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갈 거야"... 이 영화가 전하는 희망

[리뷰] 영화 <현재를 위하여>가 그려낸 상실과 회복

<현재를 위하여> 포스터 감독 각본 : 김다솜, 출연 : 황보운, 채정안 외, 제작 : 바로엔터테인먼트, (주) 21스튜디오, 산산
<현재를 위하여> 포스터감독 각본 : 김다솜, 출연 : 황보운, 채정안 외, 제작 : 바로엔터테인먼트, (주) 21스튜디오, 산산21스튜디오

지난 11일 영화 <현재를 위하여> 시사회를 다녀왔다. 영화의 주인공 이름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현재'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지만, 그의 삶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일그러져 있어서 노래조차 부를 수 없다.

<현재를 위하여>라는 제목만 보고 '현재(today)'라고 생각했는데, 주인공 이름이 현재였다. 영화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현재'는 한 소녀의 이름만이 아니라, 폭력과 상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뉴스를 켜면 전쟁과 혐오의 소식이 넘쳐난다. 경쟁은 일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지쳐간다. 우울과 불안은 더 이상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간다.

자본의 사회가 만들어낸 현재, 우리는 그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냉소적으로 살아가거나 순응하며 살아간다. '벗어날 수 없는 새장 속에 갇혀 사는 새처럼'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영화 속 '현재'처럼 혹은 등장인물들처럼 길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이런 시대를 향해 십 년 전 실종된 딸을 찾는 '해인'을 통해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상처받은 사람은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가

 실종된 딸을 찾는 해인과 집을 나온 현재의 대화
실종된 딸을 찾는 해인과 집을 나온 현재의 대화21스튜디오

영화 속에는 화원이 등장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 흙과 바람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식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살아가지만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꺾인 가지에서도 새순이 돋고, 겨울을 견딘 뿌리는 다시 꽃을 피운다.

식물들은 말없이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생명력은 영화 속 인물들의 삶과 절묘하게 겹쳐진다. 가정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현재의 어머니에게 해인이 '오렌지자스민' 화분을 선물하는 장면이 있다.

잃어버린 것은 딸만이 아니다. 그들은 오래전 삶의 향기마저 잃어버렸다. 그러나 식물은 다시 향기를 품는다. 영화는 오렌지자스민을 통해 상처 이후에도 삶은 다시 향기를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나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가 너무 깊으면 삶의 향기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누구나 다 삶의 향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가 없느냐가 아니라 그 상처 이후에 어떤 삶의 향기가 남느냐는 것, 그것이 '오렌지자스민'이라는 화분을 매개로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은 관계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영화를 보며 나는 '관계 혹은 연결'이라는 단어를 오래 생각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은 관계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영화는 이 단순한 사실을 과장하지 않고 천천히 보여준다.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일,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공간을 바라보는 일. 거창하지 않은 일들이 무너진 삶을 조금씩 일으켜 세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현재와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엄마 해인이 만들어 가는 관계 역시 그렇다. 서로의 상처를 이용하거나 소비하는 대신,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은 자신도 몰랐던 회복의 가능성을 만나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 현재만 바라보지 않는다. 잃어버린 딸을 찾아 헤매는 엄마 해인의 삶도 비중 있게 다룬다. 해인은 상실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딸이 사라진 시간은 멈춰 있지만 세상은 계속 흘러간다. 그는 잃어버린 과거를 붙잡고 살아가고, 현재는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간다는 점이다. 해인은 현재를 통해 잃어버린 딸의 흔적을 발견하고, 현재는 해인을 통해 자신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난다. 물론 그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과 이용하려는 마음, 사랑과 집착, 희망과 절망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구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서로의 곁을 맴돌며 조금씩 살아갈 힘을 되찾아 가는 이야기다. 영화가 말하는 관계란 완전한 사람들 사이의 만남이 아니라, 결핍과 상처를 가진 존재들이 서로를 통해 다시 삶을 선택하는 과정에 가깝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현재, 하지만 현재는 노래를 계속 부를 수 없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현재, 하지만 현재는 노래를 계속 부를 수 없다.21스튜디오

요즘 영화들은 너무 빠르다. 끊임없이 자극하고 놀라게 하며 관객을 붙잡아 둔다. 그러나 <현재를 위하여>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느리게 걸어간다.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머뭇거린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상처의 결을, 사람의 마음을, 그리고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를.

영화 속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한 계절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갈 거야."

생각해 보면 한 계절뿐만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도, 슬픔도, 기쁨도 그렇게 지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원할 것 같던 고통도 지나가고, 붙잡고 싶던 행복도 지나간다.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은 아니다.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도 누군가의 손을 붙잡았던 기억은 남는다. 함께 걸었던 길은 남는다. 식물이 다시 새순을 틔우듯, 사람도 관계 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이 남는다.

<현재를 위하여>는 거창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폭력과 상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한다. 서로의 곁에 머물라고.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라고.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생명들을 바라보라고. 어쩌면 그것이 이 시대의 '현재'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희망일지도 모른다.

현재는 한 소녀의 이름이지만, 해인 역시 우리 시대의 또 다른 현재다.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 잃어버린 것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야 하는 사람. 어쩌면 영화 속 현재와 해인은 모두 우리의 얼굴이다.

우울과 냉소가 일상이 된 시대에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리고 조용히 대답한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지만, 결국 관계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고."
행복을위하여 황보운 채정안 S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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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