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앞에 보이는 공연보다 여러 감각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오래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만들고 싶습니다."
만화경 신창렬 대표가 〈마법의 회전목마〉(6월 19~21일, 아르코꿈밭극장)를 설명하며 가장 강조한 말이다. 이 작품에는 360도 원형 영상과 입체적인 사운드, 배우의 퍼포먼스가 등장한다. 이른바 '융복합 공연'이라 부를 만한 기술적 장치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 그러나 그가 만들고 싶은 것은 기술을 감상하는 공연이 아니라 영상과 소리, 배우와 관객이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면서 어린이의 감각과 기억을 깨우는 공연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 꿈밭시즌'의 일환으로 선보이는 〈마법의 회전목마〉는 관객을 360도 원형 극장 안으로 초대한다. 관객은 무대 건너편에 앉아 이야기를 바라보지 않는다. 원형 스크린과 소리에 둘러싸인 채 배우와 같은 세계에 머문다. 작품의 배경은 인류가 사라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미래다. 태양광을 받아 깨어난 로봇은 사라진 '여름'을 찾아 사계절 놀이공원을 탐험한다. 주인공의 여정은 잃어버린 계절을 복원하는 모험인 동시에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감각과 마음을 되찾는 시간이 된다.
지난 15일 신창렬 대표와 〈마법의 회전목마〉가 관객에게 건네려는 질문, 어린이 공연에서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 등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관객을 '보는 사람'에서 '경험하는 사람'으로
▲만화경 신창렬 대표가 〈마법의 회전목마〉(6월 19~21일, 아르코꿈밭극장)를 설명하며 가장 강조한 말이다. 이 작품에는 360도 원형 영상과 입체적인 사운드, 배우의 퍼포먼스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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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회전목마〉에서 원형 극장은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니다. 작품의 내용과 관객의 경험을 결정하는 중요한 언어다. 일반적인 극장에서는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다. 관객은 정해진 자리에 앉아 한 방향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관객은 장면의 중심이나 이야기 속에 놓인다. 고개를 돌리는 방향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고, 앉은 위치에 따라 들리는 소리와 장면의 느낌도 달라진다. 그는 처음부터 관객이 단순한 구경꾼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 단순히 '보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 안으로 들어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무대와 객석이 명확하게 나뉜 구조보다 관객을 장면 속에 위치하는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작품의 제목인 '회전목마' 역시 원형 구조와 맞닿아 있다. 회전목마는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은 매 순간 다른 풍경과 감정을 마주한다. 신 대표에게 원형은 시간과 기억, 감정이 교차하고 되돌아오는 형태다. 관객은 어느 한 방향만 바라보도록 요구 받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 싶은 곳을 선택하고,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을 발견한다. 같은 공연을 관람해도 어린이마다 서로 다른 장면과 감각을 기억하게 되는 이유다.
그는 "관객마다 조금씩 다른 기억과 경험이 남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며 "각자의 시선으로 장면을 선택하고 발견하게 하려 원형 공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음악 역시 객석 앞쪽에서 일방적으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때로는 관객의 뒤에서 시작하고, 옆으로 이동하거나 원형 공간을 따라 흐른다. 신 대표가 이 작품을 구상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익숙하지만 쉽게 붙잡히지 않는 소리'였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 저편에서 들려오던 음악처럼 반갑고 설레지만, 동시에 조금은 낯설고 희미한 소리다.
"특정한 감정을 음악으로 설명하기보다 관객 안에 남아 있는 기억과 감각을 불러내고 싶었습니다. 어떤 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이동하는지가 이야기의 일부가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사라진 여름은...
▲작품의 제목인 ‘회전목마’ 역시 원형 구조와 맞닿아 있다. 회전목마는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은 매 순간 다른 풍경과 감정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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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찾아 나서는 것은 '여름'이다. 그러나 작품이 말하는 여름은 기온과 날짜로 구분되는 계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사라진 여름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놓치거나 잃어버린 감각과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기다렸는지, 언제 가장 즐거웠는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로봇이 사라진 계절을 찾아가는 모험은 관객에게 조용히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건넨다.
"어떤 정답을 말하기보다 관객이 자신의 마음을 한 번쯤 떠올려보는 시간이 됐으면 했습니다. 어린이에게는 상상의 모험이 되고, 어른에게는 잠시 잊고 있던 감각과 마음을 다시 만나는 경험이 되길 바랐습니다."
작품은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도 다룬다. 세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한 장면에서는 바닷속 고래의 뱃속에 쌓인 쓰레기를 통해 환경 문제를 보여주고,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무너진 기후와 계절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어린이 공연에서 기후위기 같은 사회문제를 다룰 때는 고민이 따른다.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공포와 죄책감을 심어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정해 놓은 결론을 어린이에게 가르치려는 공연이 되기도 쉽다. 신 대표는 무거운 주제를 피하기보다 전달하는 방식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렵다고 피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메시지를 직접 설명하거나 가르치려는 방식이 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섬세하게 감정을 받아들입니다."
작품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장을 반복하지 않는다. 관객이 로봇의 여정을 따라가며 망가진 세계와 회복되는 계절을 직접 경험하도록 한다. 불안과 경고를 앞세우기보다 공연이 끝난 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질문을 남긴다.
배우와 관계를 맺는 순간
▲ 〈마법의 회전목마〉는 관객을 360도 원형 극장 안으로 초대한다. 관객은 무대 건너편에 앉아 이야기를 바라보지 않는다. 원형 스크린과 소리에 둘러싸인 채 배우와 같은 세계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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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시브(Immersive) 공연은 흔히 화려한 영상과 특수효과로 설명된다. 하지만 〈마법의 회전목마〉에서 어린이의 몰입을 만들어내는 핵심은 기술만이 아니다.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는 배우와 관객의 관계다. 영화나 일반적인 공연에서 관객은 이미 정해진 방향과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따라간다. 놀이공원의 실감형 콘텐츠 역시 제작자가 설계한 감각을 체험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마법의 회전목마〉에서는 비교적 적은 수의 관객이 하나의 공간에 들어가 배우와 직접 관계를 맺는다. 어린이는 배우의 말에 대답하고 몸을 움직인다. 옆에 앉은 다른 어린이의 반응을 보면서 함께 웃거나 놀라기도 한다.
"어린이 관객은 배우와 실시간으로 관계를 맺는 순간 가장 다르게 반응합니다. 말을 걸고 몸을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으로 들어옵니다. 배우와 관객, 관객과 관객 사이의 관계가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 일반적인 극장 공연과 다른 부분입니다."
2026 꿈밭시즌의 주제는 '너의 눈으로 보는 세계'다. 〈마법의 회전목마〉에서 관객은 로봇의 눈과 어린이의 눈, 사라진 계절을 찾아가는 존재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그는 그 가운데 작품의 시선과 가장 가까운 것을 '사라진 계절을 찾아가는 존재의 눈'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완성된 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연을 보더라도 각자가 다른 감정과 기억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야기 속에서 '나의 세계'를 어떻게 만나게 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만화경 신창렬 대표는 이번 공연을 "기술이 앞에 보이는 공연보다 여러 감각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오래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신창렬
만화경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이번 지원을 통해 〈마법의 회전목마〉의 새로운 에피소드 두 편을 제작하고 발표할 수 있게됐다. 영상과 음악, 퍼포먼스, 기술이 결합된 작품은 일반적인 공연보다 제작 과정이 복잡하다. 장비 설치로 끝나지 않는다. 영상과 배우의 움직임이 맞는지, 소리가 공간 안에서 정확하게 이동하는지 반복해서 검증해야 한다. 실제 공연장에 들어가야 확인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그는 이번 사업이 새로운 형식을 보다 안정적으로 실험할 기반이 됐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제작비 지원만으로는 융복합 공연이 관객에게 도달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짚었다. 새로운 장르일수록 관객은 '어떤 공연인지'를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대형 제작사가 아닌 작은 예술단체는 작품을 만든 뒤 홍보와 유통 과정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융복합 공연은 제작 과정에서 검증과 테스트가 많이 필요합니다. 작품을 만든 뒤에는 장르의 생소함을 관객에게 설명하고 공연의 경험을 전달해야 합니다. 제작 지원을 넘어 마케팅과 유통까지 함께 고민하는 협업 구조가 필요합니다."
극장 시스템의 변화도 필요하다. 영상과 음향, 조명과 퍼포먼스가 동시에 움직이는 작품은 충분한 기술 리허설과 현장 테스트가 보장돼야 한다. 소극장이라도 기본적인 음향·영상·조명 장비를 갖추고, 창작자가 공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 자랄 수 있다. 그는 아르코꿈밭극장이 공연을 올리는 장소를 넘어 새로운 어린이·청소년 공연을 발견하고 축적하는 플랫폼이 되길 기대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한다. 더 크고 선명한 화면, 더 입체적인 음향도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가 공연을 통해 기억하는 것은 장비의 사양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소리, 배우에게 말을 걸던 순간, 옆에 앉은 누군가와 함께 웃었던 감각일 것이다. 〈마법의 회전목마〉가 찾고 있는 것도 바로 그 기억이다. 사라진 계절을 찾아가는 로봇의 여행이 끝난 뒤, 관객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오래 잊고 있던 계절 하나를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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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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