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내 자식과 꼭 닮은 로봇이 집으로 왔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373] <상자 속의 양>

이 시대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상자 속의 양>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다. 이 시대 유달리 근미래 배경의 작품이 많이 나오는 건 AI와 알고리즘 등의 신기술이 우리네 현실을 곳곳에서 혁신 또는 충파하고 있는 때문이겠는데, 각자의 삶에 바빠 서로 다른 삶의 모양을 충실히 돌아보지 않는 장삼이사들에게는 현실 속 빚어지는 영화적 충격조차 실재하지 않는 이야기처럼 여겨지기 일쑤인 것이다. <상자 속의 양>이 다루는 일 또한 그와 같아서 많은 이들이 이미 현실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이야기라 하겠다.

상자 속의 양 스틸컷
상자 속의 양스틸컷미디어캐슬

양을 그려달라 했더니 상자를 그려놨다

제목인 '상자 속의 양'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하다. 인류 문학의 고전이라 해도 좋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저 유명한 소설 <어린왕자>의 인상적 도입이 바로 상자 속의 양이 아닌가 말이다. 소설 속에서 비행 중 사하라 사막에 떨어진 주인공이 난 데 없이 등장한 웬 꼬맹이를 만난다. 그 꼬마가 주인공에게 다짜고짜 "양 한 마리만 그려달라"고 떼를 쓰는데, 이때 주인공이 몇 차례 퇴짜 끝에 그려준 것이 바로 '상자 속의 양'이다 이 말씀이다.

말하자면 주인공이 그려준 것은 네모진 상자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양이 들었다는 것.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어린왕자가 생각하는 꼭 그대로의 양이 그 안에 들었다. 말하자면 네 마음에 달렸다. 일체유심조, 유심소작의 참 뜻을 생텍쥐페리는 꿰뚫고 있었구나.

<상자 속의 양>은 아이를 잃은 부부 오토루(아야세 하루카 분)와 켄스케(다이고 분)의 이야기다. 금쪽 같이 아끼던 7살 아들을 사고로 잃은 부부는 벌써 한참을 그 상처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아닐까. 옛 사람들은 자식을 앞세우는 일을 참척(慘慽)이라 하여, 인간이 삶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슬픔이라 하였던 것이다.

영화는 목재를 다루는 켄스케와 건축가 오토루가 일상을 사는 모습을 차분하게 비춘다. 그러면 그럴수록 드러나는 헛헛함은 이들의 일상이 더는 온전하지 못함을 알린다. 아이가 있어 완전해졌던 가정은 아이를 잃은 뒤 쉽게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행복은 그래서 발현되지 않은 불행이기도 하다.

상자 속의 양 스틸컷
상자 속의 양스틸컷미디어캐슬

죽은 아들을 AI로봇이 대신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설정을 예비한다. 바로 로봇, AI가 탑재된 로봇이다. 저 옛날 스탠리 큐브릭이 구상했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실현한 <A.I.> 속 데이비드(할리 조엘 오스먼트 분)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아이가 오토루와 켄스케의 집으로, 더는 만날 수 없는 아들 카케루(쿠와키 리무 분)와 꼭 같은 용모를 하고 찾아온 것이다. 아이를 잃은 가정에 죽은 아이와 꼭 같은 외양에 행동과 말까지 비슷한 휴머노이드를 공급하는 기술기업이 오토루와 켄스케의 집에 일종의 마케팅 서비스 목적으로 카케루 로봇을 제공한 덕분이다.

믿기 어려운 기적의 현신 앞에서 부부의 대응은 갈라진다. 오토루는 그를 아들로써 대하고, 켄스케는 그를 기계라고 말한다. 그러나 로봇이 어찌 아들일 수 있고, 아들과 꼭 같이 만든 휴머노이드는 어떻게 기계일 수만 있을까. 실패할 밖에 없는 카케루를 대하는 두 사람의 자세가 보는 이마저 위태롭게 한다.

영화는 이 가정이 겪은 상실, 그러니까 카케루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서스펜스의 축으로 두고서 조금씩 그를 밝혀간다. 어째서 어린 아들은 죽었는가. 왜 부모는 이토록 그 상실을 극복하지 못하나. 그에 얽힌 사연이 드러날수록 오토루와 켄스케가 겪고 있는 기묘하게 불편한 균형 또한 진면목을 드러낸다. 이들에겐 카케루를 대신할, 꼭 같이 생긴 휴머노이드가 필요한가. 그 존재는 이들의 상실을 메우고 상처를 치유하는가. 아니면 그저 비극을 가리고 유예할 뿐인가.

상자 속의 양 스틸컷
상자 속의 양스틸컷미디어캐슬

25년 전 스필버그, 오늘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상자 속의 양>의 다른 한 축은 카케루다. 부모에게 카케루의 존재는 그 자체로 변화와 충격, 사건과 자극이지만, 휴머노이드인 카케루에게 이 집에서 벌어지는 일은 별개이며 독자적인 삶인 것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 카케루가 그저 혼자가 아니란 사실이다. <A.I.>가 앞서 마주했던 과제를 기술이 몰라보게 가까워진 오늘에 이르러 다시금 풀어내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선택을 주목할 만하다.

영화 속엔 카케루 외에도 여러 휴머노이드가 등장한다. 같은 기업이 제조한 휴머노이드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용자인 부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문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로봇에게 가능하다면 말이겠으나, 어찌됐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본래 사용자로부터 일정거리 이상 떨어지게 되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지도록 설계됐으나 무슨 일인지 이들은 그 제약을 우회하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카케루에게 접근한 어느 개체는 아예 사용자와 본사에 위치를 알리는 GPS까지 제거해주는데, 이 덕분에 이들은 행동에 자유를 얻게 된다.

마침 맞벌이로 바쁜 켄스케와 오토루 부부의 허점을 노려 카케루는 제법 긴 시간을 저와 같은 이들과 어울려 지낸다. 마치 가출팸처럼 어울려다니는 이들 패 가운데는 휴머노이드가 아닌 인간이 끼어 있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여기서 카케루가 맡는 역할은 꽤나 인상적인데, 어머니인 오토루 어깨 너머로 배운 건축지식을 활용해 패거리의 은신처이자 삶의 터전을 직접 설계하는 것이다. 요컨대 영화는 인간의 문명 가운데 버려지거나 탈출한 휴머노이드들이 제 자리를 구하는 이야기가 된다.

상자 속의 양 포스터
상자 속의 양포스터미디어캐슬

닥쳐온 AI, 닥쳐올 휴머노이드... 이 영화의 답은?

새롭지 않은가. 기계가 장악한 세계 속에서 인간의 자리를 지키려는 저항(<터미네이터> 류)이나 유인원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터전을 확보하려는 발버둥(<혹성탈출> 류)에 익숙한 관객에게 그를 전복한 고민을 보여주는 것이 말이다. 2011년 새로 출발한 <혹성탈출> 시리즈에서 첫 편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 일시적으로 그와 같은 상황을 구현한 게 드물게 가까운 사례일 테다.

무튼 영화는 위 두 축으로 전개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자리, 그 공존의 효과와 위협을 생각하도록 한다. AI기술이 문명의 신기원을 열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를 탑재할 로봇이 각광받는 이 시대에 얼마나 시의적절한 논의인가. 한국에서 이와 가장 가까운 문제의식을 다룬 김태용의 <원더랜드>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떠올리면 여전히 미욱한 점이 엿보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업이 그래도 많은 고심 끝에 이뤄진 것임을 깨닫게 된다.

AI는 이미 세상 가운데 안착했다. 과거 인간이 담당하던 자리를 무리 없이 차지해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인간성, 또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고 대중이 막연하게 믿어온 자리를 하나둘 자연스레 차지한다. 그는 침탈인가, 자연스런 합석인가. 공존인가, 마침내 있을 싸움의 서막인가.

제목인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써낸 답변이다. 세상 가까운 두 사람, 오토루와 켄스케조차 카케루를 달리 대하였다. 우리라고 다를까. 중요한 건 카케루가 아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AI, 그러니까 기술이고 사건이며 변화가 아니다. 우리의 자세, 곧 마음이다. 상자 안에 든 것은 무엇이었다.

그저 사각의 상자일뿐이지만, 어린왕자는 그 안에서 가장 온전한 양 한 마리를 얻었다. 제가 꼭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닥쳐올 변화, 그 변화를 이끌 기술 또한 그와 같다고, 이 영화는 말한다. 상실과 상처의 해소인가, 그저 유예인가, 삶을 거짓으로 살게 하는 것인가, 나아감인가, 그중 어느 것도 아닌가, 아니면 모든 것인가.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 유심소작이다. 상자 속의 양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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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