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좋아" 와 "거제 야호"... 이게 똑같았다

[리뷰] 영화 <와일드씽>의 최성곤 - 리센느 '러브 어택' 역주행

최근 대중문화계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기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기획사가 야심 차게 준비한 메인 서사나 콘셉트는 외면받는 대신, 상대적으로 비중이 덜한 조연이나 의도치 않은 찰나의 한마디가 흥행의 본체로 둔갑하는 현상이다. 극장가와 가요계를 휩쓴 두 가지 열풍, 영화 <와일드 씽>의 조연 '최성곤'과 걸그룹 리센느의 '거제 야호'가 대표적이다.

 <와일드 씽> 최성곤
<와일드 씽> 최성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와일드 씽>은 20년 만에 재기를 노리는 3인조 혼성 그룹 '트라이앵글'의 도전을 담은 코미디물이다. 그러나 극장을 나온 관객들이 밈(Meme)으로 만들고 챌린지를 이어가는 대상은 주연 3인방의 메인 서사가 아니다. 관객의 시선은 아련한 얼굴로 "니가 좋아"를 외치는, 90년대 발라드 가수인 조연 최성곤(오정세)에게 꽂혔다.

비슷한 시기 가요계를 달군 리센느의 '러브 어택(Love Attack)' 역주행도 같은 맥락이다. 대중을 움직인 것은 기획사가 공들여 연출한 본 무대가 아니었다. 그 발단은 리더 원이의 개인 유튜브 채널이었다. 갸루 스타일로 분장한 일본인 멤버 미나미에게 원이가 "너 이러고 가면 거제 시민들한테 혼난다"고 타박하자, 미나미가 해맑게 "거제 야호!"라고 받아친 엉뚱한 한마디가 숏폼을 타고 밈으로 번져나갔다.

두 멤버가 직접 거제도를 방문해 여행하는 영상 역시, 아이돌의 정형화된 모습을 벗어던진 꾸밈없고 털털한 매력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영상은 700만 뷰(6월 18일 기준)를 돌파했고, 대중의 열광은 이들을 실제 거제시 홍보대사 위촉과 음원 차트 상위권 진입으로 이끌었다.

메인 무대의 한계

 리센느
리센느리센느 원이 유튜브 채널

가상의 발라드 가수와 걸그룹 멤버의 엉뚱한 한마디. 전혀 다른 두 현상의 기저에는 '거대 자본과 공식이 장악한 메인 무대의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대형 기획사의 천문학적인 마케팅 물량 공세가 쏟아지는 가요계에서, 중소 기획사 아이돌이 정석적인 무대와 콘셉트만으로 대중의 눈에 띄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극장가 역시 마찬가지다. 안전하고 뻔한 흥행 공식을 따르는 메인 서사는 완성도를 떠나 대중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자본으로 꽉 짜인 메인 무대들은 쾌적하지만, 대중에게 수동적인 감상만을 강요할 뿐 비집고 들어가 맘 편히 놀 '틈'을 주지 않는다.

반면 최성곤의 1차원적인 가사("니가 예뻐서 좋아, 웃겨서 좋아")나 대형 아이돌에게서 볼 수 없는 리센느의 날것 그대로의 외침("거제 야호!")에는 기획이 미처 다듬지 못한 헐렁한 틈이 존재한다. 거대한 자본이나 정교한 마케팅이 닿지 않은 이 어설픈 지점들이 오히려 대중에게는 가장 신선한 포인트가 된 것이다.

결국 이 현상은 대중이 더 이상 수동적인 소비자로 머물지 않음을 증명한다. 대중은 기획자가 떠먹여 주는 메인 서사를 얌전히 감상하는 대신, 가려져 있던 매력을 스스로 발굴해 낸다. 최성곤의 팬덤 '곤듀'를 자처하고 거제 야호 밈을 퍼나르며, 완성된 이야기 바깥을 자신들의 놀이로 채워가며 콘텐츠의 '공동 저자'로 등극하는 것이다.

거대 자본과 치밀한 공식으로 무장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마음을 훔친 것은 기획의 바깥에 놓여 있던 투박한 순간들이었다. 완벽하게 차려진 밥상보다, 내가 직접 개입하고 참여할 수 있는 헐렁한 빈틈. 지금 콘텐츠 시장의 승패는 완벽한 기획이 아니라, 대중의 손끝이 닿는 그 예측 불가능한 여백 속에서 결정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칼럼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글쓴이(이인혜)는 12년차 대중문화 전문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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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에디터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 잡지와 온라인 매체, 브랜드 콘텐츠 등 다양한 채널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다듬는 일을 해왔다. 퇴근 후에는 늘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청자이자, 장면과 장면 사이에 남은 감정을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에세이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