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의 재기 다룬 영화 '와일드씽'의 진면목

[리뷰] 영화 <와일드씽>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사업에 실패하기도 하며,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과 멀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실패는 생각보다 오랜시간동안 삶에 잔상처럼 남는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문득 떠올라 지금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를 과거에 묻어두려 한다. 이미 끝난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은 가장 빛났던 시절 역시 쉽게 잊지 못한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뜨거웠던 시간,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젊은 날의 기억들. 그 기억은 때로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영화 <와일드씽>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던 혼성 그룹 '트라이앵글'.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무대에 서려는 트라이앵글의 멤버들은 절박해 보인다. 영화는 그들의 재결합을 통해 묻는다. 실패한 인생에도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는 걸까.

[첫 번째 감정] 트라이앵글 멤버들의 추억

 영화 <와일드씽> 장면
영화 <와일드씽>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20년 전 트라이앵글은 누구보다 화려한 시간을 보냈다. 무대 위에서 환호를 받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자신들의 미래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그룹은 해체되고, 세 사람은 각자의 삶 속으로 흩어진다.

시간은 잔인하다. 이 방송, 저 방송 떠도는 생계형 방송인이 된 황현우(강동원)는 과거의 영광을 추억으로만 간직한 채 살아간다. 변도미(박지현)는 재벌가 며느리가 되었지만, 그것이 꼭 행복한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상구(엄태구) 역시 솔로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빚더미에 앉아 있다. 누군가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누군가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세 사람 모두 비슷한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 화려했던 자신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영화 속 재결합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공연 제안을 받은 순간, 세 사람이 다시 움직이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그 안에는 자신들이 한때 누구였는지를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어쩌면 그들은 그 공연이, 현재 자신의 모습을 좀 더 밝게 빛나게 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영화는 그 모습을 통해 추억이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감정이 아니라, 현재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감정] 성곤의 추억

 영화 <와일드씽> 장면
영화 <와일드씽>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트라이앵글의 라이벌이었던 발라드 가수 성곤(오정세) 역시 흥미로운 인물이다. 한때 그는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발라드 가수였다. 트라이앵글이 무대 위를 뛰어다니며 젊음의 에너지를 보여줬다면, 성곤은 감성적인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만년 2위를 차지했었지만, 그때의 성곤은 전통 발라더로서 자신만의 위치를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스타의 삶 역시 영원하지 않다. 그 당시 나쁜 사건에 연루되어 법적인 문제가 생겼고, 그뒤로 재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고, 대중은 더 이상 과거의 발라더 성곤을 기억하지 않는다. 성곤은 동물을 잡는 포수로 직업을 바꾸고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과거 가수로서 화려했던 삶을 완전히 잊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는 트라이앵글 못지않게 과거를 붙잡고 살아간다. 영화 속에서 현우와 성곤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둘 다 가장 빛났던 시절을 경험했고, 동시에 그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성곤의 모습은 단순한 라이벌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놓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처럼 보인다. 우리는 정말 과거를 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추억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는 걸까.

[세 번째 감정] 우리 모두의 추억

 영화 <와일드씽> 장면
영화 <와일드씽>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트라이앵글의 이야기가 특별한 연예인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모두 한때는 무언가를 꿈꾸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꼭 스타의 위치에 있을 때보단, 젊은 시절 치기어린 도전을 해봤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가수가 되고 싶었고, 누군가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으며, 누군가는 작가나 배우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다른 삶을 살아간다. 현실은 꿈보다 복잡하고, 때로는 냉정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포기했던 꿈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채 살아간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뒤로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각자 먹고살기 위해 분투한다. 그렇게 지내다 가끔은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또 그리워하기도 한다. 삶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렇게 추억만을 남긴다.

영화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와일드씽>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경험했고,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무대에 설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순간 관객은 자신이 포기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된다. 트라이앵글이 다시 무대에 오르는 모습은 결국 우리 모두의 추억이 다시 움직이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넘어졌지만 끝난 것은 아니다

<와일드씽>은 과거의 영광을 복원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품은 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한때 잘나갔던 연예인들의 재기를 다루지만, 그 안에는 훨씬 보편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실패 이후의 삶, 그리고 다시 시작할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영화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지금의 사회와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담을 좋아한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쉽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운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좌절을 품고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트라이앵글의 재도전은 단순한 코미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강동원, 박지현, 엄태구 같은 배우들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특히나 성곤 역의 오정세 배우가 단연 돋보인다. 이 영화의 웃음은 오정세 배우가 모두 책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 속에서도 중년이 된 인물들이 품고 있는 씁쓸함과 후회가 느껴진다.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지고, 또 다시 일어서려는 인물들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그래서 영화는 마냥 가볍게 소비되지 않는다.

손재곤 감독의 연출 역시 빠른 템포와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인물들의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달콤 살벌한 연인>, <이층의 악당> 같은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던 손 감독은, 이번엔 90년대 무대를 소환해 웃음을 전달한다. 그가 만들어낸 과거를 향한 향수와 현재의 현실이 충돌하는 순간들은 예상보다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무엇보다 영화는 실패를 부끄러운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 이후에도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응원한다.

결국 <와일드씽>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인생은 한 번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크게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무대를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만약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무대 위로 올라갈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와일드씽 코미디영화 추억 아이돌 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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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와 시리즈 속 감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단순한 이야기보다, 우리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브런치에 영화 감성 리뷰와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영화 속 감정을 담은 첫 에세이집 《그럴 때, 나는 그를 떠올렸다》를 출간했습니다. 레빗구미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남긴 감정과 삶의 이야기를 오래 기록하고 있습니다. :)