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산골에서 반달곰 돌보는 2030 여자들, 도대체 왜?

[김성호의 씨네만세 1372] 228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화천에서 곰 생츄어리를 운영하는 이들이 있다. 프로젝트 문베어는 사육곰 농장에 있던 반달가슴곰들을 인수해 이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주는 사업을 이어왔다. 철창으로 막힌 3.3㎡ 남짓 우리에 갇혀, 때가 되면 쓸개즙을 빨리고 죽고 나선 발바닥까지 잘려 나가는 그 비참한 곰을 구해 삶을 허하려는 작업이다. 한국 최초 야생동물 보호구역, 곰 생츄어리 이야기다.

영화 도입부, 문베어 관계자들이 곰 농장 주인과 마주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꽤 멋스럽게 지어둔 쾌적한 집 거실에 앉아 주인은 곰도 가축들처럼 사육과 도축까지 법으로 정해지면 좋겠다고, 곰 부산물엔 콜라겐도 많이 들었고 몸에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건넨다. 누군가는 정감 있고 유쾌하다 여길 법한 그 목소리를 마주 앉은 활동가들이 어떻게 들었을지 생각한다.

최태규, 그러니까 문베어를 이끌어온 대표이자 수의사이며 활동가인 그가 "그렇게 몸에 좋은가요?"하고 되묻는 모습을 이 장편 다큐멘터리 가운데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까?"라는 감정 섞인 외침 대신에, 조금도 감정이 들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되묻는 그 모습이 많은 걸 말해준다고 여긴다.

기자로 일하며 마음 붙인 사건들을 여럿 만났다. 누군가가 죽고, 심하게 다치고, 부조리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엮인 사건이 적잖았다. 어쩌다 이들 사건의 원인 제공자와 단 둘이, 혹은 여럿이 마주 앉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중 꽤 많은 이들이 제 윤리와 도덕에선 잘못이랄 게 전혀 없다고 항변하곤 하였다. 이들과 마주할 때면 내게 감정이란 게 본래 없었단 듯이 상대와 사건을 대하게 되고는 하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두 세계의 낙차를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일 테다.

엄연히 실재하는 무례와 무심함, 또 노골적인 비열함과 사악함들 사이에서 나를 지키고 지속하게끔 하는 건 분노가 아니라 포기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내겐 지극히 사무적인 이 영화의 도입이 각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다큐멘터리 영화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이야기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스틸컷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스틸컷한국독립영화협회

부활한 독립영화 쇼케이스의 첫 상영

지난달 서울 홍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228회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왕민철 감독의 동물 3부작 마지막 작품이 상영됐다. 지난해 서울시 예산삭감 결정으로 227회 쇼케이스를 찾은 관객 앞에서 폐지를 공식 발표했던 행사다. 시민사회 반발로 예산이 극적 복원되며 부활을 알린 뒤 맞은 첫 상영이다.

<동물, 원> <생츄어리>에서 이어지는 왕민철 감독의 연작은 독립영화의 카메라가 마땅히 머물러야 할 우리 사는 세상 귀퉁이의 좀처럼 조명되지 않는 이야기를 담는다. 어떤 생명들의 고통과 소멸을 전제로 우리 세계가 서 있다면 우리는 그를 적어도 알고 있긴 해야 할 것이 아닌가(관련기사: 한 해 1500마리 안락사, 그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 https://omn.kr/291n6 ).

<동물, 원>은 동물복지를 생각하는 거점동물원인 청주동물원을 다뤘다. 동물을 사오지 않고 운영하는 동물원으로, 찾는 이의 즐거움보다도 동물들의 삶을 우선하는 모습이 그와 같은 세계를 알지 못한 관객에게 의식의 확장을 이끌 법하다.

<생츄어리>는 야생에서 생존할 수 없게 된 동물을 구조해 치료한 뒤 생태계로 되돌리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또 곰 생츄어리 사업을 벌이는 프로젝트 문 베어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의 문명이 어떻게 야생동물의 생존을 부수어내는지 영화가 내보이고 책임을 묻는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은 결국 생츄어리로 향한다. 곰 농장에서 인수해 온 곰들이 사는 화천의 곰 생츄어리에서 감독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전하려 하였을까.

곰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영화 내내 두드러지는 건 곰 생츄어리를 책임지는 비상근 1명을 포함해 5명의 활동가다. 20대에서 30대까지의 미혼여성으로 보이는데, 강원도 화천에서도 외진 산골에서 곰들을 돌보며 산다. 영화는 이들의 일상, 그러니까 일어나 잠들기까지 이들이 하는 일과를 보여준다.

곰들에게 밥을 주고, 우리를 청소하고, 곰이 즐길 법한 놀거리를 넣어주는 게 이들의 일이다. 문베어의 활동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후원자와 예비후원자에게 다가서는 일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귀여운 외양에도 화가 나면 사람을 찢을 수 있는 곰들이 아닌가. 혹여 있을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해 안전훈련까지 철저히 실시한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여느 동물원 사육사의 모습과도 얼마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스틸컷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스틸컷한국독립영화협회

무얼 위해

영화를 보는 내내 의문 한 가지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도대체 이들은 무얼 위해 이 일을 지속하는가다. 상영 뒤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 나와 함께 영화를 본 지인들이 모두 '활동가들은 어째서 저곳에서 젊음을 보내는가'를 궁금해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라면 영화는 상당히 불친절하다. 주인공인 다섯 활동가의 일과를 그렇게 보여주면서도, 이들에게 그 흔한 인터뷰를 시도하지 않는다. 자연히 관객 또한 이들이 생츄어리에 이르기까지의 사연을 알지 못한다. 그저 곰을 먹이고 똥을 치우는 작업만 지켜볼 뿐이다.

생츄어리란 게 도대체 무언가에 대해서도 공들여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생츄어리를 보이기 전, 그러니까 영화의 도입부는 무척 짧다. 한국에서 마지막 야생 반달곰이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은 뒤 그 쓸개가 국가에 의해 경매에 부쳐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수많은 반달곰들이 소위 농장에서 길러지며 쓸개즙을 뽑혀온 사실이 자막으로 언급될 뿐이다. 이 뒤엔 그 곰 농장들의 열악한 사육실태를 담은 자료영상이 상영되고, 앞서 적은 곰 농장주와의 대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곧장 생츄어리의 일상이 시작된다.

앞선 두 편의 작품을 보지 않고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을 본 이라면 맥락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왜 곰들은 생츄어리에서 길러지고, 어째서 활동가들은 이곳에서 곰을 먹여 살리는지 영화가 세심히 말해주지 않는 탓이다. 동물원도 농장도 아니다. 수익을 올리기 위한 곳이 아니라 돈을 쓰며 곰을 살게 하는 곳이다. 왜 이런 곳이 존재하는 거지? 어째서 이들은 이 일에 인생을 쓰는 거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물음이 떠오르는 건 차라리 자연스럽다.

나라고 얼마 다르지 않았다. 작품을 보는 내내 지난 군복무 시절이 떠올랐다. 강원도 화천 북단의 일반전초(GOP)에서 근무했기에 더 그랬을 테다. 폭력과 부조리, 맹추위, 더 나은 임금 정도를 제한다면 이들의 모습이 내 군시절과 얼마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들은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한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낙이며 고통, 뿌듯함과 슬픔이 모두 군대와 유사했기에 더욱 이들을 이곳으로 이끈 것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스틸컷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스틸컷한국독립영화협회

집요한 궁금증

이는 그대로 감독의 의도일 수 있겠다. 함께 영화를 본 이 중에선 끝내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이 남았다고 말한 이가 있었다. 다큐의 흔한 수법인 내레이션을 통해 나는 이러이러해서 이 일을 해요, 우리 활동은 이런 가치가 있거든요, 그런 순간이 오리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는 끝내 그와 같은 쉬운 해소를 허락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곰을 딱히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곰들을 돌본다. 서울의 편하고 세련된 삶을 포기하는 걸 힘들어 하면서도 화천에 터전을 잡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 경력에 그럴듯한 한 줄이 되지 못한단 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기꺼이 불편을 밀어두고 저를 곰 곁에 두기로 한다. 대체 왜.

동물원이 아니다. 농장도 아니다. 곰을 접붙여 새로 태어나게 하지 않는다. 든 곰들이 모두 죽는다면 생츄어리 또한 필요가 없어질 테다. 말하자면 한시적인 이 조직과 공간의 목적은 살아 있는 곰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삶을 주는 일이다. 그뿐이다.

이 곰들은 왜 이곳에 있는가. 이유야 명확하다. 곰 쓸개즙과 발바닥을 얻기 위해서다. 많은 이들이 건강을 위해 곰 쓸개즙과 발바닥을 약재로 쓰길 원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생겼고,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오가며 곰 농장이 곳곳에 섰다. 마취총을 쏘아 곰의 정신을 흐리게 하고 쓸개에 관을 꼽아 즙을 뺐다고 했다. 산 곰에게 쓸개즙을 빼어 먹었던 그때 그 사람들은 건강했을까. 그 건강으로부터 무엇을 얻었을까.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독립영화 쇼케이스 포스터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독립영화 쇼케이스 포스터한국독립영화협회

곰 쓸개즙 먹던 사람들이 사라지면...

시간이 흘러 곰 쓸개에 빨대를 꽂아 즙을 빨아 먹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곰들도 함께 사라져야 하는 걸까. 농장주가 운영을 포기한 농장들에서 곰들은 악성 자본일 뿐이다. 정부, 관계 당국은 안락사란 편한 수단을 은근히 권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공공연한 불법과 탈법을 방관한 이들은 당연하게도 이제 가치가 사라진 곰들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죽음이다. 버려진 농장에서 아사하거나 병들어 죽거나 운이 좋다면 정부의 조치에 따라 안락사를 당할 테다.

문베어의 생츄어리는 바로 그사이에 존재한다. 인간에 의해 철창 안에 갇힌 곰들에게 너무도 인간적인 기준의 쓸모가 사라졌다고 해서 제거하도록 둘 수는 없다는 저항이다. 인류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느낀 이들이 스스로 그를 감당하는 작업이다. 곰과 별로 관심 없이 살던 젊은 여성 다섯이 강원도 화천에서 자발적 격리생활을 감당하는 이유겠다. 또 문베어에 자발적 후원이 답지하는 이유기도 하겠다. 바로 이와 같은 사고로 보는 이들을 이끄는 것, 한 번도 이른 적 없을 문제의식 가운데 관객을 들여놓는 것이 이 영화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의 목적이리라 여긴다.

영화 가운데 유독 고민하는 한 사람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내 경력엔 보탬이 되는 걸까, 벌이도 얼마 되지 않는데, 뭐 그렇고 그런 자연스러운 불만이 싹트는 모습을 담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조차 곰 생츄어리란 게 뭔지, 왜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을 테다. 세상은 정말이지 이들의 노력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 어딘지 어깃장을 놓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들에게 고작 한 줌의 관심조차 주고 있지 못한, 그래서 불안을 느끼고 인정을 바라도록 하는 세상이 서운해졌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지구에서 인간은 너무나 많은 존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남보다 앞서 그 책임을 지려 하는 이들에게 더는 무관심해선 안 될 일이 아닌가.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독립영화쇼케이스 한국독립영화협회 단지우리가잠시머무는곳 왕민철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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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