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떠난 아빠가 남긴 필름 속 비밀, 추적하던 딸이 알게 된 진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여름의 카메라>

'여름'은 사진 찍는 걸 좋아했지만, 아빠가 1년 전 세상을 떠난 후 더는 촬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늘 아빠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과 함께 카메라를 갖고 다닌다. 1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학교 운동장에서 누군가와 대면하자 다시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여름은 아빠의 카메라를 꺼내 홀린 듯 셔터를 누른다. 그 상대는 축구부의 주목받는 에이스 '연우'다. 연우에게 사진을 전하려 사진관에서 필름을 현상한 하늘은 섞여 있던 아빠의 촬영분을 발견한다.

17살의 여름, 아빠가 남긴 카메라를 들다

 <여름의 카메라> 스틸
<여름의 카메라> 스틸싸이더스

여름은 아빠와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게 마냥 좋았다. 딸에게 아빠는 초등학생 땐 일회용 카메라, 중학생이 되자 자동 카메라를 선물했다. 고등학생이 되면 자신이 쓰던 수동 카메라를 물려주겠다고 했다. 부녀의 출사 나들이는 그렇게 계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빠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여름은 아직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겹다. 아빠를 놓아줄 수 없기에 추억이 담긴 물건을 큼직한 배낭에 고이 간직한 채 항상 메고 다닌다. 기억이라도 짊어지려는 듯하다.

추억이 깃든 카메라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지만, 여름은 사진을 더는 찍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냥 촬영을 넘어 아빠와의 추억을 재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빠를 놓아줄 수도, 그렇다고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기에 일어나는 모순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러니 자체가 소녀에겐 슬픔과 추모의 방식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순 없지만, 당장 멈출 생각도 계기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나이 또래엔 뭐든 변화가 빠른 법.

자신과 출사를 나갈 때도 아빠는 한 번 피사체에 꽂히면 세상 모든 것 팽개치고 몰두하곤 했다. 집중하다 보면 저절로 셔터를 누르게 된다고, 어느 날 여름은 아빠가 했던 말을 떠올릴 계기를 만난다. 운명처럼 데굴데굴 굴러온 축구공,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에 선 매혹적인 존재에 무심코 소녀는 카메라를 만진다. 1년간 다짐한 맹세는 눈 녹듯 사라지는 중이다. 홀린 듯 셔터를 누른 여름은 현상한 필름에서 시간의 강을 건넌 뜻밖의 사진과 만난다.

여름은 아빠의 과거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싱 링크'가 존재함을 깨닫고, 사진에 찍힌 대상을 추적한다. 마침내 당사자와 대면한 소녀는 아빠의 부고를 알린다. 사진 속 주인공 '마로'는 자신과 아빠의 관계에 대해 밝히지만, 아직 진실을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여름은 급히 자리를 뜬다. 하지만 얼마 전 매혹당한 '연우'와 자신의 관계는 마치 평행 이론 마냥 아빠와 마로의 과거와 연결되는 기분이다. 그라면 자신의 속내를 터놓고 말해도 이해해줄 듯하다.

수동 카메라가 은유하는 관계 형성의 감각

 <여름의 카메라> 스틸
<여름의 카메라> 스틸싸이더스

17살의 여름, 처음 느끼는 감정에 빠진다. 이런 기분은 난생처음이다. 여름의 표현대로라면 "너를 보면 셔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놓았던 카메라를 들게 한 두근거리는 감정이 소녀에겐 그렇게 감각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과연 여름에겐 어떤 의미일까? 우선 첫 번째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연우는 자신을 찍은 여름이 사진을 전하려는 행위를 마음의 표시로 이해한다. 여름은 흠칫하지만, 부정하진 않는다.

휴대전화 내장 카메라가 일상화된 시대에 왜 주인공은 수동 카메라를 고수할까? 그녀가 지향하는 관계가 즉흥성이 아니라는 것을 은유하는 장치다. 디지털 촬영은 사진을 찍자마자 바로 확인할 수도 있고 용량이 허용하는 한 많이 찍어 그중 마음에 드는 것만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수동 필름 카메라는 자신의 감각에 의존할 뿐, 현상되기 전까지는 직감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인화 과정에서 잘못될 공산도 감안해야 한다. 불확실하지만 두근거리는 감각인 것.

카메라는 온전히 작별하지 못한 아빠와의 기억을 잇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여름의 손에 들린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아빠를 추억하고 애도하는 제의의 도구로 기능한다. 사진을 통해 자신은 몰랐던 아빠를 들려줄 마루와 만날 수 있었고, 사진 속 장소를 찾으며 아빠와 대화하듯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한 방향으로 흘러갈 뿐인 시간이 사진에선 마치 천천히 흐르듯, 혹은 영속적인 양 보관되는 셈이다. 사진이 가져온 혁명적 요소의 복기다.

여름의 카메라는 처음 깃든 연인과의 연결을 확인하는 장치 노릇도 톡톡히 해낸다. 매혹당한 대상을 간직하고자 여름은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고 아빠의 카메라와 대면한다. 케이스를 벗기고 셔터를 만지는 과정은 순식간일지 몰라도 당사자로선 천근, 만근 압박을 돌파하는 도약이다.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한 도전인 셈이다. 그렇게 찍는 사진은 연우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촉매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과도 연동한다. 사진은 양면성을 지닌다.

풋풋한 첫사랑이기에 가능한 실수와 욕망

 <여름의 카메라> 스틸
<여름의 카메라> 스틸싸이더스

사진을 찍는 행위와 총을 쏘는 행위는 똑같이 'Shoot'이다. 말이나 글로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담을 수 있지만,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 행위로 변하는 것도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여름의 카메라는 늘 함께하고픈 첫사랑을 독점하고픈 욕망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하지만 꿈 많은 17살, 인생의 첫 도약을 준비할 즈음 그런 소유욕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전 처음 맛보는 감각에 취한 소녀는 이를 온전히 제어하긴 역부족이다.

그렇게 벽에 부딪히고 의도와 다른 상황에 거듭 직면할 때마다 여름은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자신만의 대나무숲, 마루를 찾는다. 아빠와 마루의 과거를 상상하며 현실의 자신과 연우를 대입한다. 그들은 어떻게 연결되었고 왜 현재의 모습으로 자릴 잡았을까 곤란한 질문을 캐물으며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려 한다. 물론 쉬울 리 없다. 때로는 그저 엄마에게 기대기 망설여질 때 털어놓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마치 아빠의 대리인인 것처럼.

아빠가 없는 지금 의지할 대상인 엄마에게 모든 걸 털어놓지 못하는 건 아직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히 알게 된 아빠의 비밀, 이를 물려받은 듯 세상에 드러내기 두려운 비밀을 갖게 된 소녀다. 하지만 아빠의 비밀을 공유하는 마로라면 이상하게 두렵기는커녕 의지가 된다. 어찌 보면 과거의 상처를 후벼 파는 민폐일 수 있건만, 아직 그런 사려를 발휘하기엔 어린 나이다. 다행히 마로 역시 여름을 통해 누군가를 떠올리는 걸 꺼리지 않는다.

<여름의 카메라>는 한국 독립영화가 그간 구사한 퀴어 장르의 전형과 차이나는 문법을 선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퀴어 당사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비밀주의, 커밍아웃 과정에서 직면하는 관계의 단절과 주변과의 불화, 사회적 차별과 혐오에 의한 상처 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주변의 신뢰할 상대들은 여름과 연우의 관계를 응원하거나 보호막이 되어준다. 의도적으로 현실의 고통을 최소화하며 보통의 연애로 묘사하는 건 '퀴어 일상화' 방법론이라 하겠다.

첫사랑 로맨스 성장기에 퀴어 한 스푼

 <여름의 카메라> 스틸
<여름의 카메라> 스틸싸이더스

이 작품에서 퀴어 코드는 두 개의 출발점 중 무엇을 택하느냐에 따라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첫 번째 경로는 퀴어 장르 정체성에서 출발하는 것. 이 경우 한국 사회 특수성, 마치 과거의 반공주의 약발이 떨어지자 극우 세력이 새 먹잇감으로 공격하는 성 소수자의 고통과 애환을 재연하는 대신, 이제 곳곳에 당연히 존재한다고 규정해버리는 것. 그렇게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존재로 성 소수자를 설정하니 일상의 구체적 차별이나 혐오는 상대적으로 옅게 그려진다.

두 번째 경로는 '아주 보통의 첫사랑 로맨스'에 퀴어 한 움큼 끼얹기다. 아빠를 이해하는 과정에 특수한 관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굳이 퀴어 멜로가 아니라도 여름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2020년대 한국이 아니라 10년 전쯤이건, 배경을 일본이나 중국으로 바꾸더라도 크게 무리 없을 배경 설정은 상대적으로 밋밋해 보여도 세상 어디건 보편적으로 일어날 개연성을 획득하도록 돕는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식이다.

1번 경로로 시작하면 아빠와 마로 & 여름과 연우의 관계는 대칭을 이루되, 한 세대라는 간격은 한국 사회에 아주 약간 발생한 틈새를 환기하는 기능이 소환된다. 과거의 퀴어가 현실 제약 앞에서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면, 현재의 퀴어는 비록 여전히 세간의 이목을 부담스러워할지언정, 이전 세대처럼 양자택일하도록 종용당하진 않는 단계에 이른 것. 얼핏 아빠와 여름의 첫사랑은 동어반복인 듯해도 엄밀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2번 경로로 접근한다면 굳이 퀴어를 특별한 소수자로 취급하지 않고 우리 주변 이웃과 지인 사이에 자연스레 끼어드는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무언의 선언이 추가된다. 색안경을 끼지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이 그냥 우리 곁의 친구이자 동료 시민으로 대하면 된다는 설정이다. 10대 시절 이것도 저것도 경험하다 자기의 길을 찾으면 되지 않냐는 소극적 항변부터 그냥 자연스레 놔두고 간섭하지 말라는 적극적 웅변까지 폭넓게 다가갈 수 있다.

<여름의 카메라>는 감독과 제작진이 현실에서 보고픈 장면을 일정하게 영화로 구현한 듯하다. 몇몇 장면은 일본 여름 배경 청춘물의 문법과 촉감을 고스란히 가져온 흔적이 확연하다. 주인공을 오브제로 삼아 탐미적 감각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간혹 엿보인다. 무엇보다 여전히 강고한 현실의 장벽 앞에서 실제로 숱하게 경험했을 비탄과 좌절을 투사하기보단, 일종의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관객과 위로를 공유하고픈 취지가 툭 튀어나온 질감의 작업이다.

영화는 최선의 의도를 깃들여 여러 요소를 조합한다. 만물이 일시적 상처에도 툴툴 털고 회복하는 능력이 가장 왕성한 계절,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찬연히 자연광이 눈부신 순간을 택했고, '그림'이 나오는 이미지와 캐릭터를 조합해 놓았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져 그 혁명적 가치를 깨닫지 못하지만, 시간성을 조금이나마 동결하도록 이끈 '사진'의 마법 같은 힘도 재현하기에 이른다. 다만 재료 모으느라 레시피 연구에 총력을 다하진 못한 맛이 남는 작업이다.

<작품정보>

여름의 카메라
Summer's Camera
2025 한국 드라마
2026.06.24. 개봉 83분 전체관람가
감독 성스러운
출연 김시아, 곽민규, 유가은
제작 성스러운 영화사
배급 싸이더스

2025 26회 전주국제영화제 감독상
여름의카메라 성스러운감독 김시아 곽민규 유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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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