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뿌리를 잊었다. 국토 7할이 산지라고 자랑하면서도 그 산지를 문명의 발아래 꿇려서 인간의 영토로 전락케 했을 뿐, 자연으로 존재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산허리를 자르고 터널을 뚫어 영역 넓은 야생동물이 살아갈 최소한의 여건조차 파괴한 것이 우리 인간이다. 탈출로를 예비하지 않은 농수로며 외관만 신경 쓴 유리벽, 끈끈이 묻힌 나무들은 또 얼마나 많은 야생동물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어느새 공생동물과 반려동물, 그리고 가축만의 땅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자연이 설 자리 잃은 비좁은 땅에서 야생동물은 절멸의 운명에 봉착했다.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만 먹고 버틴 끝에 겨우 하나만 비로소 인간이 되었던 과거를 우리는 망각한 것이다.
20년 쯤 전, 한 영화감독이 한국의 뿌리를 일깨운 일이 있다. 그 이름은 장 자크 아노,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감독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해도 좋은 이다. 대표작으로는 걸작이라 해도 좋을 <불을 찾아서>를 필두로, 움베르토 에코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장미의 이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을 원작 삼은 <연인>, 하인리히 하러의 수기로부터 제작한 <티벳에서의 7년> 등이 있다. 하나 같이 보는 이를 움직일 만한 힘 있는 작품이다.
▲울프 토템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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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설화 말한 프랑스 감독, 그가 영화에 자연을 담는 법
장 자크 아노가 한국서 단군설화를 언급한 건 그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이루는 주요한 축 중 하나가 동물영화인데, 그가 유달리 여러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며 관계 맺는 자세까지를 유의 깊게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 자크 아노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그 많던 호랑이와 늑대를 지키지 못한 나라, 반달곰의 가슴에 빨대를 꽂아두고 때로 때때로 쓸개즙을 뽑아내던 나라, 그리고 필요가 없어지면 농장이라는 이름의 사육장을 문 닫아 폐사시키던 나라, 호랑이 가죽이며 곰발바닥을 약재로 사들여 세계 각지서 밀렵이 끊이지 않도록 한 원죄 있는 나라, 무엇보다 여전히 수많은 야생동물을 동반자적 생명체로 고려하지 않는 나라는 아니었을까.
장 자크 아노의 역작 한 편이 이달 개봉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늑대를 다룬 <울프 토템>으로, 곰이 주인공인 <베어>, 호랑이가 나온 <투 브라더스>에 이은 또 한 번의 동물영화다. 북미 불곰과 캄보디아 호랑이에 이어 이번엔 몽골 늑대가 등장한다. 내몽골 촬영을 위해 중국 영화계와 손잡고 진행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2015년 제작돼 중국과 프랑스서 흥행한 작품이다. 4000만 달러가 채 들지 않았는데 흥행수익이 1억2000만 달러를 훌쩍 넘겼다고.
하필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사드배치 등으로 한중관계가 경색돼 한국선 개봉하지 못했다. 그렇게 잊힐 뻔한 이 영화가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개봉에 이르게 된 건 자연이 설 곳 없는 한국에선 기대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울프 토템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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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구 스타된 한국, 정작 늑대는 없다
영화는 중국 작가 장룽의 자전적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때는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0년대, 베이징 출신 한족 청년이 내몽골에 위치한 말 목장으로 보내진 뒤 겪는 이야기다. '책 속 지식이 아닌 살아 있는 노동을 배우라'는 명목 하에 어느 날 갑자기 내몽골로 끌려온 대학생 천전(풍소봉 분)과 양크(두효 분)는 난 데 없는 초원에서의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초원을 따라 이동하며 말과 양을 길러 살아가는 몽골계 중국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도시에선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을 겪어낸다.
제목이 말하듯 늑대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가축을 치는 유목민에게 있어 가장 큰 위협은 초원의 늑대다. 야생 늑대무리가 수시로 말과 늑대를 잡아먹는 일이 발생하는 때문이다. 사적 소유 없이 모든 것이 국가의 재산이 되는 당대 상황 속에서 말이나 늑대를 잃는 건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는 죄가 된다. 유목민들은 당 지도자의 감독과 감시 아래 그 같은 일을 막기 위해 분투하지만 늑대란 동물의 꾀와 포악함이 보통이 아니다.
영화는 늑대와 인간의 충돌이 본격화되는 과정을 담는다. 몽골 초원에 사는 가젤은 늑대들의 주요한 먹잇감이 되어왔는데, 중국인들이 이를 싸그리 사냥해 쓸어가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당초 유목민들은 자연의 균형과 공존의 이치를 잘 알아 직접 치는 가축 외에 가젤을 얼마 죽이지 않았다. 그건 그대로 늑대의 것이고, 자연에 귀속돼야 한단 걸 이해했다. 그러나 공산당에서 파견한 바오 순장(윤주승 분)의 지시 아래 사냥이 이루어지고 늑대들은 배를 주리게 된다. 먹잇감이 사라진 늑대들이 점점 더 인간의 것을 노리게 된 건 그래서다.
▲울프 토템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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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만든 체제 비판 영화라니
영화는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근시안적 태도가 불러오는 화를 정면에서 비판한다. 자연의 일원으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던 유목민의 태도를 존중하지 않는 공산당의 막무가내식의 일처리가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지를 여러 사건을 통해 인상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현명한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 그저 당의 명령이나 다수 인민의 여론을 추종하는 바오 순장의 태도는 오늘날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틀렸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지만 저 초원에선 어리석음과 지질함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건 대자연에 비해 인간의 논리가 박약한 때문일 테다.
유목민들과 늑대의 대립 한편에서 주인공인 천전은 몰래 늑대새끼를 키우기 시작한다. 자연과 유목민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그가 늑대를 몰래 키우면서부터 자연을 조금씩 이해해가는 과정이 적잖이 인상적이다. 늑대와 인간은 서로를 존중하며 충분한 거리를 두고 존재해야 한다는 유목민들의 믿음이 늑대새끼를 기르려는 천전의 의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건 자연스럽다. 천전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란 옛 말을 앞세워 바오 순장을 설득하고 결국 허락을 구한다. 그러나 길러낸 늑대가 야성을 잃기를 기대하긴 어려운 일이다.
본능과 야성을 간직한 늑대와 야성을 잃고 인간에게 기대는 가축의 대비가 선명하다. 늑대와 말, 그리고 양은 그저 동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기대지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가축이 처하는 재앙적 위기를 영화가 얼마나 강렬하게 내보이는가. 이는 그대로 주인의식 없이 체제며 지배세력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당대 민중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또 한 편으로 끝내 동화되지 않고서 저항하는 늑대들의 모습은 체제와 맞서는 이들이 처한 결코 견뎌내기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요컨대 <울프 토템>은 그 자체로 체제의 모순을 까발리고 현실을 고발한 상징적이고 비판적인 저술이다. 문화대혁명 이후 쓰인 여러 중국 문학이 그러하듯이.
▲울프 토템포스터삼백상회
자연 대하는 한국의 자세, 돌아보게 한다
탐욕이 무너뜨린 자연의 균형, 훼손된 야생성이 맞이할 절멸의 위기, 제 실패를 인정하는 않으려는 인간의 오만과 그것이 불러온 더욱 큰 파국, 재앙 가운데 서서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감각까지를 장 자크 아노는 <울프 토템>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이와 같은 풍경이 오늘의 한국과 정말로 무관한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냉정히 말하자면 한국엔 자연이 없다. 몽골에서 가젤과 늑대가 사라졌듯이, 한국에서도 수많은 종이 없어진 지 오래다. 동물원을 탈출해 철창 밖에서 사는 남한 땅 유일한 늑대가 됐다가 붙들려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온 늑구의 이야기가 이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쑥과 마늘을 백일 동안 먹은 끝에 인간이 된 이가 단군을 낳아 민족의 모태가 되었다면, 우리는 마땅히 자연의 후손이 아닌가. 그러나 한반도에 끝내 자연이라 부를 것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우리는 진실로 우리를 낳은 어머니를 스스로 망각하고 있다 하는게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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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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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신화 언급한 프랑스 감독, 이게 우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