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요" 인순이가 완성한 축제의 대미

[공연 리뷰] 202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지난 6월 12일부터 14일, 강원도 철원군 고석정 일대에서 열린 202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지난 6월 12일부터 14일, 강원도 철원군 고석정 일대에서 열린 202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현파

SNS로 모든 것을 대리 체험할 수 있는 시대,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콘텐츠가 현실과 가상을 혼동시키는 이 시대, 그럼에도 '진짜' 경험을 좇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굳이 음악과 춤을 즐기기 위해 머나먼 강원도 철원까지 가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좋은 예다.

지난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강원도 철원군 고석정 관광지 일대에서 202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올해로 7회째인 이 페스티벌은 2018년 분단의 상흔이 남아 있는 접경지역에서 평화를 노래한다는 콘셉트와 함께 탄생했다. 특유의 다채로운 뮤지션과 자유로운 분위기 등에 힘입어 음악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티스트와 관객이 빚어낸 인간 활동

올해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키 메시지는 '인간 활동(Human Activity)이었다. "전쟁과 분쟁, 혐오와 배척이 생명을 위협하고 미래를 지우는 가운데, '잘 살아있음'이야말로 평화이자 행복이고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장 단순한 명제"라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올해도 멋진 아티스트들이 '인간 활동'을 책임졌다. 한국 인디의 증인 차승우가 김간지, 릴피쉬 등 동료들과 함께 만든 '차승우와 사촌들'의 낭만적인 로큰롤, 밤하늘을 서정적으로 물들인 이승열의 연륜, 백현진과 까데호의 앙상블 등 연륜 있는 뮤지션들에 몇 번이고 취할 수 있었다. 백예린이 이끌고 있는 록밴드 발룬티어스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큰 공명으로 다가왔다.

 202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친 너리시드 바이 타임(Nourished By Time)
202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친 너리시드 바이 타임(Nourished By Time)이현파

지난해 발표한 앨범 <더 패셔네이트 원즈(The Passionate Ones)>로 전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은 너리시드 바이 타임(Nourished By Time)은 밴드를 대동해 방구석 뮤지션의 상상력을 근사하게 구체화했다. 세일러 허니문, 피치 트럭 하이 재커스 등, 록의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들을 보는 즐거움도 컸다. 얼터너티브의 조상, 소닉 유스의 서스턴 무어(Thurston Moore)는 특유의 노이즈 사운드로 포효했다.

올해도 DMZ는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는 임무에 집중했다. 프랑스에서 온 루이스 오프만의 정교한 라이브셋도 음악 팬들을 감탄하게 했다. 한국 문화에 영향을 받은 노래 '서울 디스코 나잇(Seoul Disco Night)'의 가사 "춤 있어? 사랑 있어? 멋있어? 친구 있어?"가 화합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포스트펑크에 색소폰을 끼얹은 밴드 데드레터(DEADLETTER), 프랑스 밴드 라 플렘(La Flemme), 타악기를 강조하는 태국 신스팝 밴드 GYMV는 단연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했다.

발전에 대한 의지도 느껴졌다. 가용할 수 있는 부지를 넓히면서도, 최적화된 동선을 만들었다. 장애인과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늘리며 이 페스티벌 특유의 가치를 증명했다. 액티비티 존을 넓히고, 고석정 꽃밭을 독일 베억하인 같은 레이브 파티의 장으로 만들었다. 어린이 합창단이 가세한 금요일 전야제는 더욱 성대한 평화의 의식이 됐다.

화려한 라인업만이 다가 아니다. 철원을 찾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 페스티벌을 완성한다. 밴드 음악 팬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에피의 하이퍼팝도 편견 없이 환영받는다. 백발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멋진 춤을 추며 열광을 받는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도 어깨동무를 하고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사라진다.

 202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장식한 인순이
202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장식한 인순이이현파

개방된 분수대 무대에서 아티스트가 '우리는 모두가 하나'를 외치며 티켓을 사지 않은 관객에게도 삼겹살을 먹여준다. 빅뱅의 '거짓말', 샤이니의 '뷰' 등 추억의 케이팝이 울려 퍼지면, 관객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후다닥 달려가 춤판을 벌인다.

올해 DMZ에서는 퀴어 축제 못지않게 무지개가 새겨진 깃발이 많이 나부꼈다. 록스타 백예린 역시 'Happy Pride Month(행복한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를 외치며 성소수자와 연대했다. 이러한 모습도 정치적인 불편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인간 활동'으로 여겨진다. 끊임없이 춤을 추며 관객을 맞이하는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의 직원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간 활동'이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요?"

마지막 순서를 장식한 인순이의 공연을 보고 사람들이 나눈 감정은 대개 비슷했다. 관객들은 뉴진스와 가인의 노래를 부르는 57년생 디바의 모습과 세월을 무색하게 하는 성량에 경탄했다. 30대 이 되어야 비로소 공감할 수 있게 된 '친구여(조PD)'를 따라 부르며, 초등학생 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

페스티벌이 열린 철원 인근의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 이 무대에 섰다는 인순이. '거위의 꿈'을 부르기 전, 다문화 아이들이 자신처럼 사춘기가 길지 않기를 바랐다며, 다문화 대안학교를 세운 사연을 전했다. 인순이는 "여러분 가슴 속에 박혀 있는 꿈을 포기하지 말라"라는 따스한 위로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울먹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보다 완벽한 페스티벌의 마무리는 없었으리라.

<경험의 멸종> 저자 크리스틴 로젠은 기술에 의해 매개된 경험이 인간성의 상실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우리는 AI가 없는 삶, 스마트폰이 없는 하루가 불안하다. 그래도 그 기술들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모든 것이 3일간의 DMZ 피스트레인에 있었다. 여러 사람이 일제히 추억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흘리는 눈물, 낯선 사람과 춤을 추면서 나누는 미소 같은 것 말이다.

 지난 6월 12일부터 14일, 강원도 철원군 고석정 일대에서 열린 202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지난 6월 12일부터 14일, 강원도 철원군 고석정 일대에서 열린 202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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