희 감독도 "(장기 상영을 통해)뒤늦게 영화가 알려지는 것 같다"며 "이런 상영 형태가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관 상영 때마다 매진을 기록 중인 <바람이 전하는 말> 양희 감독 역시 "극장에서 함께 보면서 관객들은 공간의 힘을 느낀다"고 말했다. <바람이 전하는 말>은 음악영화로 입소문이 나면서 단체 관람이 이어지고 있는 데, 매번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당신을 만날 때까지, 당신이 볼 때까지 기다린다"

 19일 오전 충무로 인근 식당에서 열린 '슬로우시네마 운동' 간담회
19일 오전 충무로 인근 식당에서 열린 '슬로우시네마 운동' 간담회한국영화제작가협회 제공
참석자들은 시민사회와 앞서 영화를 접한 관객들을 향해 "독립영화는 우리 사회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끌어내고, 관객과 함께 사유하고자 하는 소중한 매체"라며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닌,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영화들의 곁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당신을 만날 때까지, 당신이 볼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장기 흥행의 결의를 다졌다.

'슬로우시네마 운동'은 일본에서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일본은 이미 2014년 출범한 'JSN(Japan Slow cinema Network)을 통해 상영 운동이 하나의 거대한 지역 문화로 뿌리내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비극 속에서도 영화 <에클레어 과자 방랑기>는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상영 실행 위원회'를 통해 전국 827곳에서 45만 명과 만나는 기적을 썼다. 현재 10개의 가입 회사가 연대하는 JSN은 <광야에 희망의 불빛을 밝히다>(2022년)로 110만 명, <내가 살아가는 두가지 세계>(2024년)로 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영화 못지않은 깊고 넓은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1년 '와라나고 운동'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시기 개봉했던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가 극장에서 일찍 종영되자 관객들이 상영을 요구하면서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를 상징하는 관객운동이 됐다.

이번 슬로우시네마 운동 역시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창작자들이 손을 맞잡았지만 관객의 움직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전하는 말> 대관상영을 주관하고 있는 강욱천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사무총장은 "관객주권운동"이라며 '슬로우시네마 운동'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은 대표는 "극장은 상영할만한 영화가 없다고 하는데, 독립영화들은 상영해 줄 극장이 없는 모순된 현실이다"라며 "12월까지 극장 상영을 이어간다"는 계획을 밝혔다.
슬로우시네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