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우스 오브 드래곤> 스틸컷
HBO
시리즈의 중심축, 두 여성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왕좌의 게임>이 일어나기 수백 년 전, 원작에서 몰락한 '타르가르옌 왕조'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대륙 전체를 아우르던 스케일을 줄이고 개별 인물들에게 집중한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의 높아진 비중이 백미다. 주연 배우들부터 제작자 라이언 콘달까지, 모두가 한입으로 두 여성 캐릭터 '라에니라(에마 달시 분)'와 '알리센트(올리비아 쿡 분)'를 시리즈의 주축으로 꼽는다.
작중 라에니라는 타르가르옌 왕조의 장녀이다. 당연히 왕위를 물려받을 후계자로 지목되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삼촌 '데이몬'을 비롯 다양한 남성 캐릭터들의 찬탈 위협을 받아 왔다.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사랑하던 양성애자(bisexual)이던 그녀가 승계 확정을 위해 가까운 핏줄인 삼촌 데이몬과 근친혼을 맺는 것은, 라에니라가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정체성마저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면, 그런 라에니라의 죽마고우 알리센트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시즌1의 첫 장면부터 드래곤을 타고 돌아온 라에니라를 맞이하는 알리센트를 보여주며 둘의 우정을 전면에 내빈다. 그러나 너무나도 가까운 이 둘의 사이는 파국으로 치닿는데, 라에니라가 자기 아버지의 재혼 상태로 알리센트를 추천해서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놀던 친구가 새어머니가 되어 버린 상황. 설상가상으로 알리센트는 왕자 '아에곤'을 배출하고, 그 아이를 정식 후계자로 여기는 명망가들이 많아지면서 왕국이 둘로 갈린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이 두 여성이 저마다의 여정을 통해 지도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라에니라는 선정을 펼치고자 노력하지만 가신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폭력과 종교적 권위에 의지한다. 알리센트는 전면에 나서는 대신 남성 인물들을 뒤에서 조종하며 암암리에 활약하는 방식으로 대왕대비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직접 전쟁에 나서는 '전사로서의 여성'과 사극에서의 잦은 묘사로 익숙한 '암투가 여성'의 모습이 전부 묘사된 것이다.
라에니라와 알리센트가 여타의 여성 캐릭터들과 궤를 달리하는 것은, 이들을 완전한 선역도 악역도 아니도록 세심하게 설정한 각본 덕분이다. 라에니라는 잔혹한 면모를 보이다가도 권력을 잡지 못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눈물을 보인다. 알리센트 또한, 섭정의 대가처럼 묘사되다가도 원치 않던 아이들에 대한 의무와 정치적 싸움에서 비롯된 피로에 시달린다. 두 여성 모두가 가부장제와 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존재이고, 그 동시에 개인의 욕망을 가지는 복합적 인물인 셈이다.
이는 전작 <왕좌의 게임>과 비교했을 때 괄목상대할 만한 도약이다. 드라마판 <왕좌의 게임>은 원작 소설의 다양한 입체적 여성 인물들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정작 군상극의 주축인 '세르세이'를 만화적인 악녀로 그려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두 여성 지도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동시에 타락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가부장제가 만연한 시대적 배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는 여성주의적 집필 방식을 보여준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드래곤> 스틸컷HBO
혼란의 시대, '전쟁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
이러한 인물적 특성과 함께,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주제의식적 측면에서도 진일보한 모습을 보인다. <왕좌의 게임>의 주제가 '권력 앞에서 누구도 무결하지 않다'였다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그렇게 무결하지 않은 사람들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가 무엇이어야 하냐고 묻는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3은 미진한 평가를 받았던 시즌2의 엔딩에서 곧바로 이어질 예정이다. 시즌2의 제작 당시 코로나19의 영향과 미국작가연맹 파업으로 10화 분량이었던 드라마가 8화로 줄어들었으며, 이에 당초 시리즈의 클리프행어(cliffhanger: 관객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끝맺는 기법) 역할을 할 예정이었던 '걸릿 전투'가 시즌3의 서두가 되었다.
걸릿 전투의 이면에는 앞서 언급한 라에니라와 알리센트 사이의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시즌2의 결말에서, 정치적 권모술수에 지친 알리센트는 자기 아들 아에곤 왕자를 배신하고 라에니라를 왕으로 추존하기로 결심한다. 적진 한가운데까지 걸어들어가 이 뜻을 전달하는 장면이 직전 시즌의 마지막 장면이다.
시즌3에서의 라에니라는, 오랜 친구의 진심을 믿기로 하고 수도로 진군한다. 알리센트 역시 도시의 문을 열고 새 왕으로 거듭날 라에니라를 맞을 준비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아에곤 왕자가, 어머니 알리센트의 뜻과 관계없이 독단적인 탈출을 감행한다. 라에니라가 수도를 정복한다고 해도 반란의 씨앗이 남게 된 상황. 결국 알리센트는 다시금 친구를 배신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전쟁과 종교, 의무와 폭력에 경도되기 전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에 가까운 우정을 보였던 라에니라와 알리센트. 이 둘은 다시금 서로를 신뢰하게 될 수 있을까? 정치가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를 들며 전쟁까지 불사하는 이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원초적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서로를 향한 편견과 오해를 내려놓고 극단적 환대를 이뤄낼 수 있을까?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3은 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풍부한 생각거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처럼 맹렬히 질주하는 웰메이드 서사의 힘을 실감하고 싶다면 올여름에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을 감상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3은 오는 23일 쿠팡플레이를 통해 국내에 공개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펄프 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